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20후독문헌

서로박: 아놀드 하우저의 "이방인에 관한 의심스러운 보고"

필자 (匹子) 2025. 10. 4. 11:46

어째서 우리는 잘 알려진 작가 그리고 익숙한 작품만을 논해야 하는가? (B. 트라벤)

................... 

 

루마니아의 독일 작가, 아놀드 하우저 (Arnold Hauser, 1929 – 1988)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로 널리 알려진 헝가리 출신의 예술사가, 아놀드 하우저 (1892 – 1978)와는 동명이인입니다. 그는 루마니아에서 문학 작품을 독일어로 발표했습니다. 오늘은 그의 장편소설, 『이방인에 관한 의심스러운 보고』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원제목은 『야콥 뷜만의 기이한 보고 Der fragwürdige Bericht Jakob Bühlmanns』입니다. 이 작품은 1968년에 루마니아에서 발표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작가는 주로 단편 소설을 발표해 왔는데, 놀라운 장편소설을 필두로 전후 루마니아 독문학의 획을 긋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1960년대 말에 루마니아의 일시적인 민주화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어렵사리 출간될 수 있었습니다. 왜냐면 지금까지 루마니아 당국은 작가들에게 이른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규칙을 강요해 왔기 때문입니다. 하우저의 글쓰기는 서술 방법에 있어서 사회의 보편적인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중립적으로 서술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하우저의 장편소설은 당국의 금기 사항을 넘어서는 체제 파괴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루마니아에 거주하는 소수 독일인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사실인즉 이 지역 사람들은 과거 청산이라는 미명으로 소수 민족으로 남아 있는 독일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강체로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조처했으며, 경멸하고 배척하였습니다.

 

작가, 하우저는 에피소드의 방식으로 자신이 겪은 사실들을 단편적으로 서술하였습니다. 에피소드 방식의 서술은 하나의 문제를 폐쇄적 관점에서 고찰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폭넓고 핍진한 소재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다는 점에서 리얼리즘의 서술 방식과는 현격한 차이를 드러냅니다. 이러한 주제는 수용자의 측면에서 놀라울 정도의 긴장감과 토론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작가는 간결하고 사실적인 문체를 동원하여 인간의 미덕이 과연 무엇인지를 진단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주인공은 전후의 혼란스러운 루마니아에서 자신의 고향을 찾으려고 하는 젊은 사내, 아돌프 좀머입니다. 그의 부모님은 루마니아의 지벤브뤼겐이라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독일 출신의 소시민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지벤브뤼겐에서 오랫동안 정주하면 살아가던 작센인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독일 남서부 바덴 지역에서 징집을 피하기 위해서 뒤늦게 몰래 루마니아로 이주한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이곳저곳으로 떠돌며 살던 집시 출신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돌프는 그들이 친부모가 아니며, 자신이 업둥이라고 확신합니다. 부모님은 강보에 싸인 아이를 어디선가 발견하고, 그를 키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하나의 사실로 밝혀지지 않습니다. 업둥이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아돌프는 자신의 국적이 어느 나라인지, 자신이 어떠한 지역에, 어떠한 사람들 사이에 편입되어야 하는지 도저히 감을 잡지 못합니다.

 

처음부터 그는 다음과 같이 푸념을 터뜨립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지역은 없어 어디서든 낯선 인간으로 취급당할 뿐이다.” 게다가 지벤브뤼겐에 거주하는 부모님에게는 생활비가 한 푼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어린 시절부터 루마니아의 석유 탄광의 도시인 플로이스티에서 구걸하면서 방황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루마니아를 떠나 오랫동안 여러 나라를 방랑합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핀란드에 인접해 있는 항구 도시, 크론스타트였습니다. 그곳에서 아돌프는 기숙사에 머물면서 잠시 학교에 다녔는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됩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그는 다시 루마니아의 지벤브뤼겐으로 걸어서 터벅터벅 되돌아옵니다. 그곳에 거주하며 살던 독일인들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당합니다. 독일의 히틀러는 수많은 무고한 루마니아 사람들에게 고초를 가하고,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갔으니, 독일 민족 역시 응당 죗값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아돌프에게 어떤 기회가 찾아옵니다. 나사를 제조하는 공장의 교육생이 되었습니다. 공장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 아돌프는 군에 입대하라는 통보를 받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제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로 탄생한 루마니아에 충직하게 봉사할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아돌프 좀머는 몇 달 후에 고통스러운 사건과 마주하게 됩니다. 군대에서 무정부주의와 관련되는 쓸데없는 정치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결국 군인으로서 근무할 수 없다는, 이른바 부적합 판정을 받게 됩니다. 다시 아돌프는 자신이 살던 지벤브뤼겐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러나 그것에서 자신을 반갑게 맞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소도시에는 가난한 사람들과 실업자들이 세월을 허송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소시민들의 근시안적 사고 그리고 반동주의는 극에 달해 있어서 숨이 막힐 것같았습니다.

 

아돌프 좀머는 어느 야위고 아름다운 여성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사랑을 고백했는데, 이마저 단칼에 거절당하고 맙니다. 아돌프 좀머는 자신의 처지를 고통스러워하다가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듭니다. 이 와중에서 야콥 뷜만의 소개로 부카레스트에 있는 신문사에서 직장을 구하려고 합니다. 야콥 뷜만은 지벤 브뤼겐의 신문, “새 신문”에서 일하는 기자였습니다. 신문사는 그의 구두 면접을 보기 전에 일차적으로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앙케트를 실시했습니다. 말하자면 신문사는 앙케트를 통해서 기자로서의 태도와 책임감 그리고 정치적 견해 등을 문의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루돌프 좀머는 이에 정체성 혼란을 느끼면서, 다시금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자신의 자유로운 사고가 마치 거대한 통속에 갇혀 순식간에 질식할 것 같이 느껴졌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어디론가 자취를 감춥니다. 대신에 그는 공책 한 권을 남깁니다. 거기에는 몇몇 원고 그리고 자신의 진정성에 관한 소설 원고가 실려 있었습니다.

 

아놀드 하우저는 서술의 객관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소설 관점에 있어서 줄거리를 세분화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화자는 안톤 미쿠라는 이름을 지닌 루마니아 사람입니다. 그는 주인공의 기이한 특징을 추적하면서 어째서 주인공 아돌프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지를 조심스럽게 서술합니다. 그런데 아돌프 좀머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하는 사람은 야콥 뷜만이라는 기자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주인공 루돌프 좀머를 가벼운 친구로 생각합니다. 나중에 주인공의 심성 그리고 삶의 과정을 접하게 된 뷜만은 주인공에 관한 사항을 화자인 안톤 미쿠에게 모조리 전합니다. 그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혹여 안톤 좀머의 참으로 기이한 이야기가 세인의 관심사를 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습니다. 그런데 뷜만의 보고는 안톤의 눈에는 아무래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피상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안톤 미쿠는 보고서에 주인공의 부카레스트의 생활을 첨가합니다. 어쩌면 정체성 혼란을 겪는 한 인간 그리고 그가 남긴 글들은 개인에 대한 국가 기구의 횡포 그리고 강박적인 인습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우저는 한 나라에서 가장 체제파괴적인 인간형을 설정함으로써, 전체주의 국가의 횡포를 지적하려고 했습니다. 사실 집시 그리고 국가는 서로 상극의 존재입니다. 왜냐면 집시들은 개인의 사적 행복만을 추구하고 국가가 요구하는 제반 의무 사항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틀러는 유대인 외에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서 집시 그리고 예술가를 꼽았습니다. 무한한 자유를 추구하고 국가로부터의 구속을 가장 저주하는 자들이 바로 집시 그리고 예술가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무정부주의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과도기로서의 국가를 용인하고, 종국에 이르러 국가의 소멸을 주장했다면, 아나키스트들은 처음부터 국가에게 테러를 벌이는 그들의 목표이자 방법론이었습니다. 요약하건대 하우저의 소설은 개인의 자율성 그리고 국가의 강령 사이에서 한 개인이 얼마나 죄충우돌하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작가 하우저는 자신이 선택한 주인공의 인성 그리고 심리 묘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이야기는 분석적 차원에서 논리 정연하게 이어지는 게 아니라, 에피소드의 방식으로 간결하게 처리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작가는 루마니아에 살고 있는 독일인 독자층을 일차적으로 염두에 둔 것 같아 보입니다. 이는 어쩌면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작 방법론과는 거리감을 지니고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소설의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작가는 정체성을 상실한 소외된 개인의 삶의 이야기를 직접 세밀하게 객관적으로 서술한 게 아니라, 한 사람의 냉정한 기자의 입을 빌려서 국가 기관에 어떤 관용과 이해를 촉구하는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기이한 이방인을 배척하는 대신, 그의 상식을 초월하는 행동 양상이 어디서 기인했는지를 참을성 넘치게 고찰하는 것 – 이것만이 소외된 인간을 특정 사회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작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