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실러 (Fr. Schiller, 1759 - 1805)의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하여 (Briefe über die ästhetische Erziehung des Menschen)"는 1793년 잡지 호렌에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실러의 서한문은 1791년 11월에 어느 귀족으로부터 3년간의 후원금을 받고 집필된 것이다. 원래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프랑스 혁명으로 인한 전 유럽적인 위기 때문이었다. 또한 실러로서는 프랑스 혁명에 (간접적이긴 하나, 깊은) 영향을 끼친 장 자크 루소의 교육철학적 입장에 대해 유건 해석을 내리고 싶었다.
실러는 서간문에서 이미 칸트가 철학의 영역에서 시도한 바 있는 내용을 진척시키려 하였다. 그는 예술을 하나의 철학적 과학에 버금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했던 것이다. 이로써 실러는 미의 인식에 관한 원칙적 특성을 파악하고, 이를 명확히 규정하는 데 서한문의 목적을 두었다. 실러에 의하면 아름다움이란 (무엇보다도 경험적 규칙에 의존하는) 감정의 힘과 같은 주관적 유희가 아니다. 그것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성의 법칙에 근거하며, 이에 의해 합법화될 수 있다고 한다.
실러의 미에 개념은 불명확하다. 그것은 오늘날 사용되는 도덕적 개념과 분명하게 구분되지는 않는다. 미적 교육의 개념 역시 도덕적 품위와 관련시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이다. 가령 미적 교육에 대한 실러의 개념은 「우아함과 품위에 관하여 (Anmut und Würde)」와 밀접한 관련을 지니는데, 이 내용은 실러가 아우구스트 왕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약간 달리 기술되고 있다. 여기서 실러는 프랑스 혁명의 여파가 아름다움과 문화 등에 대한 이론적 결핍을 가져 왔다는 것을 한탄하고 있다. 그리하여 실러는 동시대인들을 심리적으로 병들게 한 문화적 황폐화 현상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따라서 실러는 무엇보다도 아름다움과 도덕을 강조하면서, 이를 통해서 상기한 현상을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예술의 치료적 기능이 언급되고 있다.
동시대에 관한 분석에서 실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즉 개개인들은 높은 수준의 문화를 습득하고, 이를 통해서 자신의 분화된 면모를 어느 정도 수정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찢겨질 대로 찢겨진 인간의 본성이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고 실러는 믿었다. 그러니까 세분화의 극복이야 말로 문화의 절실한 과업이다. 이러한 과업을 수행하게 해주는 것은 실러에 의하면 바로 예술이다. 예술은 전인적 인간형을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소외 내지는 분화 현상을 극복하게 한다. 실러의 이러한 입장은 당면한 정치적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것은 한마디로 “고결화 (Veredelung)”라는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실러에 의하면 정치적 발전 역시 아름다움에 의해서 도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러는 소재의 특징으로서의 “감각적 충동 (Stofftrieb)”을 형태의 특징으로서의 “지적 충동 (Formtrieb)”과 대립시킨다. 이러한 대립은 궁극적으로 예술과 직결되는 “유희 충동 (Spieltrieb)”을 내세우기 위함이며, 이로써 휴머니즘이 보장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은 적어도 유희하는 동안에는 세분화 내지는 자기 소외를 느끼지 않고, 오로지 전인적 인간일 수 있다고 한다. 미적 감정은 실러에 의하면 인간으로 하여금 제반 충동의 평형을 유지하게 하며, 나아가 인간을 자유롭게 만든다.
마지막 편지에서 실러는 자연의 실제 존재와 가상적 예술 사이의 상관관계를 자세히 설명한다. 실러의 편지는 이상 국가에 대한 요구로 끝난다. “자유를 통해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국가의 기본적 법이다.” 여기서 실러가 말하는 아름다운 상으로서의 국가는 모든 예민한 영혼 속에 내재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실러는 미적 국가의 이상을 그저 불명확하게 피력하고 있으며, 너무나 이상주의적 구도 속에서 다루고 있다. 따라서 그의 텍스트는 현대적 시각에서 그의 텍스트를 읽으려면 우리는 당시의 관습, 도덕, 법 등과 같은 역사적 맥락을 철저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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