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나의 시

박설호의 시, '쑥부쟁이에게 사랑을 고백하다'

필자 (匹子) 2025. 7. 21. 09:14

 

쑥부쟁이에게 사랑을 고백하다

박설호

 

1

쑥부쟁이 넌 나의 은인이야

사향노루인 내가 다리를 다쳤을 때

나를 보호해주고 정성껏 고수련하였지

정말로 고마워.” 지금까지 다른 어떤

생명체에게 마음 기댄 적 없었는데

너에게 사랑과 우정 느꼈어

 

2

세 개의 구슬이 담긴 주머니

너에게 선물했지. “구슬 물고 비손하면

세 가지 소원 이루어질 거야.” 어느 날

어머니가 몸져누웠을 때 처음으로 빌었지

제발 엄마를 낫게 해주세요.” 그러자

정말 어머니 건강 되찾았지

 

3

쑥부쟁이 네 따뜻한 배려를

나 혼자만 얻은 것은 아니었지 어느

가을날 너는 어두운 동굴에 갇힌

젊은 사냥꾼 구해주었지 너희는 일순

사랑하게 되었어 “행여나 당신에게

누가 될까 우려스러워요.”

 

4

그의 손목 뿌리치며 말했지

평범한 시골 처녀, 그저 당신에게

도움 주고 싶어요.” 청년은 애원했지

아니, 우리 영원히 잊지 말아요. 당신

내 친구가 되어주세요. 반드시 다시

올게요.” 그 후에 그는 떠났지

 

5

애타는 처녀야, 떠나간 청년

그렇게 좋아?” 가을이 수차례 지나가도

그에게선 아무 소식 없었지 대장장이

아빠는 이웃 사내와 선을 보게 했어

임을 애틋하게 그리워하는 네 어찌

다른 사내를 반길 수 있을까

 

6

기다림에 지친 너 쑥부쟁이

구슬 하나 입에 물고 두번째의

소원을 빌었지 “다시 만나게 해주세요.

일순간 사냥꾼이 나타났어 “미안해. 나를

용서해줘. 대신 너와 함께 오래 살게.”

너희는 화해하며 껴안았지

 

7

하나 사냥꾼 고향의 아내와

아이를 그리워했지 착한 쑥부쟁이는

임의 행복을 위해 구슬을 물고 마지막

소원을 빌었지 “그의 향수를 달래주세요.

사냥꾼은 그만 떠나버렸어 너의 눈물

그렁그렁 들판을 헤매었지

 

8

쑥부쟁이 너는 나물 캐면서

외로움에 멍때리다 발을 헛디뎠지

구릉 아래 추락하고 말았어 미완의

죽음 내 영혼 아프게 갉아먹었지 아니

네 무덤가엔 노랗고 푸른 꽃 피어났지

친구야, 내가 너무 경솔했어.

 

9

차라리 너에게 구슬 주머니

선물하지 말 걸 그랬어.” 사랑 없는

그리움만 가득 찬 너의 몸 사시랑이

항상 하늘로 솟았지 친구야 지금도

노란 암술 푸른 꽃잎 향기 맡으며

점직한 마음 떨칠 수가 없어

 

...................

 

(시작 노트)

 

사향노루의 관점에서 쑥부쟁이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운율, 대사 그리고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시적, 극적 그리고 서사적 특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담시Ballade”의 요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생명체의 오욕칠정을 글로 표현하는 일 ― 이것이야말로 인류세의 시인이 지향해야 할 문학적 방향일지 모릅니다.

 

출전: 박설호 시집, 내 영혼 그대의 몸속으로, 강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