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서로박: 후설의 현상학, 그 특징과 한계

필자 (匹子) 2026. 1. 23. 11:12

1.

에드문트 후설 (1859 – 1938)은 현상학이라는 철학적 영역을 개척한 학자입니다. 그는 19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시기에서 가장 놀라운 영향을 끼친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대체로 자신의 가치 판단을 너무 성급하게 내세웠는데, 이로써 많은 오해와 선입견이 대두된 것도 사실입니다. 후설은 철학의 영역에서 현상학의 방법론을 엄밀한 학문으로 정립하려는 목표를 세운 바 있습니다.

 

2.

그의 책, 『논리 분석 Logische Untersuchungen』 (1901/1902)은 당시에 통용되고 있던 심리 철학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심리 철학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내세웠습니다. 즉 논리적 법칙이란 인간의 심리 속의 여러 원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후설은 순수 논리학의 관념성을 중시합니다. 즉 순수 논리의 법칙은 사고의 진행 과정에서 실제 출현하는 것과는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논리 분석』의 5장과 6장은 현상학적 의식을 분석하고 그 토대를 구명하고 있습니다.

 

3.

현상학의 의식은 순수한 현상 그리고 현상을 고려한 철학적 이념 속에서 발전됩니다. 확정되는 모든 의식은 의식에 자리하는 현상적 사항에 대한 직관적 관조라는 소여성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후설의 “지향성Intentionaltät”이라는 개념입니다. 여기서 지향성은 “앞으로 향하는 지향성 Protention” 그리고 “뒤로 향하는 지향성 Retention”으로 나누어집니다. 이에 관해서는 조만간 설명하겠습니다.

 

4.

후설은 철학자, 프란츠 브렌타노 (1938 – 1917)로부터 이러한 지향성의 개념을 채택한 바 있습니다. 브렌타노는 『도덕적 인식의 기원』의 저자로서 철학에서 선입견을 배제하는 것, 즉 “무 선입견의 특성”을 중요하게 여겼했습니다. (브렌타노: 도덕적 인식의 기원, 이을상 역, 지만지 2016). 즉 미래의 철학은 브렌타노에 의하면 베이컨이나 데카르트의 정신을 바탕으로 더 이상 마냥 선험적으로 규정될 수 없다고 합니다. 심리적 현상의 유형은 물리적 현상과는 달리 스스로 어떤 무엇 내지는 어떤 무엇에 관한 의식으로 향해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5.

후설은 브렌타노가 생각한 지향성의 개념을 넓게 확장시킵니다. 의식의 지향성은 (인지 행위, 기억 행위, 연애 감정 등과 같은) 의식의 통상적 상관관계를 가리킵니다. 여기서는 “노에시스 Noësis” 그리고 “노에마 Noëma”라는 용어가 사용됩니다. 노에시스는 대상의 방식으로서의 사고 행위를 가리키고, 노에마는 지각된 것으로서의 사고의 대상, 즉 사고의 상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후설이 이렇게 구분한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요?

 

6.

사고로 떠오른 대상은 어떤 종합의 결과입니다. 그 속에는 다양한 노에시스가 대상에 대한 어떤 의식의 일원성을 가져다줍니다. 노에마는 현실적 존재 속의 대상이 아니라, 의식을 부여하는 기능 속의 대상입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의식의 완전체를 의향으로 지닐 뿐입니다. 여기서 작용하는 것은 감각의 소재에 해당하는 감정적 재료들입니다. 우리는 이를 근거로 인지 분석을 시도해야 합니다. 감각적 소재로서의 여러 노에시스는 체험 속의 어떤 사실적 내용을 형성하는데, 그 속에 생각된 여러 노에마는 추구하는 대상으로서의 비현실적 내용입니다.

 

7.

의향성은 기본적으로 명백성의 추구를 목표로 합니다. “명백성Evidenz”이란 파악하려는 의식에 대한 어떤 의향적 사고의 상이 분명히 스스로 주어져 있음을 뜻합니다. 현상을 명백히 바라보기 위해서 요청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세계를 인지하는 우리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교체하는 일입니다. 후설은 이러한 과업을 “현상학적 축소”라고 명명합니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자연을 대하면서 대상으로 주어진 존재에 연속적으로 어떤 판단을 내립니다. 이에 반해 현상학적 축소 행위는 대상의 존재, 혹은 비-존재에 관한 모든 유건 해석을 일차적으로 유보합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순수한 의식의 아무런 선입견 없는 관찰이 가능해집니다.

 

8.

순수 의식이란 노에시스와 노에마의 상관관계 속에서 현상적으로 주어져 있는 무엇입니다. 후설은 이러한 관찰 과정을 (고대의 스토아 철학자들이 사용하던) “판단의 중지 ἐποχή”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현상학의 기본적 면모는 철학적 직관의 축소화로 요약됩니다. 현상학은 탁월한 인간의 체험과 같은 개별 사항이 아니라, 존재에 합당한 체험의 기본 법칙을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현상학은 이러한 의미에서 존재를 투시하는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현상학적 축소를 통해서 다음의 사항을 분명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은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의식하며, 의식 속에 구성되는 대상으로서의 세계는 어떻게 구조화되는가? 하는 사항 말입니다.

 

9.

이러한 구성의 배경이 되는 것은 순수한 자아의 동일성입니다. 자아의 의식에는 체험의 관련성이 하나의 토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내적인 시간 의식의 현상학입니다. 물리적 시간과 내적 의식의 시간은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이 다른 맥락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서로 이질적 특성을 지닙니다. 체험의 시간성은 인간 내면의 의식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후설이 이해하고 있는 현재 의식은 어떻게 설명되고 있을까요?

 

10.

현재 의식은 우리가 일차적으로 감지하는 현재성으로 이해됩니다. 왜냐면 그것은 지나간 사실 그리고 도래할 사실을 모조리 재현하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하나의 시점(時点)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확장된 영역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현재 의식 속에는 현재뿐 아니라, 과거의 기억 그리고 미래의 기대감이 공존합니다. 이러한 확장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미 존재한 무엇은 “뒤로 향하는 의향 Retention”으로서 현재성을 보존하고 있으며, 차제에 도래할 무엇은 “앞으로 향하는 의향 Protention”으로서 현재성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지금은 두 개의 의향이라는 연결고리로 결착되어 있습니다. 이에 반해 물리적 관점에서의 “지금”은 모래 시계의 점 하나에 불과합니다. 현재의 무엇은 뒤로 향해서 마치 사슬이 엮이듯이 기억으로 가라앉게 됩니다.

 

11.

의식 행위를 구성하는 요건은 시간과 장소 외에도 상호 주관성에서 발견됩니다. 자신의 체험과 연결된 자아가 어떻게 어떤 낯선 자아와 연결되는가? 하는 물음은 중요합니다. 만약 수많은 주체가 유효하다고 인정하는 것을 객관성이라고 규정한다면, 이러한 객관성은 어떠한 방식으로 형성될까요? 어떤 다른 자아가 실존한다는 의식은 자신의 고유한 신체 그리고 신체의 경험을 인지하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나의 몸을 인지하는 것은 그 자체 다른 자아의 신체 역시 존재한다는 사고에서 비롯합니다. 실제로 “나”는 다른 주체들과 함께 많은 것을 공유하고 함께 살아갑니다. 이로써 세계는 간주관적으로 서로 얽혀 있습니다.

 

12.

후설은 말년에 『유럽 과학의 위기 그리고 초월적 현상학Die Krisis der europäischen Wissenschaften und die transyendentale Phänomenologie』 (1936)에서 생명 세계의 개념을 도출해냅니다. 근대에 갈릴레이 이래로 발전된 추상적 학문으로서의 자연과학은 주관적 직관의 생명 영역과의 관련성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추상적 수학이라는 객관성 역시 생명 세계의 실천 과정에서 태동한 주관적 산물임을 백안시했습니다. 가령 기하학 역시 근본적으로 생명 세계의 관점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합니다. 현대 세계의 파괴 현상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은 생명 세계의 선험적 주관성이며, 이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는 것이 현상학적 방법론이라는 것입니다.

 

13.

후설의 현상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하고 방식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현상학이 내세우는 판단의 중지는 세계를 인식하는 데 있어서의 신중한 방식만을 제시할 뿐, 존재론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를 등한시할 위험성을 지닙니다. 다시 말해 후설의 현상학은 세계 인식을 위한 방법론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파악되어야 할 세계의 비밀을 간파해주지 못합니다. 이 점이 바로 현상학의 한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상학은 20세기 초 급변하는 시대적 변화를 직시하면서 올바론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도구,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시대에 둔감한 “근시 안경” 하나에 불과했다는 비난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