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동구러문헌

서로박: (2) 나보코프의 '재능'

필자 (匹子) 2026. 2. 5. 09:19

(앞에서 계속됩니다.)

 

6. 줄거리, 문학이란 무엇인가? 작품은 제목이 시사하고 있듯이 체르딘체프의 문학적으로 성숙해 나가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서 과거 삶의 의미를 밝히려 합니다. 아버지에 관한 자료는 넘쳐흐르는데도, 기이하게도 아버지의 상, 다시 말해서 그의 행적에 관한 윤곽이 명징하게 잡히지 않습니다. 어쩌면 아버지는 어떤 마력에 이끌린 채 나비에 몰두했습니다. 과연 무엇이 아버지를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여행으로 도피하게 했는지 도저히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력 – 이것을 간파하지 못한 채 글을 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아버지에 관한 글은 끝내 완성되지 않습니다. 이는 포기가 아니라, 어쩌면 정체성의 발견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간간이 푸시킨의 시를 암송하곤 했지만, 문학에 전력투구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연과학자인 아버지에 비하면 자신이 문학예술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탐색은 문학 작품을 집필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궁극적으로 주인공의 정체성 발견의 과정과 같습니다. 이로써 한 가지 사실이 명확해집니다. 그것은 문학 자체가 작품, 『재능』의 핵심적 주제라는 사실입니다. 독자는 아버지에 대한 비밀스러운 추적 과정을 통해서 고통스러운 긴장 속에 빠져들 정도로 기막힌 유희를 경험하게 됩니다. 문학이란 결코 제한될 수 없으며, 마치 신기루와 같아서 우리를 어둡고도 낯선 샛길로 안내한다는 것입니다.

 

7. 전기 소설의 완성: 이미 언급했듯이 체르니셰프스키 부부는 주인공에게 자살한 아들에 관한 문학 작품을 집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샤샤는 세 명의 젊은이 사이의 비극적인 삼각관계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한 젊은이입니다. 야샤는 루돌프를 사랑하고 루돌프는 올랴를 사랑하고, 올랴는 야샤를 사랑하는 등 서로 엇갈리는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야샤는 자신의 일기에서 그들의 관계를 “하나의 원 안에 내접한 삼각형”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세 명은 동시에 자살하지만, 이들 가운데 샤샤만이 목숨을 잃습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주인공은 샤샤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체르니셰프스키 부부의 부탁을 거절합니다. 나중에 작가도 술회한 바 있지만, 프로이트 방식의 심리적 갈등 구조를 밝히는 작업에 거부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나중에 자신의 아버지에 관한 전기 소설을 집필하려는 시도 역시 실패로 돌아갑니다.

 

체르딘체프는 한 개인의 심리적 갈등을 밝히는 일이 작품 집필의 충분 조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거기에는 집필 내용에 대한 비판적 거리감 내지는 객관성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삶의 흔적을 추적하여 전기 소설을 집필하려는 시도 역시 실패로 돌아갑니다. 물론 이러한 작업은 시의 장르 내지는 러시아에서의 과거 삶을 떨치는 계기로 작용합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이를 지양하고,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에 관한 소설을 끝내 완성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체르딘체프는 “무지개” 그리고 “나비”로 상징화되는 아버지의 세계, 즉 푸시킨 문학 세계를 거쳐서, 혁명을 추구하는 러시아 비평가에 관한 전기 소설을 마침내 완성하게 됩니다. 여기서 체르니솁스키라는 성(姓)이 야샤 부모의 성(姓)과 같다는 사실 또한 의미심장합니다.

 

8. 예술의 방향에 관한 자전적 소설: 작품 『재능』에는 러시아의 고전 문학 그리고 당시 소련의 문학 비평에 대한 은밀한 비판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로써 작가 나보코프는 망명하는 자신의 작가적 방향을 미리 탐색하려고 했습니다. 그밖에 우리는 러시아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러시아의 문화적 영향력을 키워나가려는 노력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과업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사실 작품의 배경, 베를린은 나보코프에게는 중요한 예술적 자양을 안겨주는 공간으로 자리하지 않습니다. 베를린의 분위기는 거대한 전쟁을 앞둔 시기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을씨년스럽고, 거리에는 인간적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작가는 자신과 등장 인물에게 비탄의 감정을 불어넣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사람들은 창의적 생산을 통해서 자신의 역경을 극복하려고 애를 쓰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주인공 그리고 유대인의 피를 절반 물려받은 지나와의 사랑 이야기는 어쩌면 지엽적인 사항일지 모릅니다. 나보코프 자신도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듯이 주인공이 얻게 된 선물은 지나라는 여성이 아니라, 글쓰기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 체르딘체프가 서서히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발견하고 이를 발전시켜 나간다는 사실입니다. 작품은 시 그리고 산문, 픽션 그리고 문학 비평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거머쥐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9. 극단적 심미성은 하나의 맹점이다: 소설은 극단적 심미성이라는 맹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나보코프는 혁명으로 이어나가는 소련의 정치적 분위기 그리고 이러한 근본적 문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외면하고 있습니다. 물론 20세기 초의 시대적 분위기는 인간의 자유로운 삶 그리고 행복을 끔찍하게 파괴하게 했습니다. 예컨대 브레히트는 나치의 폭력을 피해 도주하면서도, 더 나은 사회의 토대는 어떻게 건설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로 고심했습니다. 그 외의 수많은 지식인 작가들은 파시즘과 스탈린주의의 극복 문제, 더 나은 사회적 삶에 관한 논의를 강구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나보코프는 사회적 문제에 눈을 감은 채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문학예술이 함축하고 있는 심미성 그리고 개인의 자율성으로 향해 방향을 설정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동구 혹은 소련 출신의 작가들 가운데 이러한 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령 밀란 쿤데라와 같은 작가를 생각해 보세요. 이러한 태도는 그 자체 문학의 두 가지 근본적 기능 (향유와 교훈) 가운데 한 가지 방향에만 과도하게 경도하는 부분적 쏠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문헌

 

- 나보코프, 블라디미르: 재능, 박소연 역, 을유문화사 2016.

- 박혜경: 나보코프 재능의 주인공 표도르의 성장 서사: 시인에서 전기 작가로, in: 노어노문학, 37권 2호, 2025, 113 – 144.

- Davydov, S.: The Gift. Nabokovs Aestetic Exorcism of Chernyshevskii, in: Canadian-American Slavic Studies, 19, 1985, 357 – 374.

- Nabokov, Vladimir: Kunst des Lesens, Meisterwerke europäischer Literatur, Frankfurt a. M. 1982.

- Nabokov, Vladimir: The Gift, New York 1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