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피에르 쇠라 (1859 - 1891)는 단 한편의 그림으로 미술사를 새로 쓰게 한 화가입니다. 그는 점묘 화법으로 신인상주의의 길을 개척하였습니다. 화가는 일요일 오후의 저주스러운 권태를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습니다.

어설픈 해설
삶에서 노동이 지니는 의미는 매우 큽니다. 일하지 않으면, 끼니를 구할 수 없습니다. 노동의 생산성은 얼마나 휴식을 취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일요일의 휴식 그리고 저녁 시간의 여가는 노동을 위한 부수적인 조건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노동과 빵만으로는 살 수 없으며, 심리적 갈망 역시 충족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동과 여가를 철저하게 구분하게 한 당사자는 자본주의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대체로 힘이 들지만, 너무 오랜 휴식은 오히려 지루함을 안겨주니까 말입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노동은 결코 즐겁고 창의적일 수 없으며, 여가 생활은 노동을 위한 재충전을 뜻하기 때문에 그저 따분함만 증폭시킵니다.
가령 조르주 피에르 쇠라Georges Pierre Seurat의 그림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에 묘사된 저주스러운 권태를 생각해 보세요. 그들은 마치 표정 없는 강시처럼 보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즐겁고 창의적 노동과 축복의 휴식을 병행하는 삶일 것입니다. 이러한 삶에서 개개인은 무엇보다도 놀라움과 희망의 정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가 개인 위에 군림하지 말고, 개개인에게 자발적인 방식으로 노동과 휴식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지요.
노동과 여가에 관한 분명한 지침은 무엇일까요?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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