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글은 필자의 저서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5. 보위에로부터 피어시까지 (20세기 중엽 - 현재)" (울력 2024)에 실려 있습니다. 많은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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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환경 운동과 여성 평화 운동의 전형: 미국 작가, 어니스트 칼렌바크 (E. Callenbach, 1929 - 2012)의 『에코토피아』는 생태 국가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에코토피아는 1980년대 말 경에 미국 서부의 광활한 땅에서 생겨났는데, 자연 생태의 보존을 최상으로 과업으로 내세우는 신생국가입니다. 놀라운 것은 20세기 대부분의 문학 작품이 디스토피아의 계열로 이해될 수 있다면, 칼렌바크의 작품은 헉슬리의 『섬』과 마찬가지로 보기 드문 긍정적 유토피아의 상을 보여준다는 사실입니다. 에코토피아 사람들은 작품 내에서 환경 생태의 문제 그리고 남녀평등과 평화의 문제를 점진적으로 해결해나간다는 점에서 20세기 후반의 유토피아가 지향하는 환경 운동과 여성 평화 운동의 전형적 특성을 드러냅니다.
『에코토피아』에서는 인간 외적인 자연이 삶의 본질적 토대로 간주된다는 점에서 작품은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에서 강조되는 인간학적 관점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그밖에 작품은 20세기에 출현한 디스토피아 소설과는 달리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사회적 모습을 충실하게 묘사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토머스 모어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에코토피아』에는 시민주의에 입각한 사회 유토피아가 설계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유재산제도가 용납되며, 모든 시스템은 미국 사회의 경제 구조로부터 약간 변형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칼렌바크는 무엇보다도 미국 사회에 만연한 “생태계의 파괴 현상, 온갖 화학제품의 남용으로 인한 암癌 증가 현상, 권력자와 재벌 사이의 암묵적인 부정부패 그리고 자동차 문화 등으로 인한 자원의 낭비” 등을 고발하기 위해서 이 작품을 집필하였습니다. (Callenbach 1983: 11).
2. 멋진 양식으로 가난하게 거주하기: 칼렌바크의 유토피아 소설, 『에코토피아. 1999년의 윌리엄 웨스턴의 노트와 기록Ecotopia: The Notebooks and Reports of William Weston』는 1975년에 간행되었습니다. 칼렌바크는 1958년 이후부터 버클리에서 간행되는 계간 잡지 『영화 계간Film Quaterly』의 편집자로 일해 왔는데, “멋진 양식으로 가난하게 거주하기Living Poor with Style”이라는 대안 잡지를 간행하였습니다. “가난하게 거주하기”란 말 그대로 가난을 자청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다시 말해 소비를 줄여서 주어진 자원을 아껴 쓰고, 낭비하지 않는 생활습관과 관련됩니다.
이로써 칼렌바크는 신대륙의 환경 및 야생 보호를 추구하는 미국 작가들에 편입될 수 있습니다. 칼렌바크의 선구자는 소로, 존슨R. U. Johnson, 레오폴드A. Leopold 등으로서 언제나 야생 보호에 앞장서는 작가들이었습니다. 미국에서의 야생 보호 운동은 60년대 이후로 퍼져나간 일련의 환경 재앙으로 인하여,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운동으로 확장되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생태학을 위한 하나의 핵심적 전언으로 활용되었습니다.
3. 칼렌바크의 삶: 칼렌바크는 1928년 4월 3일 미국의 윌리엄스포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의 마을에서 자랐는데, 조용한 농촌 분위기를 보여주는 지역이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농사를 짓거나, 주로 닭, 칠면조 그리고 돼지를 사육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시카고 대학에 다녔으며, 1953년에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1954년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뒤에 1955년부터 1959년까지 캘리포니아 대학 신문사에 근무하였습니다. 나중에 칼렌바크는 세계적으로 평판 높은 『영화 계간』을 창설하기도 하였으며, 여러 가지의 도서를 기획하고 간행하였습니다. 그는 소설 작품 외에도 환경 문제에 관한 칼럼을 써서 신문에 발표하곤 하였습니다. 1990년부터 칼렌바크는 작가로서 여러 곳에서 강연하였으며, 샌프란시스코 대학교 그리고 버클리 대학교에서 영화 이론에 관한 강의도 맡았습니다.
4. 인디언 문화의 영향: 칼렌바크는 인디언의 문화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았습니다. 생태학에 대한 관심사를 불러일으킨 것도 인디언 문화라고 합니다. “어서 가서 종족을 번식하고, 땅을 정복하라.”라는 기독교적 전언은 칼렌바크에 의하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합니다. (Fehlner 126).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연과 생태계를 중시하는 어떤 새로운 범신론을 부흥시키는 일이라고 합니다. (Callenbach 1988: 99).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은 태양을 숭배하는데, 태양은 모든 생명체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머니인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인에게 요청되는 것은 생태적 윤리이며, 나아가 에너지의 근원이 되는 태양, 바람 그리고 토양, 바로 그것이라고 합니다. 생태주의의 사고는 칼렌바크에 의하면 인디언 문화에 그대로 용해되어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에코토피아”에서는 인디언 문화는 에코토피아의 생활관습 그리고 교육 내용으로 정착되어 있습니다.
5. 작품의 배경: 1975년이라는 발표연도를 전제로 한다면 1999년은 미래의 시점입니다. 작품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1999년에 이르러 미국에서 출현한 여러 가지 산업으로 인한 재앙은 사라지고, 거주 환경은 완전히 복구되어 있습니다. 과거의 미국 땅은 1980년에 이르러 워싱턴, 오리곤, 북부 캘리포니아 등으로 분할된 채 서로 대치중입니다. 그 가운데에는 신흥 독립 국가들이 있는데, 에코토피아는 주로 미국의 북서부지역을 중심으로 건설된 새로운 국가입니다. 80년대 이래로 워싱턴은 에코토피아를 무력으로 침공하였으나, 그럼에도 이 국가는 점령당하지 않은 채 정치적인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인 “나”는 36세의 뉴욕 저널리스트인 윌리엄 웨스턴이며, 백악관의 요구에 따라 에코토피아로 향합니다. 그의 임무는 에코토피아의 실상을 당국에 정확히 보고하는 일입니다.
6. 등장인물, 윌리엄 웨스턴: 이야기는 주인공이 1999년에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윌리엄은 자신의 체험을 연대기 순서에 의해 50개의 단락에 차례로 서술합니다. 가령 윌리엄의 서술은 때로는 일기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때로는 미국 독자를 염두에 둔 신문 기사 내지 공개적 르포 형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코토피아에 관한 웨스턴의 우호적인 서술과 미국의 생활방식에 익숙해 있는 그의 태도는 상호 모순적입니다. 예컨대 윌리엄 웨스턴이라는 이름은 에드거 앨런 포E. A. Poe의 작품 『윌리엄 윌슨William Wilson』 (1839)을 연상시킵니다. 이 작품에서 포는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며, 자기 동일성을 상실한 인간의 유형을 아이러니하게 풍자한 바 있습니다.
윌리엄의 태도 역시 겉 다르고 속 다를 정도로 교활합니다. 윌리엄은 천박한 미국식 노동 및 경쟁 이데올로기에 익숙해 있으며, 백악관이 부여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특파원이지만, 새로운 나라에서 나타나는 어떤 새로운 삶의 가능성에 호기심을 드러내며, 긍정적 자세를 취합니다. 그는 한편으로는 미국 정부의 공공연한 견해를 고수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생국가 에코토피아에 서서히 열광합니다. 이러한 이중성은 한마디로 작가의 의도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어쩌면 작가는 미국식 생활 패턴으로부터 에코토피아식 생활 패턴으로 변화되는 주인공의 심리적 변모의 과정을 강조하려 했는지 모릅니다.
7. 생태계를 고려하는 가상적인 국가: 에코토피아는 생태계 보존을 국가의 최상의 과제로 간주하는 나라입니다. 에코토피아인들의 삶의 방식은 자연 순환 그리고 생태 시스템의 원칙적으로 가능한 안전성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작가는 자연 속에서 스스로 조절되는 폐쇄된 생태 시스템을 고찰합니다. 자동차는 에코토피아에서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4차선 도로는 좁아지고, 거리에는 수많은 가로수가 심어져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전기 택시, 미니버스 그리고 손수레밖에 없습니다.
미니버스는 고풍스러운 케이블카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기 배터리로 작동됩니다. 시속 16 킬로미터로 달리는 버스의 운전수는 없고, 원격 전자 장치로 달리거나 멈추어 서곤 합니다. (Callenbach 1986: 35). 거리에는 과거에 존재했던 광고용 간판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광고용 간판이 없다는 것은 구매를 위한 생산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시장 기능이 약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광고용 간판이 없으므로, 밤이 되면 샌프란시스코의 번화가는 칠흑처럼 어둡습니다. 대도시의 고층 건물은 과거에는 재벌 회사의 일터였지만, 이제는 사람들의 거주공간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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