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현대영문헌

박설호: (3) 칼렌바크의 '에코토피아'

필자 (匹子) 2025. 11. 8. 11:21

(앞에서 계속됩니다.)

 

15. 교통과 기차여행: 도시와 도시 사이의 인적 물적 교류는 주로 기차로 이루어집니다. 고속도로는 존재하지만, 이전처럼 자동차가 많이 달리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국가는 석유 내지 휘발유 자동차들을 더 이상 사용하지 말도록 조처했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사람들의 편의를 위하여 열차는 5분 간격으로 도시와 도시 사이를 달립니다. 이러한 교통수단을 마련함으로써 사람들은 주차난, 소음, 교통 혼잡 그리고 공해 등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에코토피아에서는 여객기가 더 이상 운행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기차는 시속 360킬로미터의 빠른 속력으로 달립니다. 정부는 시애틀에 있는 보잉사의 생산 설비를 바탕으로 전국에 새로운 철도망을 건설하였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애틀까지 철도 건설의 비용은 초음속 여객기 10대의 비용과 맞먹습니다. 사람들은 “한 사람의 기차여행을 위한 경비는 비행기로 운행하는 경비보다 적게 소요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Callenbach 1986: 18).

 

16. 에코토피아의 노동정책과 군사문제: 에코토피아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루 4시간 노동하게 하였습니다. 이로써 노동의 생산력은 떨어지고, 국민 총생산 역시 과거의 국가에 비해서 3분의 1정도 감소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경제적 재앙이 인류의 생존을 가로막는 재앙은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약간 가난하게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자연의 황폐화를 사전에 차단시킬 수 있다면, 약간의 가난은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농업이 정부 차원에서 관리되고, 석유 채굴 사업 및 석유와 관계되는 일련의 산업들은 중단되었습니다.

 

백화점이 강제로 통합되었으며, 이윤 추구의 목재 산업을 위협하는 자연보호 법이 제정되었습니다. 물론 일부의 사람들은 외부의 국가의 군사적 개입을 하나의 논거로 내세우며, 이러한 법에 반대했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에코토피아인들은 미국 정부가 에코토피아를 침공하는 데 3개월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아내고, 민병대를 창설하고, 유럽으로부터 무기를 수입하였습니다. 에코토피아 국가는 미국 동부 지역에 핵무기를 매설해 두었다고 엄포를 놓자, 미국은 더 이상 침공하지 않습니다. (Callenbach 1986: 73).

 

17. 생태를 위한 산업: 석유 화학 중심의 공장이 문을 닫게 되자, 실업자가 속출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에코토피아 정부는 철도망 건설 및 하수 처리장 등의 순환 처리 건설 사업을 통하여 실업자들을 재고용하게 됩니다. 또한 정부는 각지에 퍼져 있던 주유소를 해체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이로써 에코토피아 사람들의 소득은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의식주에 있어서 그들이 불편을 겪는다든가 의사의 진료를 받지 못해서 고통을 겪는 경우는 드뭅니다. 자동차, 고급 음식 그리고 서비스 산업에 길들여진 부유층 사람들의 하소연은 묵살되었습니다. 에코토피아는 정치적으로 미국과 완전 분리를 선언했으나, 예외적 분야에서 인접 국가들과의 교역을 완전히 중단하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극소수의 금속은 전동기의 부품 제작을 위해서 수입되고 있습니다.

 

에코토피아의 공장은 물건들을 대량으로 생산하지 않습니다. 에코토피아인들은 가급적이면 모든 물건을 손으로 제작하려 합니다. 조립된 미니버스라든가 통나무 트럭들은 전복 껍질로 치장해 있으며, 최대한 시속 50 킬로미터로 달릴 수 있습니다. 차체 앞 축의 받침대는 금속 대신에 나무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택시도 소량으로 생산되는데, 택시의 차체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무척 가볍습니다. 공장에서는 완제품이 생산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절반쯤 완성된 차의 뼈대만 구입하여, 집에서 차를 조립할 수 있습니다. 차의 뼈대에는 전동기, 브레이크가 장착되어 있고, 조종간, 차체 받침 틀, 가속기, 계기판 헤드라이트 그리고 뒤축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18. 목재산업: 에코토피아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은 목재 산업과 관련된 것입니다. 에코토피아인들은 나무를 거의 숭배할 정도로 귀하게 여깁니다. 굳이 목조 건물을 짓고 싶은 사람은 일단 삼림 캠프에 가서 일정 기간 동안 “삼림 봉사”의 일을 행해야 합니다. 목재를 구매하려는 자는 몇 달간 숲에서 공익근무를 행해야 합니다. 목재 운반을 위해서 전용 트랙터가 사용됩니다. 소나 말은 묵재의 운반에 사용되지 않습니다. 소나 말이 목재를 끌게 되면, 인접 나무가 손상되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형 디젤 트럭이 드물게 사용되기도 합니다.

 

에코토피아인들은 죽은 나무들을 함부로 벌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은 나무는 딱따구리 그리고 사슴들의 서식지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에코토피아는 어떠한 경우에도 목재를 외국으로 수출하지 않습니다. 특히 가파른 지형에서의 벌채는 철저하게 법으로 금지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무를 베어버리면 토양의 침식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에코토피아인들은 나무가 얼마나 자연재해를 예방하게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19. 에코토피아의 법체계: 에코토피아의 법원들은 지방분권화 되어 있습니다. 생태국가에도 징역형이 존속합니다. 횡령, 사기, 공문서 조작 등의 범죄는 폭행과 강도 살인처럼 엄중하게 처벌 받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벌금형이 선고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고위층 사람들이 벌금을 내고 징역형을 면제받는 시민 사회의 예를 생각해 보세요. 벌금형이 없다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평등한 법질서를 적용하겠다는 국가의 의지가 반영된 것입니다. 원래 돈으로 자신의 죄를 상쇄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이로써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공식은 효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 범죄 가운데 특히 폭행죄는 가혹하게 처벌됩니다. 폭행을 저지른 죄인은 뉴욕의 경우 1년에서 5년 사이의 구금형선고에 18개월 복역하고 출소하지만, 에코토피아에서는 꼬박 5년 만기를 채운 뒤 출소합니다. 이 경우 가석방 제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

 

20. 인종 문제와 감옥의 시설: 에코토피아에서는 흑백 인종 사이의 갈등 또한 크지 않습니다. 흑인들은 주로 “솔 시티”라는 도시에 운집해 있습니다. 이곳에서 사용되는 제 1외국어는 수아헬리 Suaheli입니다. 그들은 흑인들만의 분리 독립 국가를 만들자고 토론을 벌이지만, 그렇게 될 확률은 거의 희박합니다. 이곳에서는 흑인들이 백인들보다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까닭은 그들이 백인들에 비해 더욱 열심히 일하기 때문입니다. (Callenbach 1986: 132). 이로써 작가는 인종갈등을 해결하고, 미국 사회에 뿌리를 내린 “차이나타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한 게 분명합니다.

 

거대한 감옥은 모조리 철폐되었으며, 모두 자그마한 규모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감옥이라고 해서 수인들이 24시간 갇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낮에는 수인들도 직장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며, 다만 저녁이 되면, 감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따라서 감옥은 “저녁에 반드시 취침해야 하는 공간”으로 이해될 뿐입니다. 수인들 가운데 아내와 남편도 원하면 감옥에서 함께 지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제도를 실행하다보니, 간수의 역할이 줄어들어서, 정부는 불필요한 인력과 경비를 삭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옥 생활을 이러한 방식으로 바꾼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전통적 감옥 체제는 인간의 난폭함을 부추긴다고 합니다. 구금은 심리적으로 불안하게 되고, 이러한 불안은 다시 사회적 범죄를 야기한다는 것입니다.

 

21. 에코토피아의 학교: 에코토피아인들은 얼핏 보기에 학교를 가장 낙후하게 만들어놓았습니다. 첫째로 시간표가 느슨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지각과 조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학교에는 교무실이 없습니다. 시작을 알리거나 끝을 알리는 종은 아예 없습니다. 수업은 하루 한 시간 정도 행해지는데, 주로 탐험과 실습으로 이루어집니다. 학생들은 배낭을 메고 여행하거나, 험준한 지역에서 야영하기도 합니다.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기초 학문이 아니라, 생존 기술입니다. 가령 황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학생들은 낚싯바늘, 덫, 활, 화살 등을 만들고 활용하는 법을 배웁니다. 또한 학생들은 사슴, 여우, 산토끼, 퓨마, 살쾡이 회색 곰 그리고 늑대까지 사냥할 수 있는 기술을 익힙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는 활과 화살입니다. 학생들은 식용실물의 뿌리나 열매를 식별하는 방식을 배우고, 비누 대용으로 비누나무를 활용하는 방법 그리고 나뭇가지로 냄비집게를 만드는 법을 습득합니다.

 

모든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목공 일을 배우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은 건설 현장에 배치되어 목재, 석재 그리고 무거운 건축 자재들을 다루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그들은 다루기 힘든 아이들을 학교에 적응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학교를 아이들에게 적응시켜야 했다.” (Callenbach 1986: 151). 학생들이 학교에서 일제고사를 치르는 경우는 한 번도 없습니다. 그 대신에 12세 그리고 18세의 학생들은 국가시험을 치릅니다. 모든 학생들은 일정 금액의 수업료를 납부해야 하며, 장학금 제도는 거의 없습니다. 정부는 가난한 가정에 교육 자금을 무조건 보조금 명목으로 지급합니다. 보조금의 일부는 반드시 자녀의 수업료로 지출해야 합니다.

 

22. 에코토피아의 대학 개혁: 에코토피아 정부는 인문 사회과학의 분야를 축소하였습니다, 대신에 경제학과 역사학 분야만큼은 지원을 아끼지 않지만, 정치학, 심리학 그리고 사회학 교수들로 하여금 다른 직업을 선택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 교수들은 철학과 생물학으로 전공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생물학과 유기화학의 교수들은 해초에서 전기 에너지를 추출하는 광화학 작용을 연구하게 하였습니다. 교수들은 연구 교수와 강의교수로 나누어집니다. 강의 교수는 학생들이 납부한 수업료에서 봉급을 받지만, 연구 교수는 정부로부터 월급과 연구비를 수령합니다. 대부분의 강의교수들은 똑똑하지만 이들 가운데에는 괴짜가 많습니다. (Callenbach 1986: 201).

 

모든 교수들은 1년씩 교대로 대학 내에서 거주하면서 학생들 가르치는 일에 전력을 다 합니다. 이 지역에서는 학위증만으로 직업과 관련되는 지위를 보장받지 못합니다. 모든 것은 간판이 아니라 업적에 따라 평가됩니다. 특히 놀라운 것은 에코토피아의 대학에서는 창의력과 독창성이 학점의 기준이 되며, 사회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에코토피아인들은 대학의 학생 수를 대폭 줄였습니다. 학생들은 TV를 통해서 수강하며, 자기 테이프로 집필된 인쇄용 원판을 사용합니다. (70년대에는 CD가 없었는데도 작가가 이를 창안해내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리하여 중앙 컴퓨터에 입력된 출력 단말기를 통해서 책의 내용을 얼마든지 꺼내볼 수 있습니다.

 

23. 에코토피아의 스포츠와 의료 체제: 에코토피아인들은 야구, 축구, 농구 그리고 아이스하키 등의 스포츠를 거의 행하지 않습니다. 권투 경기도 별로 없고, 롤러스케이트도 없습니다. 이러한 운동은 인간의 신체 건강에 도움을 준다기보다는 자본주의의 놀음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직업적 경기로서 승패를 따지고 투기를 조장하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에코토피아인들이 즐기는 운동은 크로스컨트리와 같은 스키, 하이킹, 야영, 낚시 사냥 등의 운동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육체적 활동으로 건강을 유지합니다. 에코토피아에서는 뚱보는 거의 없으며, 노인들도 원기왕성해 보입니다. 그들은 걷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배낭이나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가는 일에 익숙해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술 활동으로써 자신의 여가를 즐깁니다. 모든 사람들이 악기, 춤, 연극 그리고 노래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합니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글쓰기, 조각, 그림 그리고 비디오 등과 관련되는 취미 생활을 누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음악, 미술, 문학 가운데 가장 선호되는 장르는 음악입니다. 사람들은 악기 가운데 전자 악기를 가장 즐겨 연주합니다. 사람들은 다만 취미로 예술 활동을 즐길 뿐, 소수의 예술가들만이 국가의 보조금을 받고 자신의 예술에 전력투구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밖에 에코토피아의 병원의 의료 수준은 놀라울 정도로 탁월합니다. 그러나 병원의 분위기는 마치 시골의 병원을 방불케 합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전문의들이 부족하여, 정부는 의과대학생의 정원을 두 배로 늘였습니다. 그렇지만 인접 국가의 의료진을 유입하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의과대학생들은 정신 의학 훈련을 받으며, 특히 예방 의학을 중점적으로 공부합니다. 만 명 정도의 소도시에서 살아가는 생활공동체가 병원의 재정을 담당하고 병원을 운영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