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Bloch 번역

에른스트 블로흐: 이슬람 광신주의 그리고 절대적 복종

필자 (匹子) 2026. 4. 12. 09:53

아래의 글은 에른스트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 5권 열린책들 2004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 어째서 이슬람의 시아파 남자들이 그토록 열정적으로 전쟁터에서 사망하는 것을 명예로 이기는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그렇디고 해서 이슬람 종교 전체가 한 손에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꾸란을 들고 믿음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일부 종파 사람들이 극단적 사고와 극단적 행동을 일삼을 뿐이다.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이슬람 종교의 장점은 참으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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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요소를 지닌 열광주의는 오로지 두 개의 종교, 즉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에서만 발견될 뿐이다. 이 두 종교는 모세의 사고에서 시작된 것이다. 모세는 황금 송아지를 박살냄으로써, 다른 종교를 전투적으로 배척하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 어쩌면 모세의 배타성은 하나의 모범이나 다를 바 없다. 예수 역시 이 세상에 하나의 불을 당기려고 나타났다는 것을 결코 부인하지 않았다. 또한 그가 살아 있을 때 주어진 세계는 불타고 있었다. 주체는 신을 아직 앞지를 만큼 과감한 일을 저지르지는 못한다. 그러나 주체는 신을 믿는 경건한 인간으로서 신의 노여움을 반드시 바깥 세상으로 이전시켜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모세는 금송아지 앞에서 마호메트와 마찬가지로 행동하고 있다. 여기서 주체는 신의 뜻을 그대로 실천에 옮긴다. 물론 세상이 어떠한 행동을 감행할 수 없을 정도의 수동적 태도를 요구할 때, 모든 것을 체념하며,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고 신의 뜻에 귀의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 가령 이슬람교도에게서 나타나는, 특수할 정도의 열정을 담은 신에 대한 완전한 복종은 어느 순간 전투적으로 돌변하게 된다. 즉 무조건적으로 신을 위해서 싸우는 게 오로지 신의 뜻이라고 믿는 편집광증을 생각해 보라. “절대적 복종”이라는 뜻을 지닌 아랍어, “이슬람 (Islam)”은 마호메트 종교의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절대적 복종의 고백은 다른 어떠한 종교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특성인데, 그 자체 바로 성스러운 전쟁인 “지하드 (Dschihad)”를 의미한다.

 

이렇듯 종교적 열광주의는 모세에게서 시작되었다. 열광주의는 가나안이 정복됨으로써 찬란하게 만개하였다. 그것은 신에 대한 완전한 복종과 함께 초기 이슬람의 하나이자 모든 것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종교 전쟁은 이슬람 (신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통해서 세계에 퍼지게 되었다. “신은 유일하며 알라 신은 알라 신이다. (Adonai echod Allah il Allah)”라는 구호를 생각해 보라. 주체는 이러한 구호를 통해서 극도의 일방적 특성을 견지하며, 계획된 목적을 첨예하게 추구하게 된다. 마호메트가 전하는 기쁨의 전언 자체는 결코 독창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천국으로 향하는 그리스도의 거대한 돌진에 비해서 뒤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 종교는 성서로부터 거대한 열정을 수용하였다. 마호메트는 고통이나 괴로움의 의미가 아니라, 오로지 열정 자체만을 채택했던 것이다.

 

근동 지역에서 천상으로 향하는 길은 거칠고 가파르기 이를 데 없었다. 오로지 한 사람만이 힘든 여정을 견뎌낼 수 있었다. 마호메트는 미래에 도래할 최후의 심판일 이전에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경고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그는 구원자로서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는 매우 강건하지만 간헐적으로 간질병에 시달렸다. 비몽사몽간에 마호메트는 여러 얼굴들과 목소리를 듣는다. 게다가 밤에 꾼 꿈의 상들이 낮에 마치 기이한 환영처럼 그의 뇌리에 너무나 생생하게 떠올랐다.

 

원래 아라비아의 신앙은 돌에 대한 우상 숭배로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모래 폭풍 속에는 거대한 영혼이 도사리고 있으며, 특정한 신이 사막과 황무지를 관장하며, 가뭄의 시기를 조종하고 있다고 믿어왔다. 기원 후 600년경에 마호메트가 들어서게 된 상업 도시는 비교적 낙후되어 있었다. 이 지역을 장악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유대인들이었다. 마호메트의 첫 번째 관심사는 스스로 말한 바 있듯이 아브라함의 순수한 신앙을 재정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승리의 예언자, 마호메트는 사막에서 살고 있는 부족 사람들에게 자신의 교리를 전파한 게 아니라, 아라비아에서 풍요롭게 살고 있는 상인들 그리고 자신의 세력을 확장시켜나가는 대지주들에 대해 전도 사업을 벌였다.

 

마호메트는 결코 좌절하거나 파괴되지 않는 피조물로 간주되었다. 그의 제자 알리 (Ali)는 영국의 역사가, 기번 (Gibbon)에 의해 전해진 전설에 의하면 마호메트의 시신 (屍身) 앞에서 다음과 같이 통곡했다고 한다. “오 예언자여, 죽은 뒤에도 당신의 페니스는 언제나 하늘로 향해 뻣뻣하게 발기해 있으소서. (O Propheta, et in morte penis tuus coelum versus erectus est)”. 종교의 창시자에게 이런 식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은 이슬람교 외에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마호메트가 남긴 중요한 유물이 무기라는 사실은 종교 창시자의 남성성을 그대로 증명해주고 있다. 그의 단검은 “알 페하르 (al Fehar)”라고 일컫는데, “번개처럼 번쩍이는 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알라”는 전쟁의 신, 체바오트 (Zebaoth)이다. 그는 신전을 모시는 기사들로 하여금 조만간 나타날 세계의 심판의 날에 제각기 모습을 드러내게 한다. 이슬람 종교는 알라의 의지에 대한 완전한 복종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복종은 신자들의 마음속에서 전투적인 열광주의로 새롭게 떠오른다. 이렇듯 위협적으로 작용하는 마호메트의 기쁨의 전언은 특히 기사 계급에게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기사 계급은 성장하는 자본가들이 무역을 위해서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데 필요한 존재들이었고, 이로 인해서 많은 기사들이 생겨났다.

 

이슬람의 질적 동질성은 무역, 전쟁 그리고 신앙 등의 강한 바람을 등에 업고 찬란하게 퍼져나가게 되었다. 이슬람은 하나의 제국으로 서서히 무역을 주도해 나갔다. 서쪽 로마의 몰락 그리고 베네치아 그리고 영국의 새로운 부흥 사이에는 이슬람이라는 무역의 제국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슬람 문화는 십자군 전쟁으로부터 크롬웰의 청교도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신의 뜻에 따라”라는 모든 팽창 정책의 원조로 작용하였다.

 

마호메트는 신이 아니라, 인간적 면모를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슬람 사람들은 경제적 팽창 정책을 추진하는 데에 마호메트의 선교 사업이 매우 적절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슬람은 신과 부 (富)의 신, 맘몬 (Mammon)을 동시에 모시기 위하여 교회의 궤변을 조금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는 기독교의 경우와는 다르다. 그러나 그곳 사람들은 신 그리고 전쟁 참여의 의무를 일치시키기 위해서 어떤 독단론을 내세우기도 했다. 가령 마호메트는 “이슬람의 승려들이 행하는 일은 오로지 종교 전쟁이다.”라는 칙령을 공표하기도 했다. 또한 마호메트의 고별 연설은 십자군을 일으켜 비잔틴 사람들과 피비린내 나게 싸우라는 명령을 담고 있다. 마호메트의 후계자, 칼리프 알리 (Ali)는 계승자를 둘러싼 싸움이 일어나고 있을 때 꾸란 (Koran)을 자신의 창에다 동여매었다고 한다.

 

마호메트가 천국에 보존된 암호를 해독하려고 했던 구절과 같은 코란의 봉독을 위한 구절은 총 96 “장 (Sure)”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구절은 주로 전투용으로 사용되던 창에 부착되어 있는데, 명상과는 전혀 거리가 먼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슬람은 마호메트의 전성기를 이른바 “예언자의 출세를 위한 도움의 시간”으로 간주하였다. 이에 비해 쇠퇴기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은 모든 것을 알라 신의 의지에 맡기고, 모든 사건에 대해 수동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슬람교는 정치적인 이유에서 불 그리고 창 등을 동원하여 무신론자들을 개종시키려 했다. 그럼에도 이슬람교도 사이에서는 다른 종교에 대한 관대한 태도 역시 돌발적으로 발생하기도 했다. 가난한 사람은 세금을 지불하는 행위로써 이슬람 종교에 대한 신앙심을 표명하였다. 그렇기에 피지배자들에게 있어서 개종이란 불필요한 일이었다.

 

교회를 정착시키고 이슬람 교리를 확정한 지역에서는 사람들은 독단적으로 비 타협주의를 내세웠다. 이슬람 교리는 스스로 정착되면서 혁신자들 그리고 철학자들에 대항하여 하나의 적대적인 독단론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즉 마호메트의 가르침은 이승의 반역을 꾀하는 종파 운동이든 아니면 저 세상의, 이슬람교리에 입각한 종말론적인 신비주의이든 간에, 과거 메카 시대에 마호메트가 낭독하던 코란 구절에 합당한 “구원” 내지는 “구출되어 나오는 일 (fukan)”을 결코 망각하지 않았다.

 

마호메트의 권한은 다시금 구세주로서 강화되었다. 예언자, 마호메트는 이슬람의 법을 최후에 이르기까지 집행하는, 이른바 “마디 (Mahdi)”라는 것이다. 따라서 맨 처음 출현한 그의 사상은 계속 살아 있다. 마호메트는 경고하는 예언자로서 그리고 최후의 심판 일의 사절로서 모든 사람에게 종교적인 경종을 울린다고 한다.

 

이슬람 교리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은 세례자 요한을 모시는 남부 교회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만다야 (Mandäa) 종파였다. 이것은 페르시아 지역에서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로 이어졌다가, 마니의 종교적 사상으로 계승되었으며, 마니가 죽은 뒤 몇 세기 이후에 이슬람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이슬람 사람들은 종교의 이러한 전파를 통해서 마호메트와 같은 예언자를 신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지상의 무신론자들에 대항할 뿐 아니라, 온 세상에 세력을 떨치고 있는 “아리만 (Ahriman)”에 대항해서 싸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마호메트와 같은 예언자가 그야말로 예언자일 뿐 아니라, 빛의 강력함을 지니고 있다고 굳게 믿게 되었다.

 

마호메트는 인류의 첫 번째 인간인 아담 내지 인간의 아들 예수와 같은 존재로 격상되었다. 이슬람 지역 사람들은 그가 세계 이전에 이미 존재하던 인물이며, 페르시아 사람들, 만다야 종파 사람들, 유대인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믿고 있듯이, 세계가 몰락한 뒤에 계시를 내릴 분이라고 굳게 믿게 되었다. 코란에 의하면 천사 한 분이 첫 번째 인간 혹은 천국의 아담에게 내려갔다고 한다. 이때 마호메트는 아담으로 용해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신비주의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천국의 첫 번째 불”이라고 한다. 이러한 불은 “하얀 진주에서 파생되어 어떤 보이지 않는 면사포에 의해서 이리저리 부유 (浮遊)한다”는 것이다. “마디 (Mahdi)”라는 존재는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성령이다. 그는 마호메트와 동일하거나, 그의 곁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마디는 경건한 방랑자이자, 이슬람교도가 만날 수 있는 축복의 존재인데, 이로 인해서 마호메트의 정신은 결코 죽지 않고, 마디에 의해서 계속 이어진다.

 

그밖에 우리는 마호메트와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어떤 다른 전설적인 인물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는 아라비아의 전설에 나오는 고유한 인물 키드르 (Chidr) 혹은 알 카디르 (al Chadir)인데, 후기 이슬람에서는 가장 비밀스러운 성자로 간주되고 있다. 키드르는 인간에게 전혀 인식되지 않는 존재로서, 끊임없이 마지막 심판의 날을 준비해 나간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인간으로 하여금 천년 왕국의 충동을 지니게 하고, 경건한 이슬람 종교인들을 보호해준다고 한다.

 

어느 찬가는 키드르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키드르, 당신은 영원히 녹색을 자랑하는 분이십니다. 결코 지치지 않는 방랑자여, 당신은 수 백년 혹은 수 천년 동안 육지와 바다를 몸소 돌아다니고 계십니다. 성스러운 종교인들을 가르치고 조언하는 분이여, 당신은 신의 모든 것 속에 자리하고 있는 현인이시자, 불멸의 존재이십니다.” 키드르에 관한 전설은 19세기부터 문헌으로서 증명되기 시작했다. 가령 꾸란의 제 18장 해설 판에는 일곱 잠자는 사람들의 동굴이 묘사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오래 전에 유래한 것이며, 내용 역시도 과거의 문헌 속에서 쉽사리 발견되는 것이다.

 

키드르는 천년 왕국의 정령이다. 그는 마호메트가 사라진 뒤에도 계속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인간과 함께 머무는 존재이다. 키드르는 유럽에서는 마치 기적과 같은 형벌을 내리는 자, 이른바 “아하스베어 (Ahasver)”로 잘못 이해되었다. 그는 성경에서 (물론 최소한 가난함을 그대로 표방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코 예루살렘의 인색한 구두장이가 아니라, 오히려 전적으로 성령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요한 역시 마호메트 신비주의가 드러내는 가장 심원한 형체에 관한 하나의 상을 떠올렸다. 예수가 돌아올 때까지 누군가가 살아 있기를 바라는 제자의 상을 생각해 보라. 이 경우 가장 심원한 형체는 다름이 아니라 “키드르”와 같은 성령의 존재임에 틀림없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 사항이 떠오를 수 있다. 이슬람교만큼 전투적인 종교가 과연 어떻게 메시아의 종말을 갈구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바로 그것이다. 평생 힘들게 전투를 벌리는 이슬람교도들이 마지막에 얻게 되는 것은 안식 (Sabbat)의 장소가 아니라, 전사들이 묻혀 있는 “초혼당 (Walhalla)”이 아닌가?

 

이슬람교도의 종교적 열광주의는 무지막지하게 죽음을 불사하고 싸우는 “광포한 용맹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이슬람 종교 속에서 하늘 나라와 궁극적으로 일치되는 것은 오로지 기쁨, 평화 그리고 휴식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이슬람교도가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결코 파기되는 법이 없으며, 다만 완성될 뿐이다. 세상이 몰락한 뒤에 알라 신의 정원 속에는 생명의 식물들이 그야말로 녹색 빛을 자랑하게 될 것이다. 주로 사람들은 밤에 코란을 접한다. 코란은 상기한 마지막 심판 일이 정의로운 자들의 날로서 도래하기를 기원하며, 사람들에게 전투적이자 도덕적인 기쁨의 전언을 전해 준다. “우리는 권력의 밤에 코란을 아래로 내려보냈노라. 그대는 권력의 밤이 무엇인지 아는가? 권력의 밤은 수천 개의 달이 완성해낸 것보다도 더 많다. 천사들이 내려오고, 밤 속에 영혼이 자리하며, ”모든 것을 생각되었노라“라는 주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권력의 밤은 낮이 도래할 때까지 전적으로 온전한 평화이리라.”

 

이슬람교도들이 말하는 “알라”는 이렇듯 궁극적 승리의 구호이다. 특히 수피 교도의 신비주의는 알라 (Allah)를 “전투에서 승리한 뒤에 누리는 사랑의 기쁨”과 비교하기도 했다. 이슬람교도들은 다음과 같이 믿었다. 즉 전투의 마지막에 거두는 승리는 모든 피조물과 자연에게 거룩한 찬란함을 가져다준다는 것이었다. 모든 선 (善)을 알라와 일치시키는 일 - 그것은 바로 이슬람을 믿는 사람이 알라와 하나가 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