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림 (명저)

박설호: 에른스트 블로흐 연구, 물질과 희망. 감사의 말씀

필자 (匹子) 2026. 3. 23. 11:50

 

감사의 말씀

“사고란 한계를 뛰어넘는 행위다.” (블로흐)

 

나의 제자이자 친구인 M에게 discipulo mea et amico M : 더 나은 세계는 어떻게 구성될 수 있을까요? 인간의 갈망 속에는 자유, 평등 그리고 동지애라는 전언이 하나의 자극제로 남아 있습니다. 더 나은 미래의 바람직한 세계를 창조하는 방안은 무엇일까요? 이러한 질문이 오랜 세월 에른스트 블로흐를 연구하게 하였습니다. 에른스트 블로흐는 흙수저 출신이지만, 불굴의 노력으로 힘든 삶을 극복하였고, 물질과 희망의 관점에서 놀라운 철학적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블로흐의 노력은 얼마나 대단한가요?

 

2011년에 간행한 저서에서 필자는 블로흐의 사상적 동인을 “꿈”과 “저항”으로 요약한 바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힘들게 살아가고 무거운 짐을 진 채 생활하며, 경멸당하고 모욕당하는 존재로 취급받는 모든 구체적인 현실의 정황을 무너뜨려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과업은 지금 그리고 여기 서성거리는 가지지 못한 자의 “저항”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목표로서의 먼 곳을 바라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더 나은 삶에 대한 지평 내지는 경향성을 예술로 그리고 철학으로 선취하는 일입니다. 바로 “”이라는 동인입니다. “꿈”의 시각이야말로 사회주의의 부분적 대안을 찾으며, 인류세의 절망 앞에서 어떤 구원의 가능성을 숙고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꿈과 저항은 블로흐 사상의 특징일 뿐 본질이 아닙니다. 꿈과 저항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대의(大義) 그리고 기개만을 밝혀줄 뿐입니다. 그러므로 필자는 여기서 물질 희망을 지적하려고 합니다. 물질이 블로흐 존재론의 핵심 개념이라면, 희망은 블로흐 인식론의 기본적 내용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소개된 블로흐의 연구에는 주로 희망의 내용으로 가득 차 있지만, 물질 이론의 관점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블로흐의 물질 이론과 카테고리 그리고 “아직 아님”과 자연 주체의 대목을 보충하는 작업은 무엇보다도 절실했습니다. 본서의 부제에 해당하는 물질과 희망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블로흐의 물질 이론의 세 가지 중요한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블로흐는 물질에서 신의 개념을 일탈시켰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로 이어지는 물질 이론에는 처음부터 신의 영향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질 속에 신의 권능을 배제하고 오로지 존재의 근거로서의 물질을 고찰한 사람들은 아라비아 철학자들 (아비켄나, 아베로에스 그리고 아비케브론)이었습니다. 물질의 본원적 기능으로서의 “창조하는 자연 natura naturans”을 처음 언급한 사람도 바로 이들이었습니다. 이로써 포스트 존재론의 관점에서의 물질 이론은 조르다노 브루노에서 나중에 마르크스로 이어지게 됩니다.

 

둘째로 블로흐의 존재론은 “아직 아님 noch nicht”이라는 모티프에서 출발하여, 과정과 변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현-존재는 아직 아님이라는 결핍의 모티프를 통해서 존재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마지막 목표의 개념은 블로흐에게는 “전체에 대한 부분pars pro toto”, 즉 “과정을 포함하는 결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블로흐의 존재론에 나타난 이러한 특징은 19세기 유럽의 후기 자본주의라는 아포리아 속에서 존재의 근원을 찾는 하이데거의 고착된 폐쇄적 존재론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이데거에게 현-존재는 결과론적으로 대두된 최종적 개념입니다. 다시 말해 그에게는 정치적 측면 그리고 존재론의 측면에서 변화와 과정 그리고 미래에 대한 방향성이 추호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셋째로 블로흐는 물질을 모든 존재를 포괄하는 거대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간 존재 역시 물질이라는 카테고리 속에 포함(包含)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포함은 질적 의미의 포괄성을 거부하는 포함(包涵)과는 분명히 구분됩니다. 게다가 인간과 자연 사이의 이원론에 근거한 데카르트의 서양 철학의 논거와도 차이점 또한 드러냅니다. “자연은” 헤르더Herder도 말한 바 있듯이, “돌에서 수정으로, 수정에서 금속으로, 금속에서 식물로, 식물에서 짐승으로, 짐승에서 사람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와 관련하여 블로흐는 인간 존재의 비밀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블로흐에 의하면 아직도 우리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인식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인간은 끝없이 무언가를 갈망하는 존재인데, 스스로 갈구하는 바를 미리 그리고 완전히 포착하지는 못합니다. 물론 희망의 내용은 마르크스주의가 말하는 자유의 나라일 수 있고, 토마스 뮌처가 말하는 지상의 천국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블로흐의 희망 사상에는 놀랍게도 자연 주체의 비밀 내지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 비밀이 은폐되어 있습니다. 세계는 인간 앞에 개방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노동을 통해서 스스로 변화하는 힘을 획득합니다. 이로써 인간과 세계는 질적 존재로서의 물질을 가리키는데, 상호 아우르며 주체의 관계를 객관적 관점에서 보조하고 발전시켜 나갑니다.

 

인간과 세계의 비밀은 블로흐에 의하면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자연은 어떤 부호로써 자신의 모습을 은밀히 암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자연 주체는 생명과 비-생명을 포괄하는 생태학의 관심사와 연결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견지해야 하는 사항은 관심의 방향을 새롭게 전환하는 일입니다. 존재는 맨 처음에 자리하며, 이것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족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맨 처음에 수많은 거짓과 허구로 뒤섞여 있습니다. 따라서 과거의 무엇을 완벽하게 인식하려고 애쓸 게 아니라, 처음부터 존재의 부족한 부분 그리고 결핍을 인지하고 이를 수정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블로흐는 『흔적들 Spuren』에서 천일야화 431번째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박설호: 에로스와 서양 문학, 울력, 2019, 39쪽).

 

김진 교수는 명저, 『희망의 인문학』 (울산대 출판부 2021)에서 동서양을 아우르는 희망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그의 책은 서양 철학과 종교, 한민족이 추구해 온 희망의 정서를 명징하고 폭넓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필자는 넓이보다는 깊이, 비유적으로 말해서 망각의 바다에 가라앉은 보물 상자와 같은 블로흐의 문헌을 인양하고 싶었습니다. 저술 작업 외에도 차제에 블로흐의 번역 작업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학문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여전히 많이 모자라는 필자를 격려하고 집필을 도와준 국내외의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친애하는 M, 학문의 길을 걸어가는 당신도 본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안산의 우거에서

박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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