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동구러문헌

서로박: (1) 나보코프의 '재능'

필자 (匹子) 2026. 2. 4. 10:08

 

1. “인과적 우연”: 극단적 유미주의자, 나비 채집가, 체스 게이머, 러시아 출신의 미국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Vladimir Nabokov, 1899 – 1977)의 소설 『재능 дар』 (1738)는 그의 아홉 번째 소설로서, 문학적으로 가장 탁월한 산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작품은 러시아어로 집필된 마지막 소설이라는 점에서 나보코프 문학의 전환기에 완성된 것입니다. 그의 소설 『롤리타』는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으나, 러시아 문학 연구가들은 소설, 『재능』을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하곤 합니다. 특히 자전적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작가 스스로 이 작품에 애착을 느꼈습니다.

 

1940년대부터 나보코프는 주로 영어로 작품을 집필하고 이를 발표했습니다. 작품 『재능』은 해외로 망명하기 위해 잠시 베를린에 체류하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나보코프 대부분 소설의 줄거리가 마치 체스 게임에서 기물의 움직임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돌발 현상이 출현하여 플롯의 전개를 다른 곳으로 치환하게 합니다. 이는 “인과적 우연”이라는 형용모순의 표현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줄거리, 시인 체르딘체프: 표도르 콘스탄티노비치 체르딘체프는 1920년대 베를린에 잠시 머무는 러시아 망명객입니다. 작품은 그가 탄넨베르크 거리 7번지의 하숙집으로 이사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는 최근에 시집 한 권을 출간했습니다. 체르니셰프스키라는 이름의 남자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서, 시집 출간을 축하하고, 모임에서 시를 낭독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의 시집은 혁명 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누나와 함께 보낸 주인공의 어린 시절 등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게 합니다. 파티에 도착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때 자신이 만우절 장난에 속았음을 알게 됩니다. 그의 시집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낯선 독일 땅에서 러시아어로 간행된 시집이 외면당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체르니셰프스키 부부에게는 야샤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주인공과 흡사하게 생겼으며, 문학을 애호하는 소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사랑의 갈등으로 인해 자살하고 맙니다. 그의 어머니는 체르딘체프에게 아들의 비극적인 최후를 작품에 반영해달라고 부탁하지만, 그는 이를 거절합니다.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알렉산드르 체르니셰프스키는 충격으로 정신 이상 증세를 드러내곤 합니다. 가을이 되자 체르딘체프는 러시아 망명자들의 문학 파티에 참석하여, 자신의 문학의 라이벌, 콘체예프라는 이름의 작가를 사귀게 됩니다. 여기서 콘체예프는 나보코프의 문학적 능력을 인정해준 실존했던 시인, 불라디스라프 호다세비치 (Wladislaw Chodassewitsch, 1886 - 1939)를 떠올리게 합니다. (박혜경: 116). 호다세비치 시인 역시 1923년에서 이듬해까지 베를린에 머물다가, 나치 독일이 진군했던 프랑스 파리에서 유명을 달리한 러시아 망명 시인이었습니다. 어쨌든 주인공이 참석한 새로운 희곡 낭독회는 차가자를 마냥 지루하게 만듭니다. 체르딘체프는 그곳을 떠나기 전에 그와 콘체예프는 러시아 문학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입니다.

 

3. 줄거리,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서: 어느 날 주인공, 체르딘체프의 뇌리에 한 가지 착상이 떠오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돌아가신 아버지의 행적을 소설로 집필하려는 구상이었습니다. 어쩌면 과거는 주인공에게는 혁명 이전 러시아에서 행복을 맛보던 유년 시절, 유명한 탐험가로 혁명 시기에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과 같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른 나이에 영국으로 유학하여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공부한, 저명한 자연과학자였습니다. 아버지는 수많은 나비를 채집하여 이를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나비 채집은 사실 나보코프가 오래전부터 착수하여 죽기 직전까지 매달린 바 있는 취미 활동이었습니다. 주인공은 나비 채집 외에도 돌아가신 아버지의 여러 가지의 흔적을 찾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생물학 탐구를 위해서 세상에서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찾아서 수없이 여행을 거듭했습니다. 주인공은 이를 떠올리면서 그가 남긴 연구 논문들을 찾아서 하나하나씩 독파해 나갑니다. 어쩌면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아버지가 삶에서 찾으려던 의미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파리에 살고 있었는데, 베를린으로 와서 아들의 작업을 돕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학문 외적인 생활에 관해서 여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4. 줄거리, 지나와의 사랑 그리고 글쓰기: 주인공은 다시 다른 곳에 거처를 마련해야 합니다. 다행히 시초콜레프의 집에서 세 들어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체르딘체프는 시초콜레프 부부 그리고 지나라는 이름을 지닌 딸과 함께 식사합니다. 시초골레프는 정치에 관한 장광설을 늘어놓자, 딸 지나는 아버지에게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냅니다. 주인공은 그미에게 저녁에 카페에서 만나자고 제안합니다. 그미 역시 이를 흔쾌히 수락합니다. 이때 오후에 그는 과외 수업을 하고 서점을 방문합니다. 그의 눈에 띈 것은 콘체예프의 시집 그리고 소련의 체스 잡지였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 지나를 만납니다.

 

두 사람은 서서히 상대방을 이해하면서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지나는 체르딘체프의 시집을 이미 구해서 읽은 바 있었고, 문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사실 지나에게는 말못할 아픔이 있었습니다. 지나는 시초골레프의 의붓딸이었습니다. 시초골레프는 그미의 어머니와 재혼했는데,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딸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지나는 심리적으로 몹시 괴롭고도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지나는 체르딘체프에게 놀라운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어 줍니다. 그미의 존재 자체가 집필의 자극제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주인공은 자유주의의 입장을 추구하는 러시아의 문화 비평가,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의 작품에 탐독하게 됩니다. 체르니셰프스키의 전기 소설을 완성하게 됩니다.

 

5. 줄거리, 문학 비평서의 완성: 체르딘체프의 작품은 베를린 지역에서 약간의 반응을 얻습니다. 대부분은 작가가 러시아의 사상가,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를 폄훼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콘체예프만 유일하게 자신의 서평에서 책에 대한 호의적 반응을 드러냅니다. 어느 작가는 주인공에게 독일 러시아 작가 협회 위원회에 참여하는 게 어떤가? 하고 권유합니다. 체르딘체프는 이를 거절하지 않으면서, 협회를 둘러싼 내부 갈등을 파악하기 위해 몇 차례 회의에 참석하여 분위기를 탐색합니다.

 

어느 날 시초골레프는 코펜하겐에서 일자리를 제안받고, 아내와 함께 떠나려 합니다. 주인공은 몹시 기뻐합니다. 부부가 떠나게 되면 지나와 둘이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미와 그뤼네발트 숲을 산책하며 콘체예프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참으로 행복할 것 같습니다. 어느 날 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꿈을 꿉니다. 주인공은 알 수 없는 죄의식을 느끼면서, 악몽에서 깨어납니다. 다음 날 아침, 시초골레프는 아내와 함께 코펜하겐으로 떠납니다. 주인공과 지나는 이제 베를린에서 둘이서 함께 지낼 수 있게 됩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두 사람은 행복해하며 운명처럼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