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Brecht

박설호: (2) 마르가레테 슈테핀의 시편 연구 2.

필자 (匹子) 2026. 5. 20. 11:00

(앞에서 계속됩니다.)

 

2. 별리(別離): “트루데는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다”

 

내 친구를 약 7년 동안

사랑했어요, 검은 오르게를*

내 친구는 지금까지 항상

나를 돌보아주었지요.

모든 걱정을 떨치게 해주었어요.

 

이별의 시간이 도래했을 때

그때 나는 처음으로 그가

나를 거칠게 대하는 걸 보았어요.

뻔뻔스럽게도 지금까지 우정에 대한

모든 대가를 요구했어요.

 

그는 나를 거름에서 꺼내어

소금과 빵을 건네준 자,

하루라도 거짓을 말하지 않은 자,

예나 지금에나 나를 따뜻이 대한 자,

내가 항상 함께 살아야 한다고 말해요.

 

내 감사는 그저 받아들이는 것임을

그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요.

그는 7년간 자신을 희생하면서

헌신적으로 날 돌보았어요.

허나 나는 그로부터 벗어나야 해요.

 

그를 사랑할 수 없다는 걸

오르게는 당연히 여겼지요.

허나 내가 그의 집에 거주하고

그의 경건한 평화를 지켜주는 것을

어쩔 수 없다고 여겼지요.

 

지금까지 희생하여 보살핀 대상이

사라지는 걸 보는 것은 정말 화날 거예요.

오르게의 새로운 삶의 목표는

이제 거름으로 가득 찬 통이지요.

그걸 고통을 느끼는 나에게 들이붓지요. (Steffin 1992: 191f).

 

凹: 이 시는 유일하게 제목이 붙어 있는데, 추측하건대 1930년 초인 완성된 것 같습니다. “오르게”는 사람 이름이지만 “보리”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르게가 보리의 씨앗이라면, 트루데라는 이름을 지닌 처녀인 “나”는 보리의 경작지와 같은 존재입니다. 씨와 밭이 아우러져서 하나의 생명체를 남기는데, 시인은 이러한 과정을 문학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임이 나에게서 사랑을 만끽할 수 없으면, 나의 존재는 그저 씨를 품는 거름 내지는 똥과 같은 존재에 불과할 것입니다.

 

凸: 시적 자아는 자기 자신을 똥이라고 간주하고 있습니다.

 

凹: 네, “거름으로 가득 찬 통” 속에 담긴 오물처럼 “나”의 존재는 그야말로 참담합니다. 만남의 순간 그들은 서로 하나가 되어, 각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지만, 헤어지는 순간에는 각자 사악하고 이기적인 영혼으로 돌변합니다. 이를테면 치정 살인이 대부분 이별의 순간에 발생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이별의 순간은 언제나 끔찍한 자아의 모습을 백일하에 드러내게 합니다. 배신당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존재라고 여깁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별의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잘못이 자신에게 있다든가, 자신에게 존재 가지 내지는 매력이 전무하다는 등과 같은 망상을 떨치는 일입니다. 슈테핀의 시는 성찰의 시간을 보내기 전의 이별의 아픔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3. “빈곤(貧困)”: “우린 방 하나에”

 

우린 방 하나에 다섯이 살고 있어.

엄마의 애인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살아.

밤에 오빠가 침대 속으로 기어들곤 해

행여나 동생을 밟을까, 두려워.

허나 일주일에 한 번 체조 팀 대신

나는 오르게의 집으로 가곤 해.

오르게의 가구 달린 방에서 이따금

혼자 하루를 지낼 수 있어

 

밤이 되면 애들은 일찍 잠을 자야해

허나 우리 둘은 제법 큰 편이야, 깨어 있지.

엄마의 애인은 쉴 틈을 주지 않아. 침대의

삐걱대는 소리는 우리의 가슴을 졸이게 해.

허나 오르게의 집에 누워 있으면

주위의 소리에 신경을 쓰지 않아.

그때마다 몹시 당황스러웠어,

엄마 곁에서 부끄러워했다는 걸.

 

우리 있는데서 그런 일 해도 부끄럽지 않니?

하고 언젠가 오빠가 한 번 물었지.

아니, 허나 방해받는 데 짜증나지만,

어쩔 수 없지 않니?, 하고 엄마는 대꾸했지.

오르게가 내 옷을 살며시 벗기면

나의 잔등에서 흥건한 땀이 솟아.

그럼 몰래 즐거움을 느끼거든, 그도

말했듯이, 내 몸이 잘 성장했으니.

 

이따금 내 몸에서 냄새 나는 것 같아

우리 헛간에는 따뜻한 썩는 냄새 가득하니.

그럼 엄마의 애인은 말하지, 너무 더우면

창문을 열라고.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아.

오르게의 집으로 갈 때는 언제나

냄새 나지 않도록 셔츠를 씻지.

그의 문 앞에서 향수를 뿌리곤 해.

그럼 냄새는 순식간에 사라지니.

 

엄마는 애인을 위하여 온갖 노력 다 하지.

그런데도 그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어.

애인이 남편에게 심하게 매질할 때마다,

그미는 즉시 애인의 침대로 향해야 해.

오르게는 내 가슴을 부드럽게 애무하고

자신도 사랑한다는 듯, 내게 입 맞추지

향상 나를 잘 대해주지, 그냥 단순히

그에게서 사랑을 느끼고 있으니까. (Steffin 1992: 191f)

 

凸“ 슈테핀의 「우린 방 하나에 다섯이 살고 있어 Wir ham eene Stube un sind fümfe」는 베를린 방언으로 집필된 시로군요.

凹: 그렇습니다. 작품은 베를린의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 그리고 모녀의 서로 다른 사랑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추측컨대 엄마는 가난을 극복하려고 남편 외의 다른 남자를 애인으로 맞이한 것 같습니다. “엄마”는 게오르크 뷔히너의 「보이체크 Woyzeck」에 등장하는 마리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텍스트는 한 남자가 “엄마”에게 어떠한 경제적 도움을 주는지 명확하게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애인”은 틀림없이 아빠의 상사입니다.

 

어째서 “애인”이 아빠에게 “매질”하는지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 “엄마”는 남편을 위해서 성을 상납해야 했을까요, 아니면, 그미는 자발적으로 성 도락을 즐겼을까요? 자식들로서는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표현에서 이에 대한 해답을 유추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적 자아는 “침대의 삐걱대는 소리”에 몹시 수치심을 느낍니다. 남자 친구 “오르게”가 자신을 포옹할 때 등에 흥건한 땀이 솟구칩니다. 중요한 것은 시적 자아가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그곳은 “따뜻한 썩는 냄새” 풍기는 “헛간”과 같습니다. 식구들은 단칸방에서 잠을 청해야 합니다.

 

凸: 가난한 노동자의 주위 환경은 참담했습니다. 슈테핀이 폐결핵에 걸린 것도 이러한 환경 탓이었는지 모르겠어요.

 

凹: 글쎄요.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슈테핀의 아버지는 군에 입대하였고, 동부 전선에 투입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소련군 포로수용소에 오랫동안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의 군대 동료가 혼자서 슈테핀의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사이에 휴가 나온 낯선 남자는 슈테핀의 어머니, 요한나와 몇 달 동거한 다음에 다시 군에 복귀하였습니다. (Reiber: 14). 그는 마르가레테와 동생 헤르타에게 초콜릿을 건네주었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무기 공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남편의 군대 상사가 찾아와서 잠시 함께 살았던 것입니다. 제 1차 세계대전은 이런 식으로 독일 소시민들의 사생활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는 슈테핀의 산문 작품 「사랑 그리고 전쟁에 관하여Von der Liebe und dem Krieg」에 상세히 묘사되고 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