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마지막으로 본서의 개별적 장이 다루려는 바를 약술하고자 한다. 필자는 제1장에서 5장까지는 『희망의 원리』의 내용을 쉽게 풀어쓰려고 했다,
제1장. 낮꿈과 미래지향의 의식: 블로흐는 갈망의 심리학으로서 굶주림을 해결하려는 열망을 우선순위로 설정한다. 백일몽으로서의 ”낮꿈“은 블로흐에 의하면 미래지향적 힘과 동력을 부추긴다. 더 나은 삶은 원래 갈구한 바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환멸을 부추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이 언급한 바 있듯이 ”낙관하지 않는 희망“이다. 이 장에서는 특히 블로흐의 전문 용어들이 가급적이면 쉽게 설명되고 있다.
제2장. 자유와 질서, 사회 유토피아.: 인간의 갈망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것은 더 나은 사회에 관한 꿈일 것이다. 그것은 사회 유토피아로 규정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플라톤의 『국가Πολιτεί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 론De civitas Dei』, 모어와 캄파넬라, 오언과 푸리에, 생시몽과 카베 등의 국가 설계를 다룬다. 시민 사회의 청년 운동, 여성 운동 그리고 시오니즘 등은 논의에서 생략될 수 없다. 유토피아는 블로흐에 의하면 국가 소설 그리고 천년왕국설이라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고 한다.
제3장. 자연과 기술, 건축과 지리학.: 블로흐는 인류의 문화유산에 과거 사람들의 갈망이 보존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만약 더 나은 세계를 실현하려는 의지가 없었더라면, 과학 기술과 건축 그리고 지리학의 영역에서의 놀라운 문화유산은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컨대 연금술은 세상을 기독교의 황금으로 정화하려는 의향을 지니고, 피라미드와 고딕 건축에는 천국에 대한 갈망 내지는 사후 세계의 축복이 담겨 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지상의 낙원인 인도를 찾으려는 모험적 갈망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제4장. 문학과 음악 속의 새로운 무엇.: 이 장에서는 예술 영역에서 드러나는 희망의 특징을 다룬다. 문학은 어떤 가능한 상을 언어의 형식으로 도출하려고 한다. 이에 비하면 음악은 조화로운 삶 그리고 더 나은 삶에 관한 인간의 갈망을 음을 통해 직접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문제는 미학의 원리로서의 “선현의 상Vorschein”을 이론적으로 밝혀내는 일이다. 예술은 세계의 발전 내지는 파멸을 직접 촉구하지는 않지만, 세계의 다른 형상, 세계의 변화된 모습을 끊임없이 추동한다. 한마디로 선현의 상은 현실 너머의 “기대 지평Erwartungshorizont”에 도사리고 있는 참된 유토피아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제5장. 죽음과 종교. 자유의 나라: 종교는 죽음에 대한 불안을 떨치고 영생을 갈구하기 위해서 태동한 것이다. 세상의 구원자를 찾으려는 믿음은 천년왕국설로 이어져 내려왔다. 이는 계시의 사상이며, 모세에 의해서 나타나, 조로아스터교와 마니교의 전투적 이원론을 거쳐서, 기독교로 계승되고 있다. 부활과 내세는 블로흐에 의하면 “혁명적 변화에 대한 하나의 비유”로 파악될 수 있다. 부활은 “저세상”과 관계되는 게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의 혁명을 통한 새로운 삶을 가리킨다. 이는 사도 바울 이후에 정착된 교회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여준다.
제6장. 블로흐와 헤겔. 재기억 비판: 헤겔의 사상은 블로흐에 의하면 엥겔스가 주장처럼 변증법이라는 방법론 그리고 논리학의 시스템으로 이분화될 수 없다. 왜냐면 정신의 변증법적 운동은 논리학의 범주에 해당하는 시스템과 무관하게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블로흐는 헤겔이 추구한 변증법의 방향이 플라톤이 말한 과거 지향적 재기억의 특징을 지닌다고 비판한다. 왜냐면 헤겔은 모든 변화가 궁극적으로 시원(始原)으로 환원하는, 이른바 재-기억anamnesis의 속성을 준수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블로흐는 과거지향적 재-기억 대신에 “아직 아님”의 존재론에 입각한 “새로운 무엇”, “전선” 그리고 “최종성”을 추구한다.
제7장. 블로흐와 루카치. 사상과 예술론의 차이점: 루카치와 블로흐를 하나의 장으로 요약 정리한다는 것은 힘든 작업이다. 그들의 연구는 반세기 이상 방대하게 이어졌으며, 조금씩 각자의 입장을 변화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최소한 1920년 대의 시간 그리고 하이델베르크라는 장소를 전제로 하여 집중적으로 다룰 수는 있다. 루카치가 인간 중심주의의 관점에서 사회주의의 실현에 전력투구했다면, 블로흐는 당면한 사회 경제적 문제를 넘어서서, 인간, 사회 그리고 역사를 넘어서는 영역, 즉 물질과 자연 주체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제8장. 표현주의와 리얼리즘, 모더니즘 논쟁: 이 장에서 다루어지는 내용은 표현주의 및 리얼리즘 논쟁이다. 필자는 모더니즘이라는 큰 틀에서 전통의 파괴 그리고 기법의 문제를 다루면서 루카치의 리얼리즘 이론이 어떻게 블로흐, 벤야민 그리고 브레히트의 실험적 예술론과 차이를 드러내는가? 하는 점을 밝히려고 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형식주의에 관한 근본적인 토론이다. 루카치는 전위적 실험 예술을 비판하면서 고전주의 그리고 장편 소설에 기대감을 표명한 데 비해서, 블로흐는 모더니즘 속의 발전과 전망에 커다란 비중을 두고 있다.
제 9장, 블로흐와 벤야민. 역사철학과 예술론: 이 장은 진보에 관한 발터 벤야민의 입장을 블로흐의 전투적 낙관주의와 비교한다. 벤야민은 ”지금 시간 Jetztzeit“이라는 혁명적 사건의 응집력을 표현하는데, 블로흐가 말하는 구원에 관한 열광과 일맥상통한다. 벤야민은 블로흐와는 달리 어떠한 정치적 결단을 선택하지 않았다. 벤야민은 마치 뷔리당처럼 머뭇거리면서, 오로지 예술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세계를 고찰하고 해석하려고 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실험 정신을 담은 아방가르드 예술에 기대감을 표명하였다.
제10장. 저항과 반역으로서의 무신론: 기독교 사상은 블로흐에 의하면 이른바 천지를 창조한 전지전능한 신에 대한 복종 대신에 주어진 현세에서 불의와 부정에 굴복하고 타협하지 않으리라는 거역과 반역의 자세를 지향한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만인의 자유와 평등을 중시하는 ”사랑의 공산주의“라는 점에서 마르크스가 지적한 ”자유의 나라“에 대한 비유와 다를 바 없다. 이와 관련하여 토마스 뮌처가 추구한 평등한 사회 공동체는 ”모든 게 공동 소유다.Omnia sint communia.“라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제11장, 물질, 전진하고 변화하는 가능성: 물질은 블로흐에 의하면 변증법과 유토피아라는 두 개의 카테고리를 통해서 질적으로 변화된다. 물질은 정신과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며, ”힘δύναμη“과 ”에너지ενέργεια“라는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실행한다. 그렇기에 그것은 하나의 개체로 인식될 수 없다. 물질은 블로흐에 의하면 처음부터 완성되고 완결된 존재가 아니며, 끊임없이 변전을 거듭하면서, 모든 존재를 고립 상태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로써 블로흐는 신의 존재를 떨친 포스트 존재론을 물질 개념으로써 밝히려고 한다.
제12장. 역동적 개방성으로서의 카테고리: 카테고리는 논리학에서 말하는 술어적 진술과 관련되는데, 블로흐에 의하면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용어이다. 세계의 내용이 움직이며, 번화하면, 그것을 포괄하는 틀 내지는 격자로서의 카테고리 역시 함께 변모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내포에 해당하는 ”무엇Quodditas“ 그리고 외연에 해당하는 ”그것Quidditas“ 사이의 상호 관계로 파악된다. 카테고리는 블로흐에 의하면 그 방향성에 있어서 일곱 단계를 거치는데, 이 장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 속의 주체와 객체가 각자 동일성의 목표를 추구한다는 사실이다.
제13장. ‘아직 아님’의 변증법과 과정 철학: ”아직 아님“은 가능성에 관한 블로흐의 형이상학적 인식론에서 등장하는 개념이다. 인간은 주어진 현실에서 어떤 결손 내지는 결핍을 인지한다. 현재의 삶은 스스로 갈구하는 무엇이 아직 출현하지 않고 있다. 새로운 무엇은 세계 속에 은폐되어 있으며, 세계의 비밀은 상징과 알레고리 등과 같은 부호로 은근히 드러난다. 블로흐는 ”아직 아님“이 세계 변화를 촉구하는 의지를 자극한다고 강조했다. 이로써 대두되는 것은 ”습득한 희망docta spes“이라는 함의(含意)일 것이다.
제14장: 페미니즘과 새로운 물질 이론: 제13장은 21세기에 출현한 신유물론의 특징에 해당하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파악한 물질 이론의 경향 그리고 사변적 실재론을 개관하려고 한다. 새롭게 제기된 신유물론은 두 가지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그 하나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고찰한 물질 이론이며, 다른 하나는 사변적 실재론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두 가지 사고 경향을 비판적으로 축적한 다음에, 셸링과 세계영혼에 관한 자연철학의 사고 그리고 블로흐의 자연 주체의 논의가 어떻게 신유물론의 기본적 토대로 채택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밝히려고 한다.
제15장. 블로흐의 자연 주체와 새로운 물질 이론: 이미 언급했듯이 인류세에 태동한 신유물론은 두 가지 사회 철학적 방향에 의해 파생되었다. 그 하나는 ”에코 페미니즘“이며, 다른 하나는 ”사변적 실재론“이다. 두 가지 관점은 남성 중심주의 내지는 인간 중심주의에 대한 저항으로서 생태주의 유토피아를 표방한다. 문제는 이러한 사고가 셸링 그리고 블로흐의 철작적 논의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물질은 무기물, 유기물, 동식물과 인간 모두를 포괄한다는 점에서 셸링의 “세계영혼” 그리고 블로흐의 “자연 주체”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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