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잡글

박설호: "제까짓 것들이 해봐야 얼마나 잘 하겠어?"

필자 (匹子) 2026. 7. 8. 10:44

 

인간 삶에서 중요한 것은 진리와 사랑의 발견이 아니라, 진리와 사랑을 발견하려는 끝없는 노력이다.” (곳홀트 에브라임 레싱)

 

1. 당신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씀이 무엇인지요? 그것은 아마 칭찬의 말씀일 것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니까요. 누군가의 칭찬은 당사자의 마음속에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곤 합니다. 그런데 칭찬할 건더기가 없는데도 상대방을 칭송하는 자는 교활한 간신이지요. 이 자리에서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을 거론할까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제까짓 것들이 해봐야 얼마나 잘하겠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변변치 못한 학교를 나왔으니 어련하겠어?”라는 말 속에는 엄청난 오류가 숨어 있습니다.

 

2. 한국의 교육 제도는 지금까지 학생들에게 보이지 않는 폭력을 저질러 왔습니다. 당신의 심리는 석차와 등수로써 그리고 대학 입시로써 수없이 난자당해 왔지요. 실제로 이른바 공부 잘한다는 학생은 오만한 엘리트로 성장하고, 이른바 공부 못한다는 학생은 장래 걱정에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리지 않습니까? 모든 학생을 망치는 교육적 상대 평가는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가령 초등학교 때 일 등한 게 살아가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요? 수석 합격 사진이 신문에 자랑스럽게 게재되는 나라는 아마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입니다.

 

3. “대입 자격시험Abitur”에 간신히 합격한 낙제생, 에른스트 블로흐는 어떠한 이유에서 입학 후 불과 삼 년 만에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먼 훗날 세계적인 철학자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무언가를 처음 공부할 때 개인의 능력 차이는 아주 잘 드러납니다. 특히 이 시기에는 능력 차이가 무엇보다도 암기력에 바탕을 둔 학습 속도에 의해서 결정되니까요.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원시안적으로 고찰할 때 “도토리 키 재기”이지요. 가령 “꼴찌란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가 아닙니다. “꼴찌란 수업 내용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자”라고 말해야 옳습니다.

 

4. 대학에서는 개인의 능력 차이가 그다지 명확히 평가될 수 없지요. 고등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많은 지식을 숙지하는 일이 아니라, 지식의 응용 능력의 배양입니다. 게다가 비판력과 창의력이 복합적인 기준으로 작용합니다. 그렇기에 인문 사회 과학의 어떤 이론에 대한 평가는 무척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주관적 판단과 입장이 객관에 합당한 대상으로서의 이론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상기한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할 때 학자는 지적 능력 뿐 아니라, 체력과 정신력을 지녀야 합니다.

 

5. 물론 지적 능력, 비판력 그리고 창의력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성공하는 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기회는 때와 장소에 따라 적절할 수도 있고,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열자(列子)는 때를 얻은 사람이 크게 번창하고, 때를 잃은 사람이 패망한다고 말했습니다. (凡得時者昌 失時者亡). 장소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좋은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사는 자이다.Bene qui latuit bene vixit” (오비디우스)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6. 이 자리를 빌려 당신에게 나의 일생을 좌우했던) 하나의 중대한 사건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1976년, 대학 4학년이었던 나는 우연히 교수용 화장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밖에서 일본의 D 제국대학 출신 교수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흥, 제까짓 것들이 해봐야 얼마나 잘 하겠어! 잘하면 왜 지방 대학을 다녀.” 그분의 독백은 나에게는 하나의 충격이었습니다. 밤새우며 고민한 결과, 차제에 나 자신의 지적 능력을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문인 대신에 학자가 되자. 그리하여 오늘날 “제까짓 것들” 가운데 어느 제자는 교수가 되어, 과거의 오만한 스승을 반추하고 있습니다.

 

7. 이른바 “일류(一流)”에 개의치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과거 업적에 대한 평가이지요. 초등학교 다닐 때 수석을 차지한 것을 자랑하는 사람은 용렬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좋은 대학 나왔다고 뽐내는 것 역시 어리석은 태도가 아닐까요? 윤석열은 우리에게 "서울 법대란 다만 하나의 형식적 기관이다."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니 자만하지 말고 시류에 휩쓸리지도 맙시다. 그것은 전체적 성향에 대한 평가이니까요. 오로지 흔들림 없이 한 가지 목표를 위해 10년간 매진하십시오. 그러면 큰 바위 얼굴, 당신은 어느새 한 방면의 대가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학벌과 수석이라는 알파보다는 최후에 웃는 자로서의 오메가가 더욱 통쾌함을 가져다주지 않는가요?

 

8. 추신: 언젠가 어느 친구가 일갈했습니다. “10년 동안 공부하면, 누구나 박사 학위를 딸 수 있어. 외국 박사라고 목에 힘주지 마. 당신은 천재가 아니야. 한 번 듣고 바로 기억하며, 놀면서도 깊은 의미를 깨닫는 자가 진짜 천재가 아닌가?” 이에 대해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말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독일 작가, 레싱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간 삶에서 중요한 것은 진리와 사랑의 발견이 아니라, 진리와 사랑을 발견하려는 끝없는 노력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합니다. “나는 아직 나 자신이 아니다, 아직 아무 것도 지니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노력하겠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