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문학 이론

박설호: (2) 표현주의, 리얼리즘, 모더니즘 논쟁

필자 (匹子) 2025. 12. 29. 11:37

 

(앞에서 계속됩니다.)

 

7. 루카치의 표현주의 예술과 실험성 비판: 루카치의 입장은 바로 이러한 정치적 예술적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예술을 둘러싼 인민 전선의 논쟁을 점화시킨 사람이 바로 루카치였다. 말하자면 그는 어떻게 해서든 전통의 파괴 현상을 차단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는 고전주의의 예술적 입장을 표방하는 루카치는 이전의 모범적 범례를 추종해야 한다고 항변했다. 블로흐는 젊은 시절의 친구를 다음과 같이 비난했다. 즉 루카치는 예술뿐 아니라, 이를 넘어서는 문화 전체에 대한 자신의 학문적 주장을 강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정치적 당파성을 이용하고, 여기에 자신의 예술론을 대입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논의 속에서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믿어왔던 참된 내용이 자리하지만, 이후의 시기에도 타당성을 완전히 인정받지 못했다.

 

블로흐 자신도 지나간 문화를 계승하는 작업에서 루카치의 주장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 관점에서 그는 루카치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격분하기도 했다. 발터 벤야민은 시민주의 교양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블로흐보다도 더 체계적으로 그리고 열정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지만, 시민 사회에 축적된 문화적 유산에 대해 전체적으로 긍정적 견해를 표방했다. 그러나 루카치는 모든 실험적 예술에 대해 형식주의라는 덫을 씌웠다. 루카치의 노여움은 무엇보다도 현대의 실험 예술가 자신의 표현적 기교로 향했다. 루카치는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를 적대시하였으며, (카프카가 시도한) 예술적 내용을 경직된 틀에 의해서 꿈 내지는 신화의 특징으로 환치시키는 작업을 용납하지 않았다. (Matzner: 171).

 

8. 19세기 사실주의 소설 문학에 대한 루카치의 긍정적 평가: 루카치는 처음에는 독일 아카데미즘의 예술론에 저항하려 했다. 초기에는 대학에서의 전체성 추구의 성향을 예술의 영역에서 분리하려고 하였다. 예술이란 루카치에 의하면 파괴에 관한 가능한 경험을 밝혀주는 무엇이라고 했다. 전체성의 전통이 파괴되는 시대에 예술은 불가능한 무엇을 지향하며, 이를 추구해 나간다고 했다. 이 점에 있어도 그는 일시적으로 블로흐의 예술론에 동조했다. 루카치는 19세기 사실주의 작가인 슈토름Storm, 뫼리케Mörike 그리고 스위스의 고트프리트 켈러Gottfried Keller 등의 비더마이어의 순수한 의미를 추적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19세기 사실주의에 나타난 전통의 단절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당시 작가들은 과거지향적 초월 혹은 주어진 세상에 나타난 비동시적인 요소 등을 암시해 준다는 것이었다. 루카치는 현대적 관점에서 시민 사회의 성장 시기의 사실주의 문학을 완강한 자세로 찬양하였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항은 루카치의 찬양이 무엇보다도 장편 소설이라는 서사적 장르에 국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9. “기술은 오로지 경제적 생산력의 관점에서 유효하다.” (루카치). 루카치는 오로지 기술적 관점에서 19세기 사실주의 문학을 우호적으로 평가했다. 안나 제거스Anna Seghers는 당파성과 노동자의 계급 투쟁을 중시하는 루카치의 리얼리즘 이론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고전주의는 건강하고, 낭만주의는 병적이다.”라는 루카치의 괴테 수용에 이의를 제기한다. (최영진: 163). 가령 카프카와 클라이스트의 문학은 안나 제거스에 의하면 비록 일그러진 현실의 단면을 다루고 있지만, 주관적 관점에서 세계의 본질을 가장 솔직하게 묘사한다는 것이다. (Seghers: 202). 루카치는 제거스의 이러한 주장을 수용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아카데미즘이라는 문헌학적 관점에서 19세기 사실주의 문학으로 빠져들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리얼리즘의 소설에서 도출될 수 있는 것은 루카치에 의하면 하나의 시학 내지는 미학인데, 이는 마치 수공업자의 작업 방식처럼 합리적 방안에 의해서 기술적인 무엇으로 옮겨놓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오로지 기술, 즉 생산 유형만이 유산으로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말하자면 독일의 강단 학자들은 미메시스를 추종하면서 19세기 사실주의자들처럼 글을 써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들에 비해 루카치는 생산 행위의 관점 내지는 생산력이라는 발전의 매듭을 무엇보다도 강조한다. 여기서 생산의 상태라든가, 생산을 낳게 하는 다른 제반 조건에 관한 의미 영역은 배제되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 그의 견해는 현대적인 특성을 표방하는데, 이는 전통 단절의 문제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10. 기술과 도구주의는 예술의 영역에서 동일하게 활용될 수는 없는가? 루카치는 수미일관 기술과 관련하여 지극히 현대적인 자세를 취해 왔다. 누군가 “루카치는 낡은 기술을 구출하려고 한다.”라고 비난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의 사실을 증명해 내려고 한다. 누군가 오래된 기술의 구조 속으로 깊이 파고들면, 그 속에는 최첨단 기술이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루카치의 기술에 관한 긍정적 자세는 여기서 지엽적인 사항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왜냐면 루카치는 기술에 대한 긍정적 사고와 기술적 도구주의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이해하고, 모더니즘의 아방가르드 예술이 채택하려고 하는 기술적 도구주의 그리고 이와 관련되는 표현 방식을 무차별적으로 비난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루카치는 예술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예술가들에게 부담을 안겨준 셈이다. 우리 앞의 현실에는 전체성이 파괴되어 있고, 찢어진 채 너덜너덜하게 드러난 채 사람들에게 커다란 실패를 안겨줄 것 같다. 그래서 예술은 어떻게 해서든 오로지 기술을 동원해서 어떤 가능성의 세계를 재발견해야 한다고 루카치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기술적 도구주의를 반영하는 실험 예술에 대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완강한 자세로 반감을 드러내었다.

 

11. 블로흐, 모더니즘의 실험 정신을 찬양하다: 블로흐는 기술 자체의 방법론을 깊이 고려하지 않은 채 모더니즘 이전 시대의 예술에 익숙해 있었다. 그래서 그는 1920년대 아방가르드의 예술적 유희 유형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블로흐는 처음부터 예술에서 나타난 전통 단절의 현상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며, 시대적 경향으로서의 모더니즘을 환영하며 지지했다. 현대의 형식주의는 또 다른 비판적 리얼리즘을 위한 거대한 실험 공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험 예술의 형식주의란 블로흐에 의하면 “아직 아님”과 관련된 미래의 현실을 포착하며, 지금까지 한 번도 출현하지 않은 현실 상을 신선한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블로흐는 기술 영역 내지는 도구주의의 관점을 벗어나게 된다.

 

예술적 작업 유형으로서의 “어떻게?”라는 질문은 블로흐에게는 혁신적 관점에서 “무엇이?”라는 질문으로 도치된 셈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실험 예술로 형상화된 상은 창작 기술 내지는 방법의 차원이 아니라, 아직 태동하지 않은 새로운 현실상 그 자체로 이해되었다. 블로흐와 루카치의 이러한 어긋난 관점은 형식주의의 토론에서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블로흐는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의 회화 작품에서 “새롭게 도래할 눈부신” 미래상을 투시하려 했다면 (Bloch, EdZ: 255), 루카치는 비구상적 회화에 담긴 현실 왜곡의 표현 방식을 질타했다.

 

12. 전위주의 예술에 대한 브레히트와 벤야민의 태도: 브레히트 역시 루카치와 다른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망명의 삶을 살아야 했으므로, 자신의 예술적 지략을 공론화할 수 없었다. 자신의 견해를 글로써 밝혀 공개하는 것은 신중한 처사가 아니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혁신적 예술론을 구상하기 위해 도입되어야 하는 것은 예술적 표현을 위한 새로운 기술이며 이를 발전시키고 탐구하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브레히트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즉 사람들이 형식주의라는 실험 현장에서 어떤 다른 무엇을 배울 수 있는데, 루카치는 형식주의 자체를 비난함으로써, 이러한 배움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했다고 말이다. 벤야민은 전체적 관점에서 표현주의, 형식주의 그리고 리얼리즘 등을 둘러싼 논쟁에 관여하려고 했다.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에서도 언급되고 있듯이, 그는 비밀리에 당시에 대두된 자동화 기계화의 시대적 분위기를 받아들여, 새로운 표현 기술이 이미 변화된 현실의 구조 그리고 새로운 경험을 얼마든지 예술적으로 훌륭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확신했다. (Benjamin, GS I, 2: 459). 이로써 혁신적 표현 기술은 새로운 현실적 구조에 근거하여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벤야민은 브레히트의 예술적 창작에 직접 활용될 수 있는 어떤 다른 현실의 가능성 내지는 주어진 현실과는 다른 무엇 등을 중요한 이슈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로써 블로흐의 유토피아 기능에 입각한 예술론에 대한 벤야민의 수용은 차단되고 말았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