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Brecht

박설호: (1) 마르가레테 슈테핀의 시편 연구 2

필자 (匹子) 2026. 5. 19. 10:10

 

박설호: (1) 사랑을 사랑했지만, 사랑하기는 아니었어요. 마르가레테 슈테핀의 시편 연구 2

 

凸: 선생님은 마르가레테 슈테핀의 15편의 시들을 번역하셨습니다. 하나씩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각주: 마르가레테 슈테핀이 남긴 시는 15편에 불과하다. 필자는 국내 처음으로 시편 전부를 번역하여 해설해 보았다. 출전은 다음과 같다. Steffin, Margarete (1992): Konfutse versteht nichts von Frauen. Nachgelassene Texte, (hrsg.) Inge Gellert, Rohwohlt: Berlin. )

凹: 작품들은 브레히트와의 서신 교류를 계기로 완성되었습니다. 서로 떨어져 있을 때 두 사람은 상대방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소네트를 통해서 표현했던 것입니다. 슈테핀의 시는 하마터면 유실될 뻔했습니다. 1941년 브레히트는 소련을 지나칠 때 소련 작가 동맹의 대표였던 미하일 아플레틴 Michail Apletin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만일 슈테핀이 사망하면, 그미의 원고를 보관해 달라고 브레히트가 간청했던 것입니다. (각주: 그리하여 미하일 아플레틴은 슈테핀이 모스크바의 병원에서 사망한 뒤에 그미의 원고들을 “문학과 예술을 위한 중앙 러시아 문서실 das Zentrale Russische Staats-Archiv für Literatur und Kunst”에 보존해두었다. ). 원고의 복사물은 1949년, 1961년, 1979년 그리고 1986년에 동베를린에 있는 “브레히트 문서실 BBA” 이송되었는데, 연구자들은 이것들을 원본과 대조하였습니다. (Knopf: 227.) 이러한 과정을 거쳐 아래의 시편들은 1992년에 소개되었습니다.

 

1. “낙태(落胎): ”내가 소녀였을 때“

 

내가 소녀였을 때 당연히 인형과

노는 것을 가장 즐겼어요.

열일곱 나이였을 때 자연스럽게

첫 번째 사랑을 느꼈어요.

 

처음엔 엄마가, 다음엔 애인이

이렇게 말했지요, 그래, 아이야,

넌 아마 쌍둥이를 낳게 될 거야

(아시겠지요, 사랑이 눈멀게 한다는 걸)

 

먼 훗날 서로 만나 사랑했다면,

아주 멋지게 출산했을 테지요.

허나 그분이 직장에서 쫓겨났을 때

즉시 곤궁함에 시달렸지요.

 

아무리 거대한 사랑이라도 우리의

생활비 걱정 앞에서는 소용없어요.

직장 없는 자는, 자식이 생기지 않도록

항상 신경 써야 하니까요.

 

실제로 근심으로 가득한

수많은 아이들을 바라보았어요.

나는 내 아이를 가질 수 없었지요.

도움을 얻으려고 발버둥 쳤으니까.

 

그래도 13주 동안 아기를 품었지요,

이후에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었어요.

(말하자면 삼 개월 동안만이라도

몸 상태가 최상이었어요.)

 

의사에게 가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아무도 내 푼돈으로 진료하지 않을 테니.

그 후에 들었지요, 어느 약사가

많은 생명을 지우게 했다고.

 

그가 나를 도왔지요. 스무 시간 동안

끔찍한 고통 속에 누워 있었어요.

그러자 어떤 무엇 그리고 다시

어떤 무엇이 사라지는 걸 느꼈어요.

 

바로 그때 내 쌍둥이는 조용히

어두운 피 속으로 헤엄쳤어요.

누군가 그들의 고통스런 헤엄을 바라본다면

사랑이 무얼 남기는지 감지할 테지요.(Steffin 1992: 189f.)

 

凸: 낙태의 경험을 담고 있는 시편이로군요.

凹: 그렇습니다. 이 시가 집필된 시기는 1932년 겨울에서 1933년 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품은 슈테핀의 고통스러운 낙태의 체험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어느 약사의 시술로 그미는 무려 “스무 시간동안” 비몽사몽으로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낙태의 아픔은 “어두운 피”와 함께 사라지는 자신의 두 태아의 상실에 대한 애절함과 묘하게 착종되고 있습니다. 슈테핀은 18세의 나이에 젊은 노동자, 헤르베르트 딤케Herbert Dymke와 사귀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베를린의 독일 공산당 산하에 있는 노동자 청년 단체인 피히테 그룹에서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동거에 들어갔으나, 집세조차 내기 어려울 정도로 당시 노동자 임금은 박했습니다. 자식을 출산하여 키울 수 없는 여건 때문에 슈테핀은 두 번에 걸쳐 낙태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Reiber: 94).

딤케와 슈테핀은 가난을 극복하고 평생 해로하자고 약속한 바 있는데, 도중에 헤어져야 했습니다. 왜냐면 헤르베르트 딤케가 다른 여성과 바람을 피웠기 때문입니다. 딤케는 두 여인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슈테핀의 입장은 단호했습니다.

 

凸: 가난은 감내할 수 있으나, 사랑하는 임의 외도는 용서할 수 없었겠지요. 결국 두 사람은 1931년 초에 이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