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모든 예술작품은 그것이 태동한 시대의 역사성을 반영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독자의 관점에서 현재성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아무리 예술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으로 훌륭한 의미를 담고 있더라도 지금 그리고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아무런 자극을 가하지 않는다면, 그 예술은 역사 속에서 사장(死藏)될 수밖에 없다.해석학은 원전의 역사성과 독자의 현재성 사이에서 전개되는 수용의 문제점을 추적한다.
2강

클라이스트의 문학은 극단적으로 다른 관점에서 수용되어 왔다. 클라이스트의 사회 개혁을 위한 노력은 일시적으로 지스카르 위기를 불러왔다. 극작가는 북구 출신의 귀족 로베르 지스카르 (Robert Guiskard, 1015 - 1085)에 관한 극작품을 집필하였다. 지스카르는 폭정에 저항하면서 나라를 바로 세우려던 인물이었다. 극작품의 주제가 너무나 심대하여 작품 완성에 어려움을 겪던 클라이스트는 원고를 불에 태워버렸다. 미완의 원고는 그 자체 혁명과 개혁의 의지가 좌절되는 것을 상징한다. 다른 한 편 클라이스트는 진리를 밝히려는 모든 노력이 왜곡될 수 있음을 인지하였다. 이러한 반계몽주의의 회의주의는 급기야는 칸트 위기로 비화되었다. 클라이스트는 칸트의 강의를 직접 들었는데, 그의 영향으로 진리를 발견하려는 노력 내지는 완전성 자체에 의구심을 느낀다. 요약하건대 지스카르 위기가 실패한 개혁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여운으로 남긴다면, 칸트 위기는 반계몽적 회의주의의 특징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보다 자세한 사항에 관해서는 다음의 문헌을 참고하라: 진일상, 클라이스트의 계몽주의, 슈필딩의 인간의 소명과 연관하여, in: 독어독문학, 173집, 2025, 5 - 25.
3강

예술의 기능은 무엇인가? 향유인가 아니면 교훈인가? 향유는 칸트에 의하면 "목적없는 합목적성 eine zweckmäßige Zwecklosigkeit" 으로서 그 자체 즐김을 지칭한다. 다른 한편 예술은 부분적으로 어떤 교훈을 안겨준다. 프란츠 메링은 예술의 이러한 두가지 기능 가운데 특히 교훈을 중시하였다. 그는 예술이 전체적으로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어야 하고, 많은 사상적 예술적 함의를 전달해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즉 예술의 목적은 향유이며, 교훈은 이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예술 작품이 우리를 감동과 충격이라는 격랑 속으로 빠지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거나, 형편없는 지루한 예술이다.
4강

프란츠 메링은 마르크스 전기를 집필한 작가이자 정치가이다. 또한 그의 문헌 레싱 전설 Lessing Legende는 오늘날까지도 즐겨 읽히는 놀라운 문헌이다. 그런데 문제는 메링이 반유대주의의 입장을 견지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독일의 극우 사학자, 하인리히 트라이츠케 Heinrich Treitschke를 노골적으로 비판했지만, 사실은 "유대인은 우리의 불행이다."라는 그의 발언에 동의했다. 겉으로는 친유대주의 그리고 반유대주의를 공히 비판하는 척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유대인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5강

시대 정신은 마치 하나의 시계 추처럼 좌우를 오간다. (질문: 한국의 지금 여기의 시대정신, 정치적 지형도는 어떠한가?) 19세기 말 프로이센에서는 극우파들이 득세하고 있었다. 메링은 이들의 자기 중심적 국수주의 내지는 맹목적 애국주의를 비판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클라이스트를 "애국적 지조를 지닌 프로이센 작가"라고 칭송했을 때, 메링은 이를 비판하면서, 클라이스트를 "미쳐버린 낭만주의자"라고 못을 박았다. 이로 인하여 독일 전역에서는 클라이스트가 과거지향적 반동 작가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
6강

루카치는 20세기 초에 나타난 모더니즘 내지는 아방가르드 운동을 폄훼하였다. 그렇다고 그가 단순히 일도양단적으로 1848년 이전의 예술을 "병든 시민 사회의 병든 퇴폐주의"로 매도한 것은 아니었다. 시민 사회의 유산은 루카치에 의하면 "독일 고전주의"에서 새롭게 발견된다고 했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 에른스트 블로흐는 이의를 제기했다. 즉 루카치가 표현주의 그리고 새로운 실험 정신을 담은 예술을 거부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한다. 질풍과 노도, 낭만주의 등과 같은 예술 사조 속에도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문화적 유산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7강

루카치는 1914년 막스 베버 서클에서 대대적으로 환영받았다. 헝가리 출신으로서 서구 문학에 관한 놀라운 문학 비평의 문헌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그의 저서 "영혼과 형식" 그리고 "소설의 이론"은 찬사의 대상이었다. 그에 비해 블로흐는 서클 내에서 꿔다놓은 보릿자루로 취급당했다.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바 그리고 객관적으로 타당한 사항이 공공연하게 세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할 때, 당사자가 느끼는 쓰라림은 얼마나 크낙한 것일까? 이때 블로흐는 자학하면서, 바이에른의 가르미쉬에 칩거하면서, 명저, "유토피아의 정신"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8강

이미 언급했듯이 루카치는 유산의 문제에서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였다. 그는 무엇보다도 "독일 고전주의"에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다. 구동독은 그의 견해를 당의 강령으로 채택하였다. 그가 예의 주시한 것은 시나 극작품이 아니라, 오로지 장편 소설이었고, 불협화음이라든가 어둡게 일그러진 부조화가 아니라, 온화하고 조화로운 예술적 분위기였다. 말하자면 독일 고전주의에서 나타나는 조화로움 Harmonie, 온화함 Milde 그리고 유유자적함 Muße을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체계, 형식성, 연속성 등을 선호함으로써 그가 놓친 것은 부조화, 왜곡된 현실상, 추상적 은폐 속에 도사리고 있는 어떤 갈망이었다.
9강

클라이스트 문학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하게 나누어진다. 혹자는 클라이스트에게서 실패한 계몽주의 내지는 퇴폐적 반동적 낭만주의의 잔재를 발견하고 있으며, 혹자는 클라이스트가 마치 지진 내지는 파국과 같은 주어진 현실을 그대로 인지하는 지진계처럼 반응하였다고 한다. 누구의 말이 옳은가? 약간의 의견대립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한 사람은 한 가지 사항을 주장하고, 다른 한 사람은 이와 정반대되는 사항을 주장한다. 한 작가의 작품을 이런 식의 극단적으로 다르게 평가해도 우리는 그것을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약간의 편차는 용인할 수 있을지언정, 극과극의 반대 현상을 모조리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10강

에른스트 피셔는 "독일 낭만주의의 근원과 본질 Ursprung und Wesen der deutschen Romantik"에서 놀라운 주장을 개진하였다. 독일 낭만주의는 초기 자본주의의 소외 현상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이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였다고 한다. 지금까지 동구의 대부분 학자들은 독일 낭만주의를 부정적으로 고찰하면서, 퇴폐적 반동주의의 요소로 간주해 왔다. 피셔의 이러한 주장은 당 문화 정책과 위배되는 것이었고, 즉각적으로 반론에 흽싸이게 된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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