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소설 『얽힘 Plexus』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모나와 함께 하는 삶, 생활비 걱정, 몇몇 문학 작품의 발표 시도 등이 그것들입니다. 직장을 그만두었으니, 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됩니다. 모나는 돈을 벌기 위하여 살롱의 밤무대에 등장합니다. 주인공은 옛 친구, 오하라의 조언을 받아들여, 한 페이지 분량의 산문시, “메초틴토스 Mezzotintos”를 집필합니다. 모나는 무대에서 주인공의 산문시를 낭독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살롱에 부자들은 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살롱을 찾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모나의 육감적인 팔등신 몸매 그리고 그미의 황홀한 연기 때문입니다. 주인공과 모나는 즉시 술집을 개업합니다. 처음에는 사업이 잘되는 것 같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대한 것만큼 매상이 오르지 않습니다. 왜냐면 손님들은 대부분 두 사람의 친구들로서, 술을 마신 다음에 돈 내지 않고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친구, 오하라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플로리다로 향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거의 방랑자처럼 힘들게 살아갑니다. 주인공은 아버지에게서 돈을 빌려, 그 돈으로 다시 뉴욕으로 되돌아옵니다. 뒤이어 1927년의 마지막 몇 개월을 습작으로 보냅니다. 그렇지만 완성된 작품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곰곰이 숙고합니다. “내가 과연 진정한 예술가일까? 물론 왕년에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직 멀었다. 반드시 나의 재능을 증명해내야 한다.” 헨리는 다시 연극 작품 쓰기를 시도하지만, 중도에 포기합니다. 이번에는 수채화 그리기에 몰두하다가, 다시 장편 소설을 쓰기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점점 비참한 수렁에 빠져들게 됩니다. 결국 헨리는 부모님의 집에 거처를 마련해야 하고, 모나 역시 그미의 부모님 집으로 되돌아갑니다. “편안하게 예술 작품을 창조할 수 있는 경제적 방안은 무엇인가?”, 하고 도스토옙스키의 형제는 중얼거립니다. 그는 자신을 도스토예프스키의 형제라고 칭하곤 합니다. 결국 헨리는 미국 예술가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지 않은 채 마치 한 마리 고독한 늑대처럼 살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렇다면 나 자신이 비명을 지르는 한 마리의 개란 말인가? 환각 속에서 개의 모습은 쉬르리얼리즘에 입각한 자화상으로 떠오릅니다. 세 번째 소설, 『연결 Nexus』은 그런 식으로 시작됩니다. 주인공은 애인 모나, 그리고 그미의 레즈비언 애인인 스타시아와 함께 브루클린의 지하 거주지에서 함께 생활합니다. 모나는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이따금 몸을 팔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새로이 습작을 시도하다가, 모나와 심한 언쟁을 벌입니다. 모나는 주인공에게 지속적인 습작을 요구합니다. 다른 일상적 문제는 자신이 혼자 처리하겠다고 일갈합니다. 모나는 어느 날 돈을 잘 쓰는 유럽인 고객을 사귀게 됩니다. 그미는 고객과 함께 며칠간 유럽 여행을 떠납니다. 모나는 귀국한 뒤 자신의 여행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주인공은 질투 반 지루함 반으로 그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불현듯 여행하고 싶다는 유혹이 불쑥 솟아오릅니다. 뉴욕은 “아무런 위안을 가져다주지 않는, 따분한 죽음의 도시”라는 생각이 스칩니다. 유럽은 마치 “거칠고 황량한 미끼”를 던지는 고혹적인 여성처럼 주인공을 유혹하는 것 같습니다. 마침내 그는 어렵사리 여비를 마련하여 유럽행 선박의 티켓을 구매합니다. “안녕, 사코씨, 안녕, 반제티씨, 우리의 죄를 용서하세요.”
헨리 밀러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자서전을 방불케 합니다. 그러나 친구, 여자 그리고 책들은 오로지 “브루클린의 라블레”와 관련될 때 비로소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닐 뿐입니다. 그것은 소설가의 집필 행위라는 “고통스러운 기쁨”을 지칭합니다. 이는 소설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합니다. 밀러는 친구와 애인의 이름만을 바꾸어놓았을 뿐, 실제로 겪었던 사실을 소설화하고 있습니다. 가령 첫 번째 부인 베아트리스 위킨스는 “모드”로, 준 스미스는 “모나”로, 옛 친구, 오레건은 “오하라”로 명명되고 있습니다. 1930년 주인공은 유럽에서 일 년간 살면서 일시적으로 창작 행위를 중단하며 지냅니다. 밀러의 소설 삼부작은 한 인간의 체험이 어떻게 장편 소설로서 객관적 서술로 형상화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작품입니다.
밀러의 『결실 맺는 고행』 삼부작은 세 가지 측면에서 가치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첫째로 뉴욕의 염세주의적인 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몰락으로 치닫는 미국 문명의 허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닙니다. 뉴욕은 작가에게 서서히 썩어가는 문명의 몰락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를 위해서 헨리 밀러는 슈펭글러, 도스토옙스키 그리고 니체의 글을 간간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작품은 인습으로부터의 해방, 부르주아의 저열한 편견 등을 은밀히 풍자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결실 맺는 고행』 삼부작은 소설가 개인의 삶에 대한 자기 반성을 담고 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작품은 성 아우구스티누스, 루소 그리고 프랭크 해리스Frank Harris의 고백록의 계열에 편입죌 수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작가, 프랭크 해리스 (1856 – 1931)는 회고록 『나의 삶과 사랑 My Life and Loves』(1922 - 1926)에서 카우보이로서의 모험담을 세밀히 서술한 바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밀러가 처음부터 이러한 주제에 관해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윈래 소설이란 소설가의 의도한 바와는 전혀 다르게 해석되는지 모릅니다. 왜냐면 소설 속에는 여러 다양한 이야기가 중첩적으로 엉켜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별개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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