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월용 화백은 1917년 연해주 쉬토코프스키에서 태어났다. 1930년대에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 이주 정책 때문에 그의 가족은 타쉬켄트로 이주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유학 중인 관계로 화를 면했다. 그는 예술적 재능을 인정받았으며, 레핀 대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북한에 초청을 받고 일시적으로 거주하기도 했다.

변월용 화백이 주로 그린 그림은 소나무였다고 한다. 그리운 한반도, 끝없이 박해 당하고, 유랑해야 했던 민족의 비운이 한국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를 떠올리게 했던 것이다. 소나무 그림은 명작이며, 동시에 감동 그 자체다. 아래의 그림은 변월용 화백의 어머니다.

위의 그림은 그가 어머니를 기리면서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을 바라보는 순간 내 가슴이 철석 내려앉는 것 같았다.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의 모습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주관적인 평을 계속 쓰면, 감상(感傷)의 나락 에 빠질 것 같아서, 김명렬 선생님의 책 "문향"에 기록된, 너무나 감동적인 문장으로 갈음하려고 한다. 혹시 저작권을 침해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조선의 황토로 빚은 항아리 - 그보다 더 조선의 백성, 특히 조선 여인의 삶을 적절히 상징하는 것이 달리 무엇이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 안에는 필경 된장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변 화백의 어머니는 그것을 끓여 먹여 자식을 키웠을 것이고, 이제는 러시아인 며느리에게도, 거기서 난 손자들에게도 먹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 오지항아리와 거기에 든 음식, 그리고 고향은 꿈길로도 닿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진 이국땅에서도 곱게 차려입은 한복 - 그 끈질긴 조선인의 정체성은 나라 잃은 백성, 남의 나라에서도 다시 내쫓긴 버려진 종족, 그중에서도 또 약자인 여인이 지킨 것이기에 눈물겨움을 넘어 머리가 숙여지는 숭고함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살아온 자기 어머니의 일생을 변 화백은 그의 두 손으로 집약하고 있었다. 마치 예를 올리듯이 앞으로 공손히 맞쥐고 있는 두 손은 여인의 손이라고는 하기에 너무나 투박하고 뭉툭하였다. 그것은 얼음물이면 얼음을 깨고 들어갔고 불구덩이면 불덩이도 집었으며 흙을 헤집고 돌을 파내느라고 뼈마디가 굵어지고 손끝이 무디어진 손이었다. 수다한 식구의 입에 먹을 것을 마련하고 가정을 세운 손, 그 모든 공이 제 것이건만 그것을 모르는 채 겸허하게 자신을 낮추고 있는 손 - 나는 와락 그 손을 가 붙잡고 목놓아 울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슬프기만 한 손은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끝없는 봉사와 헌신과 자기 희생으로 사랑을 실천한 위대하고 거룩한 손이었다. 나는 그런 손을 변 화백의 어머니에게서 말고는 테레사 수녀에게서 보았을 뿐이다. 그래서 그 손은 붙잡으면 눈물을 흘릴 뿐 아니라 무릎 꿇고 경배하고 싶은 손이었다. 변 화백은 당연히 그 손을 화면의 정중앙에, 조명이 제일 밝은 곳에 위치시켜 강조하고 있었다."
김명렬 산문집: 문향, 푸른 사상 2018, 19쪽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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