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나의 시

박설호의 시, '백장미의 고백'

필자 (匹子) 2026. 2. 8. 10:31

객쩍은 말씀

 

지금 바로 이 순간 수많은 영혼은 사랑을 갈구한다. 사랑으로 인해 기쁨을 느끼거나, 괴로워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특정한 임에게 모든 열정과 정성을 쏟는 우리는 정작 사랑의 정체가 무엇인지 깊이 따지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부모들이 올바른 교육이 무엇인지 묻지 않은 채, 오로지 제 자식만 좋은 학교에 진학할 것을 바라는 것과 같다. 누구를 비난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이 그러하다는 말이다.

 

사랑을 깨닫는 일보다는 사랑에 탐닉하는 데 골몰하는 것은 모든 동물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특징이다. 그런데 백장미를 보라. 기이하게도 백장미에게는 붉음이 없다. 붉은 피가 빠져 있다. 우리에게 묘한 느낌을 안겨준다. 백장미의 심장에는 피가 돌지 않는 것일까?

 

사랑을 위해서 전력투구하는 자는 완전한 사랑을 성취하지 못한다. 물론 우리는 사랑을 통해서 순간적으로, 다시 말해서 일시적 만족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영원한 사랑을 충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차라리 처음부터 사랑을 기대하지 말고, 오늘을 즐기면서 사는 게 괴로움과 번민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언제까지 우리는 도래하지 않을 “신비적 합일 Unio mystica”을 위해서 지금 여기 참고 살아야 하는가?

 

완전하고 영원한 사랑은 성취 불가능하다. 다만 영원하고 완전한 사랑을 찾으려는 우리의 마음가짐 그리고 그 노력은 언제 어디서나 아름답게 비친다. 설령 흰색이라고 하더라도...

 

백장미의 고백 *

박설호

 

사랑한다는

말 뒤에 숨은 여백

어찌 그리 광활하고도

깊어 우리의 두 눈

꼭 감길까요

 

오래 머물면

내 향기 사라지고

하얀 꽃 계속 피어나면

가슴 설렘 지우는

따분한 일상

 

잡히지 않는

가슴 속 상처 당장

흘러내릴 피 진주 바칠 **

격정 없으면 사랑이

떠나갈까요

 

차라리 붉은

색 감추고 “오늘을

즐겨요.” 하얀 순결 모두 ***

포기해요 기대가

실망 남기니

 

.................

 

* 백장미는 순수함, 순결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꽃이다. 서양에서는 백장미가 왕에 대한 충성심을 상징하기도 했다. 그것은 적군에 저항하는 백군의 반동적 정치 행위의 의미를 지닌다. 히틀러 치아에서 저항 운동을 벌이던 숄 남매는 자신의 그룹을 백장미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백장미는 깊은 평화를 추구하는 마음가짐으로 이해된다.

 

** 인간은 내일의 행복을 위하여 현재 삶을 희생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브레히트의 극작품 『갈릴레이의 생애 Leben des Galilei』 제 8장에 실린 주인공과 작은 사제 사이의 대화, 특히 진주조개의 비유를 참고하라.

 

*** 이 말은 원래 “하루를 꺾어라. Carpe diem”는 뜻인데, 호라티우스의 송시 「레우코노에에게」에서 유래한 것이다. 레우코노에는 포세이돈의 딸이다. “레우코노에, 아무도 제 운명을 알 수 없어요./ 당신도 모르고 나도 몰라요. 묻지 말아요. 찻잎이나 손금을 읽어/ 알아볼 생각도 말아요. 무슨 일이 닥치든 담담히 받아들여요./ 이 겨울이 우리의 마지막 겨울일 수 있어요. 아니면 토스카나 바다를/ 저 벼랑에 내던져 그 힘을 앗아갈 더 많은 겨울이 기다릴 수도 있어요./ 해야 할 일을 하세요. 지혜롭게 살아요. 포도주를 걸러 마시고/ 희망에 관한 것을 잊어버리세요. 시간은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중에도/ 달아나고 있어요. 현재를 붙잡아요. 미래는 마음에 두지 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