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문학 이론

박설호: (2) 동독의 클라이스트 수용

필자 (匹子) 2025. 9. 29. 09:08

(앞에서 계속됩니다.)

11강

 

 

제삼자의 사랑의 삶에 관해서 왈가왈부하지 말자. 그것은 프라이버시에 해당하는 사항이다. 혹자는 에른스트 피셔가 친구의 아내를 가로챘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애정 문제에 있어서 제삼자가 왈가왈부하며, 평가를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여성은 소유물이 아니라, 남성과 동등한 자유인이다. 오히려 아이슬러의 아내, 루가 자의에 의해서 새로운 남편으로 피셔를 선택했다고 이해하는 게 타당하다.

 

12강

 

오스트리아는 1945년에 하나의 국가로 건립되었다. 중립을 선택함으로써, 오스트리아는 분단을 면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1950년대 오스트리아 역사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에른스트 피셔 (1899 - 1972)는 오랫동안 정치가로 활동하다가, 소련에 망명하였다. 전쟁이 끝난 다음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1963년까지 오스트리아 공산당에서 활동했다. 그가 학문 연구에 바친 시간은 1963년부터 1972년까지이다. 불과 10년의 집필 기간이었지만, 피셔는 평생의 책읽기를 통해서 문학적 철학적 사유를 개진할 수 있었다.

13강

오스트리아는 20세기에 민주주의 국가로 명성을 떨쳤다. 모든 정치 활동은 지방자치 중심으로 이어졌다. 현대 인구는 900만명 정도이며, 평균 수명은 81세이다. 안타까운 것은 21세기에 이르러 나치 정신을 계승한 정당인 오스트리아 인민당 ÖVP 이 수권 정당으로 부각했다는 사실이다. 중동의 전쟁 그리고 난민 유입이 유럽 전역을 우편향주의로 만들었다. 오래된 좋은 것을 고수하려는 자세는 옳다. 그러나 새로운 나쁜 것을 통째로 매도하는 것은 올바른 처사가 아니다.

14강

한스 마이어 (1907 - 2001)는 발터 벤야민과 함께 20세기 독일의 가장 위대한 평론가로 손꼽힌다. 그는 역사성과 현대성의 변증법 속에서 가장 절실한 해답을 찾아서 작가와 작품들을 구명한 바 있다. 역사의 중요성은 주관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절실하게 와닿는 무엇에 관심을 기울이는 데 있다. 문학 작품은 마이어에 의하면 자신 자신과의 만남 내지는 새로운 깨달음을 안겨주는 매체라고 한다, 대표작으로서 "불행한 의식. 레싱에서 하이네까지 Das unglückliche Bewußtsein. Von Lessing bis Heine"가 있다.

15강

한스 마이어는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독문학을 가르쳤다. 에른스트 블로흐는 그의 대학 동료였다. 마이어는 동독 문화 관료들과 마찰을 빚고, 1960년에 서독으로 망명 하닌 망명을 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애인은 따로 있었다.^^), 평생 60권 이상의 문헌을 남겼다. 한스 마이어는 크리스타 볼프의 은사로서 석사학위를 지도한 바 있다. 그는 구동독의 선동선전 문학의 경박함을 답습하지 말라고 크리스타 볼프에게 조언했다.

16강

"작가는 지진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지진계이다. Dichter sind Seismographen, die nicht für das Erdbeben verantwortlich zu machen sind."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 자고로 작가는 주어진 현실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존재다. 그래서 우리는 작가를 "시대의 지침계"라고 평가하곤 한다. 동독 출신의 작가, 귄터 쿠네르트는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를 "자유를 구가하고 싶은 불행한 작가의 전형"으로 이해했다. 크리스타 볼프는 1970년대에 비어만 추방령을 계기로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는 곳"에서 클라이스트와 귄더로데라는 고전 작가를 등장시켰다. 이는 오늘날 현대 작가의 영향력과 그 한계를 구명하기 위함이었다.

17강

 

동독 관료들은 루카치의 영향으로 무엇보다도 독일 고전주의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낭만주의를 반동적이고 병적인 예술사조로 폄훼하였다. 이에 대해 쿠네르트는 문학작품을 통해서 이의를 제기하려고 했다. K, 즉 클라이스트는 미친 낭만주의 작가가 아니라, 그야말로 미쳐버린 사회를 인지하고,  시대의 광적인 분위기를 자신의 삶과 일치시키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문제는 작가 한사람의 내면에 있는 게 아니라, 주어진 시대 정신이 병들어 있다는 것이다. K는 오늘날 거대한 전체주의의 폭력에 희생당하는 클라이스트, 쿠네르트, 카프카, 아니면 익명의 김씨일 수도 있다. 

18강

귄터 쿠네르트는 더 나은 삶에 대해 어떠한 희망을 견지하지 않는 작가다. 그 점에 있어서 그는 프란츠 카프카와 많이 닮았다. (쿠네르트는 아버지가 독일인이었으며, 어머니가 유대인 출신이었다.) 그는 과학 기술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낸다. 이는 일견 반동적 회의주의로 비난당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주어진 서구 문명 그리고 구동독 사회가 전체주의의 경향 그리고 물화 Verdinglichung, 다시 말해서 물신 숭배 Fetischism라는 문화적 분위기에 휩쓸려 있다고 일차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19강

 클라이스트와 귄더로데는자살로 한많은 삶을 끝낸 작가들이다. 클라이스트는 작가로서의 사회적 삶 그리고 개인적인 사랑의 삶에 있어서 주위로부터 어떠한 인정도 받지 못했다. 세상은 그에게 계속 생존할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하지 못했다. 이는 귄더로데에게도 해당된다. 그미는 여성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 "티안"이라는 남자 이름으로 시를 발표해야 했다. 그미에데 돌아온 것은 무관심 그리고 외면밖에 없었다. 세 명의 사내로부터 이용당한 그미는 결국 단도로 가슴을 찌른 뒤 라인강 아래로 떨어져 죽는다. 마지막으로 휘페리온에 기술된 문장을 소개할까 한다. "사랑 때문에 방랑하는 자들이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한다. Weh dem Fremdling, der aus Liebe wandert."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