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7. 케이트, 시프리아노와 결혼하다: 라몬이 추구하는 과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은 채 실패를 맛보게 됩니다. 케이트는 서서히 시프리아노에게 매혹당하게 됩니다. 사실 그는 인디언 출신이며, 언어도 달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가가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지닌 영혼의 마력에 침잠하게 됩니다. 시프리아노는 자기 자신이 아즈텍 남부의 전쟁 신, “휘칠로포흐트리Huitzilopochtli”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축제는 야밤의 시간에 피를 서로 나누는 예식으로 이어졌습니다. 시프리아노는 “삶의 비밀을 개방하기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가 반드시 서로 피를 나누어야 한다.”고 일갈합니다.
케이트는 시프리아노에게서 태고의 신비로운 팔루스이 위대함을 감지합니다. 팔루스는 남성성으로 요약되는 신과 악마의 뒤섞인 존재나 다름이 없습니다. 케이트는 결국 시프리아노와 결혼식을 거행합니다. 그 후에 스스로 잊고 있었던 성적 욕망이 그를 통해 깨어나게 됩니다. 문제는 시프리아노가 그미에게 자기 독립성을 포기하라고 강권하는 데 있었습니다. 처음에 케이트는 남편에 대한 절대적 복종에 거부감을 느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를 따르게 됩니다. 케이트가 지하의 세계에 침잠한다는 것은 그미가 명부(冥府)의 왕인 플루토에 의해 수동적인 존재인 페르세포네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8. 소설의 주제, 생명과 피: 작품은 주인공 케이트의 정신적 방랑의 과정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그미는 서구 문명이 “말라비틀어진 불임(不姙)의 황량한 무엇”이라고 규정합니다. 유럽 사회는 자연스러운 사랑의 삶을 적대적으로 간주한다는 게 작가의 지론입니다. 사실 로렌스는 작품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즉 인간은 지성과 이성이 아니라, 본능과 감정의 극대화 작업을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종교 역시 이러한 과정에서 필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집필할 당시에 다음의 사항을 창작 의도로 설정하였습니다. 즉 기독교에 물든 멕시코 지역은 어떻게 해서든 아즈텍 신앙이 자리하는 공간으로 환원되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인류가 쟁취해야 하는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로렌스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습니다. 어떤 근원에서 격세 유전적으로 파생된 새로운 종교야말로 인류에게 생명의 신비로움을 안겨주게 되리라고 말입니다.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생명”과 “피”인데, 이를 수행하는 새로운 종교는 찬가, 춤 그리고 놀라운 제식을 통해 생명력 넘치는 우주와 아우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때 “섹스와 ”종교“는 목표와 수단이 하나의 모토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9. 종교는 무엇을 추구하는가? 성욕과 파시즘: 로렌스의 주장은 두 가지 점에서 어떤 의문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첫째로 힌두교를 제외하면, 모든 종교는 구도의 수단으로 금욕을 내세웁니다. 왜냐면 성적 쾌락은 일시적이며, 인간 영혼의 구원을 영구히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섹스와 종교를 결합하는 범례는 학문적으로 그리고 문학 작품에서 다루어진 바 있습니다. 가령 B. 말리노프스키Malinovski는 남태평양 트로브리안드 제도를 탐사하여, 원주민들의 토템 신앙이 어떻게 섹스와 결합하는가를 추적한 바 있습니다. 올더스 헉슬리A. Huxley는 유토피아 소설 『섬』에서 동양의 불교와 힌두교의 믿음을 결합하여, 사랑의 요가, 즉 ”미투나 Mithuna“를 실험적으로 묘사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늘날의 신앙인들은 대체로 종교적 신앙이 성과 합치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멕시코의 원시 신앙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은 유럽 사회로부터 등을 돌린 채 원시시대, 혹은 미개 사회에서 인간 삶의 원형을 찾던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 Jung의 의향과 연결되고 있습니다. 곰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벌이는 원시 부족의 광란은 궁극적으로 ”피“ 그리고 ”토양“에서 인종적 근원을 찾으려던 파시스트의 몸부림과 다르지 않습니다.
10. 팔루스, 남성 중심주의: “깃털 달린 뱀”은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와 케이트 밀렛Kate Millett과 같은 페미니스트로부터 비판을 받았습니다. 드 보부아르는 “깃털 달린 뱀”이 로렌스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성 행동 양식을 가장 명확하게 표현한 소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로렌스는 완전한 사랑을 위해서 여성이 “자기 입장을 포기”하고 모든 자존심과 의지를 버려야 한다고 강권한다는 것입니다. (de Beauvoir: 51, 243).
밀렛은 이 소설을 동성애적이라고 평했습니다. 그미는 "봉헌식 장면"을 로렌스 소설에 나타나는 "소아성애peadophile“를 상징적으로 대리하는 장면의 예로 규정했습니다. 작품에는 로렌스의 "원시적 파시즘적 어조", "폭력에 대한 성향", "오만함", 그리고 "인종적, 계급적, 종교적 편견" 등이 드러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정치와 삶의 다른 영역에서의 남성적 승리를 암시하며, 남성 우월주의 내지는 남근 우월주의의 믿음을 은근히 조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Milett: 282ff).
11. 다시 로렌스 문학의 특징과 한계: 모든 문학 작품은 하자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로렌스의 작품을 비판적 관점에서 투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로렌스가 서구 유럽 사회를 성을 부정하는 삭막한 계층 사회로 규정하고, 이를 문학 작품으로 다루었다는 것은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닙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멕시코의 문명과 토속 신앙을 끌여 들어서, 섹스와 종교의 상호 연결 가능성을 작품에 반영하려고 했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이 작품은 ”로렌스 자신의 욕망 충족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사공철: 72).
그렇기에 우리가 비판해야 하는 것은 여성의 관점을 무시하고 여성의 육체를 미의 대상으로 투시하려는 로렌스의 남성 중심주의의 시각입니다. 등장인물, 케이트는 무조건 시프라이노에게 복종하고, 테레사는 라몬에게, 절대적으로 자신에게 의탁하는 것은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고찰할 때- 작품의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멕시코의 이국적인 풍경 그리고 중남미 축제의 삶에 관한 생동감 넘치는 서술은 가독성을 높이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참고 문헌
- 사공철: 로렌스의 “날개 달린 뱀”의 4각 사랑에 투영된 남성 우월주의, in: 영어 영문학 연구, 60권 2호, 2018, 61 – 80.
- 엄정옥: 로렌스와 반여성주의, in: 영어영어영문학연구, 26 권 1호, 2000, 211-28.
- de Beauvoir, Simone:. Das andere Geschlecht . London 2011.
- D. H. Lawrence: The Plumed Serpent, New York 1974.
- Millett, Kate. Sexualpolitik . New York 1990.
- Thies, Henning: Hauptwerke der englischen Literatur 2, München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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