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거역하고 저항하는 프로메테우스, 혁명의 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의 뮌처 전기 작품 『혁명의 신학자로서의 토마스 뮌처Thomas Münzer als Theologe der Revolution』는 1921년에 간행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작품을 블로흐의 초기 작품 유토피아의 정신에 실린 역사 철학에 대한 역사적 증거 목록이라고 명명할 수 있습니다. 토마스 뮌처 (1489 – 1525)는 블로흐에 의하면 천년 왕국을 실현하려는 개혁적 신학자이자 1525년 독일 농민 혁명의 주동자입니다. 그렇기에 그의 이상은 신비적 유토피아 사회주의에 대한 블로흐의 세계관과 밀접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2. 전기를 넘어서는 전기: 토마스 뮌처가 견지하는 사회 혁명적 신학적 사고는 종교적 천년 왕국설 그리고 사회주의를 서로 결합하려는 블로흐의 고유한 의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블로흐의 뮌처 연구는 하나의 역사적 작품일 뿐 아니라, 역사철학적 종교 철학적 작업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블로흐의 책은 한 인간의 생애를 다룬 전기의 차원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맨 처음 블로흐는 1490년에서 1525년까지의 토마스 뮌처의 변모 과정, 그의 출신, 학창 시절 그리고 브라운슈바이크, 츠비카우 그리고 알트슈테트 등지에서의 목회자로서의 활동 등을 추적합니다. 1523년경에는 뮌처의 사상적 실천이 이루어집니다. “뮌처는 바로 이 시기부터 근본적으로 계급을 의식하는, 혁명적 천년왕국의 이론을 굳게 신봉하는 공산주의자가 된다.”
3. 루터는 먹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블로흐는 토마스 뮌처가 어떻게 루터를 비판했는가를 서술합니다. 마르틴 루터는 뮌처에 의하면 오로지 성서에만 의존해 있고, 오로지 성서 해석에만 골몰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루터는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자들에게 연속적으로 광명을 던지려고 애썼을 뿐”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변절한 다음 지배 계급을 옹호하였고, 급기야는 무장봉기를 일으키는 농민들을 강도 내지는 역적의 무리라고 단죄하였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결국 농민을 배반했으며, 스스로 “제후 계급을 돕는 하수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마르틴 루터는 제후들이 바라는 바대로 변절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면죄부 발급이라는 불법을 95개 조항의 반박문으로 고발한 정의의 사도인 마르틴 루터가 불과 몇 년 사이에 수구적 체제 옹호적인 지식인으로 급선회하였을까요? 블로흐는 이에 관해서 한 가지 사항만을 암시합니다. 즉 루터는 보름스 성당에서 죽음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는데, 이것이 그를 안락한 삶의 길로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블로흐는 루터 대신에 뮌처를 옹호합니다. 뮌처는 지식인의 길을 마다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성서가 아니라, 기도를 통한 영성의 가르침이었습니다.
“모두가 신의 의지를 경청하고 실천할 수단 그리고 가능성을 지녀야 한다. 우리는 심장의 황폐함을 떨치고, 부활의 의미를 기대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외적이고 형이상학적 의미에서 뜻하는 자유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실제로 그의 행적은 가난한 사람들을 교화하고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이를 실천하는 설교자의 길과 다를 바 없습니다. 말하자면 뮌처가 견지하는 신비주의적 천년 왕국설이라는 혁명의 신학 그리고 타협을 원치 않는 뮌처의 정치적 자세 등은 사회주의의 유산과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4. 정의를 실천하는 자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세상이 죄악으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2부는 독일 농민 전쟁 당시 토마스 뮌처의 역할, 농민 혁명의 실패 그리고 추종자들과 함께 생을 마감해야 했던 뮌처의 비극적 최후 등을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뮌처의 아내, 오틸리에 폰 게르젠은 만삭의 몸으로 농민전쟁 당시에 정규군에 의해서 겁탈당하고 맙니다. 이후에 그미는 정신 착란증을 일으킨 뒤에, 수녀원으로 들어가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였습니다. 몇 달 후에 오틸리에 폰 게르젠은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토마스 뮌처를 처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농민들이 원천적으로 반란을 일으키도록 하지 않으려면, 뮌처의 모든 가족, 즉 삼족을 멸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뮌처의 자손들은 끝내 살아남게 됩니다. 그들은 당국의 이어지는 탄압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이름을 “뮌첼 Münzel”로 개명하였다고 합니다.
5. 카를 카우츠키에 대한 비판: 블로흐는 토마스 뮌처의 사상을 사회주의적 시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예컨대 카를 카우츠키를 비판하며, 다음과 같은 견해를 제기합니다. 첫째로 누군가 제반 역사적 현상을 분석할 때, 경제학적인 관심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카우츠키는 경제적 생산양식과 계급 문제를 부각하여서, 독일 농민 혁명을 계급의 혁명이 아니라, 종교 개혁의 차원에서 서술했다고 합니다.
둘째로 종교는 블로흐에 의하면 하나의 순수한 상부 구조의 현상으로 확정되어, 이를 정치경제학으로부터 일탈시킬 수는 없다고 합니다. 왜냐면 종교적 열정 속에도 어떤 유토피아의 잠재성, 다시 말해서 사회적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동력이 자리하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 역시 이를 예리하게 간파하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마르크스는 종교가 지닌 체제 옹호적 권위를 무너뜨리는 일을 우선적으로 생각한 나머지, 믿음이 가져다주는 신앙인의 엄청난 에너지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블로흐는 이어서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합니다. 즉 로마 가톨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세계의 권력자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타협하였다는 것입니다. 천민과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복음은 권력자에게는 항상 적대적으로 비치기 때문에, 교회의 존립을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체제 옹호적으로 수정해야 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블로흐는 루터, 뮌처, 칼뱅 그리고 갈등에 대한 가톨릭주의의 해결책 등을 비판적으로 구명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독교 그리고 세속적 권력 사이의 편안한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 신비적 민주주의적 천년 왕국설 등은 무엇보다도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사상적 조류라고 합니다.
6. 천민에게 다가가는 종교, 기독교: 블로흐는 토마스 뮌처의 설교 그리고 그의 실천 행위 등을 매우 중시합니다. 왜냐면 그 속에는 가난과 억압에 처절하게 대항하는 농부 그리고 광부들의 저항과 반역의 정신 그리고 더욱 심원한 원시 기독교적인 희망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고로 기독교는 누구보다도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종교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뮌처는 만인이 하나님의 의지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실천하는 수단 및 가능성을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부활 (...) 마음의 황폐함으로부터 신의 말씀을 열심히 기대하려는 태도를 견지하는 일, 이러한 부활이야말로 외부적이자 형이상학적 형체 속에 담긴 의미일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뮌처와 그의 추종자들은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직접적인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종말의 시간에 상승하는 묵시록의 기대감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감은 모든 혁명의 메타-정치적이고 메타-종교적인 원칙에 의해서 자양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블로흐의 책은 어떤 사회 혁명적 종교적 낭만주의의 열정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이렇듯 국가는 우리에게 악마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신의 아들이 누리게 될 자유는 하나의 실체 내지는 본질일 것이다. 기독교인 토마스 뮌처의 내면에 도사린 반역은 우리 주위를 환하게 빛나게 하고, 우리의 의지를 더욱 결속하게 할 것이다.”
7. 블로흐의 유연하고 독자적인 역사철학적 관점: 블로흐는 먼 훗날 “뮌처의 서적”이 지닌 의미를 약간 낮추어서, 어쩌면 비판적인 어조로 미미한 것으로 지적하였습니다. 『토마스 뮌처』는 방법론적으로 성숙성을 보여주는 대작 『희망의 원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하나의 척도 내지는 미리 내세운 입장표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뮌처의 서적은 놀랍고도 독자적인 역사 철학의 견해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블로흐는 역사주의의 결함을 극복하고, 현재의 시각에서 과거의 사실을 비판적으로 규명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설정합니다.
역사주의는 과거의 사실을 밝히는 것을 역사학의 목표라고 규정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마이네케 방식의 역사주의는 주어진 현실과 단절되고, 미래에 대한 아무런 관련성을 찾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블로흐는 현재의 문제점을 분명하게 구명하기 위해서 역사를 추적하는 작업을 선호합니다. 과거의 사실에 대해 무작정 현재의 판단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게 아니라, 비판적 관점에서 역사를 찾아서 해석하려는 게 블로흐의 태도입니다. 가령 블로흐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무작정 시민주의의 유산을 모조리 거부할 게 아니라, 그 가운데 좋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부분적으로 구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서구 내지는 동구의 좌파 지식인들에게 전하는 바가 큽니다. 어쩌면 『유토피아의 정신』보다 오히려 『혁명의 신학자로서의 토마스 뮌처』가 블로흐 자신의 마르크스주의 인식에 더 커다란 자극제로 작용한 게 분명합니다.
8. 천년 왕국과 유토피아의 관련성에 관한 논의: 블로흐의 『토마스 뮌처』는 1920년대에는 “묵시록의 방식으로 구명한 공산당 선언”이라는 혹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카를 만하임Karl Mannheim, 알프레트 도렌Alfred Doren 등의 블로흐 연구서는 다음의 내용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비록 블로흐가 당파적이기는 하지만, 토마스 뮌처의 천년 왕국설의 현상에 나타난 어떤 본질적인 요소를 분명하게 거론하고 있다는 게 바로 그 내용입니다. 그러나 몇몇 종교 연구가들은 다음과 같이 논평하고 있습니다. 즉 블로흐는 60년대에 이르러, 토마스 뮌처의 전기의 수정본을 간행했는데, 여기서는 최근의 뮌처에 관한 신학적 연구 결과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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