39 북구문헌

서로박: (1) 스트린드베리의 '다마스쿠스로 향하여'

필자 (匹子) 2025. 9. 20. 09:15

1. 냉소적 이방인, 여성 혐오의 비관주의자 – 동시대 사람들은 옳든 그르든 간에 스웨덴의 작가, 아귀스트 스트린드베리 (A. Strindberg, 1849 – 1912)를 그런 식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특징은 작가가 겪은 유년의 쓰라린 경험에 기인합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지만, 유년의 트라우마 역시 특정 인간의 마음을 오랫동안 아프게 합니다. 오늘은 그의 작품, "다마스쿠스로 향하여 Till Damaskus"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삼부작으로 이루어진 그의 대표적 극 작품입니다. 5막으로 이루어진 제1부는 1898년에 발표되었으며, 1900년에 스톡홀름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4막으로 이루어진 제2부는 역시 1898년에 발표되었으나, 먼 훗날, 1924년에 비로소 상연되었습니다.

 

그러나 제3부는 나중에 집필되었습니다. 네 개의 장면으로 이루어진 제3부는 1904년에 발표되었으며, 그가 사망한 뒤 10년 후인 1922년 괴테보리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스트린드베리는 처음부터 삼부작을 완성할 계획을 품지는 않았습니다. 주위 여건은 작가로 살아가기 힘들 정도로 암담했으며, 극작가의 세계관 역시 어둡고 염세적이었습니다. 1989년에서 1901년 동안 작품의 구상 자체가 전폭적으로 수정되었습니다. 게다가 줄거리 그리고 등장인물의 성격 역시 원래와는 달리 다루어지기도 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다마스쿠스로 향하여󰡕는 “표현주의 연극 작품의 모태”라고 명명할 수 있습니다. (Diebold: 173). 작품은 표현주의 예술이 표방하는, 방황하는 자아의 모험을 재현하기 때문입니다.

 

2. 제1부는 총 17개의 엄격하게 구별된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장면은 교회 앞의 도로 모퉁이 그리고 커피숍을 보여줍니다. 거기서 작가는 “낯선 자”로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그는 평생 행복을 찾아다니는 사내입니다. 도전적인 작품을 집필하여 문학적 명성을 얻으려고 했지만, 사회는 그를 철저히 외면합니다. 그에게 남은 것은 가난과 고독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느 여자가 주인공 앞에 나타납니다. 그미는 “낯선 자”에게 자신의 남편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합니다. 남편은 늑대 인간과 흡사한 의사라고 했습니다.

 

“낯선 자”는 남편과 헤어지고 자신의 뒤를 따르라고 여자에게 조언합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여자를 도와줄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없습니다. 이때 주인공이 마주치는 것은 도심지를 행군하는 장례 행렬입니다. 행렬 속에는 시체가 누워 있는데, 주인공과 매우 닮았습니다. 주인공은 기이한 거지와 마주칩니다. 이로써 분위기는 불확실하고도 의혹으로 휩싸인 답답한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3. “낯선 자”는 소포를 찾아가라는 쪽지를 받지만, 우체국에 가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재판과 관계되는 서류들이 도착해 있으리라고 주인공은 지레짐작합니다. 서류 속에는 분명히 자신도 모르게 저지른 죄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여자의 남편인 의사는 오랫동안 자신의 집에서 “낯선 자”를 기다렸다고 했습니다. 그는 주인공의 동기동창 친구로서 주인공의 방문을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지요.

 

의사의 집에는 자칭 카이사르라고 불리는 정신병자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주인공의 그것과 같습니다. 그곳에서 “낯선 자”는 옛날에 마주친 적이 있는 사람들과 다시 재회하는데, 일순간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쓰라린 피해 의식이 뇌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낯선 자”는 여자와 함께 어디론가 도주하려 합니다. 의사의 집은 말하자면 “시체, 거지, 정신병자, 인간의 숙명 그리고 유년 시절의 기억” 등 과거의 트라우마를 부추기는 알려주는 공간이었습니다.

 

4. 두 사람은 특정한 장소에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언제나 기이한 불안이 그들을 어디론가 떠나도록 충동질합니다. 그들은 경제적 어려움, 사회의 냉대를 피부로 절감합니다. 게다가 두 사람은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에 의해 추적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물론 그들은 상대방에 대해 사랑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처한 여건은 결혼하여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기에는 너무도 비참합니다. 아무도 그들에게 숙소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여자의 부모님 집에서 은신처를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어간 곳은 여자의 부모님 집이 아니라, 마녀의 부엌이었습니다. 마녀의 부엌에 모인 사람들은 처음부터 “낯선 자” 그리고 여자를 악의 화신이라고 단정합니다. 여자는 주인공과의 약속을 어기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어머니의 독촉에 못 이겨 “인식의 나무”에 관한 신비로운 문헌에 빠져듭니다. 주인공은 어쩔 수 없이 혼자 그곳을 떠나야 합니다. 여러 곳을 방랑하다가, 언덕에서 미끄러져 추락합니다. “낯선 자”는 심하게 상처받게 됩니다. 고립된 사원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은 의식을 잃은 “낯선 자”를 구출하여, 고수련합니다. 주인공은 열병을 앓으며 공상에 잠깁니다.

 

5. “낯선 자”는 사원에서 병든 몸을 추스릅니다. 이때 그는 수도사를 만납니다. 수도사는 주인공에게 성서 속의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는 가령 영원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은 젊은이가 악몽을 꾸면서, 꿈속에서 과거에 접했던 사람들과 재회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젊은이에 의해 상처받거나 실망을 맛본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 이야기를 듣고 주인공의 내면은 서서히 변화를 거듭합니다. “낯선 자”는 더 이상 교만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는 불행과 고통 등을 통해서 심리적으로 순화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하여 거지의 다음과 같은 충고를 따르기로 작심합니다. “당신은 오로지 죄악만을 믿고 있으므로, 얻는 것이라곤 죄악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제 선함을 믿으려고 시도해 보세요!”

 

“낯선 자”는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왔던 삶의 길을 거꾸로 걸어가기로 합니다. 지금까지 그는 -여자의 어머니가 주장한 바처럼- “예루살렘을 떠나 다마스쿠스로 향해” 터벅터벅 걸어온 셈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서서히 인간적이고 형이상학적 가치에 대해 새롭고도 긍정적 마음가짐을 품습니다. 제1부의 마지막 장면에서 “낯선 자”는 맨 처음 장면과 동일한 장소에 앉아서 모래 속에다 무언가 그리고 있습니다. 모래 속에 그려진 부호는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과정,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낯선 자”는 다음의 사실을 간파합니다. 즉 우체국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은 재판의 서류가 아니라, 송금환 증서였습니다. 누군가 주인공을 위해서 돈을 보냈던 것입니다. 과연 주인공, “낯선 자”가 -여자가 부탁한 대로- 교회로 향해 발걸음을 옮길 것인가? 그러나 이는 확실치 않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