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켈란젤로", 이쾌대 화백의 그림에는 " 고구려 고분벽화를 연상시키는 웅혼한 조선의 미학" 그리고 "강렬하고 주관적인 색채를 강조하는, 서양의 야수파 기법"이 절묘하게 융합되어 있다. 그는 1915년 경북 칠곡에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서울로 떠나 휘문고를 다녔다고 전한다. 그의 형은 몽양 여운형과 함께 활동한 정치가, 이여성이었다. 이여성은 나이 어린 동생의 예술적 재능을 일찍이 간파하고 그를 위해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이쾌대 화백은 1953년 북한을 선택했다. 이렇게 결정을 내린 데에는 그때까지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나이 많은 형, "이여성"의 영향이 컸으리라고 추측된다.

이쾌대 화백의 자화상은 우리에게 묘한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선의 터치가 너무나 강렬하다. 이는 마치 만화 속의 작위적인 인물처럼 느끼게 한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왼쪽에 그려져 있는 세 여인의 모습이다. 한 여인은 물동이를 머리에 얹은 채 어디론가 떠나고 있는데, 두 여인이 손을 들고 그미를 소리치는 듯하다. 여인은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그리고 다른 두 여인은 어떠한 이유에서 두 손을 들고 무언가 소리치는 것일까?
이쾌대 화백은 북한에서 활동하다가 1965년에 유명을 달리했다. 위대한 예술가가 북한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당국의 예술적 지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백안시되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위대한 사상가, 혹은 위대한 예술가가 자신이 선택한 나라로 인하여 비난당한다는 것은 너무나 단선적이 아닌가? 이쾌대 화백이 남긴 일련의 작품 "군상"은 급변하는 시대에 서로 돕거나 서로 갈등하는 사람들을 화폭에 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인의 정 그리고 애환을 접할 수 있다.

이쾌대 화백의 그림 "소녀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이 작품은 1940년대 어느 처녀를 현대적 감각으로 그린 것이다. 그림을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는 소녀의 윤곽이 이중적인 선으로 흐려져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어쩌면 화백은 한 작품에 두 개의 서로 다른 소녀의 면모를 담으려고 의도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그림 속의 처녀는 현대적 여인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자신의 뜻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현대적인 이미지가 돋보이고 있다. 그런데 화백은 어떠한 이유에서 작품의 제목을 "소녀상"이라고 명명했을까? 이러한 물음은 앞에서 언급한 도드라진 배후의 윤곽 속의 상과 관련된다. 소녀의 윤곽은 어째서 두 개일까?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는 에스키스의 상이 덧칠되어 사라지고, 그 위에 다시 소녀상이 그려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작품 속의 소녀의 이미지는 일제 강점기에 해외로 끌려간, 혹은 속임에 의해서 따난 조선 처녀들과는 정반대의 상으로 그려져 있다. 그림 속에서 자유롭고 생복하게 살아가는 처녀의 모습은 우리에게 소녀상으로 잘 알려진 김서경, 김운성 화백의 너무나 슬퍼서 냉정한 소녀와는 정반대되는 상이다. 어쩌면 이쾌대 화백은 두 가지의 서로 어긋나는 반대급부의 함의를 우리에게 전하려고 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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