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박물관
개성 시편 (3)
양왕용
조선 500년 개성 향교 모습 그대로
고려 500년의
빛바랜 유물 몇 점 놓고
신라 1000년을 삼킨
완건 기억하라 하더라.
그러나 50년 전
내 십대 후반
섬에서 뭍으로 처음 나온
그 해 늦가을 예술제 기간에
미술 전시회 열린
진주의 초등학교 강당
갑자기 생각나는 까닭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6.25 전쟁으로 소실된 촉석루 재건 공사
아직 준공되지 않고
밤 12시가 되면
하숙집 전기가 나가
억지로 잠들어야 했던 그 시절.
시계가
50년으로 정지되어
전등도 켜지 않은 실내를 나와
마당의 소나무와 저 건너 편의 석탑
바라보고 싶더라.
낡은 단청 대부분 사라지고
점점 삭아지고 있는 처마와
문창살들만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싶더라.
출전: 양왕용 시집, 백두산에서 해운대 바라본다. 문예바다 2014.
.......................
개성에 있는 고려 박물관은 사진으로만 접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로 1시간 달리면 도착하는 지역이지만, 우리는 그곳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시인은 이러한 절망을 "하더라"로 표현합니다. 이것은 독일어의 접속법 제1식의 표현이지요. 실제 현실을 체험할 수 없기 때문에, 이중의 아쉬움이 그런 식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고려 500년의 빛바랜 유물"이 과연 얼마나 생생한 사건과 사고를 떠올리게 할까요? 시인은 과거 역사의 작은 흔적 조차도 접할 수 없습니다. 고려사는 500년가까이 이어졌지만, 우리는 역사적 사건 그리고 유물만을 접할 뿐입니다. 머나먼 과거는 우리의 시각과 인식 과정에서 그저 추상화될 뿐입니다.
인간은 개인사적으로 50년 남짓한 세월만을 기억해낼 뿐입니다. "미술 전시회"의 어느 강당 - 그때는 6.25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절이었습니다. 전쟁의 여파로 진주의 "촉석루"가 절반쯤 붕괴되고, 전기가 자주 끊기던 시절 - 시간은 그저 "50년으로 정지"되어 있습니다. 십대의 소년은 "마당의 소나무" 그리고 "석탑"을 기억합니다.
그곳에는 목조 건물이 있었습니다. "낡은 단청"은 사라지고 처마와 문창살은 바래져 있습니다. 역사 역시 이런 식으로 우리의 뇌리에서 사라질까요? 우리의 기억은 50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갈 수 있지만, 과거 시대는 망각의 그물 속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시간의 앙금은 과거의 자그마한 현실상, 그것도 현실상의 조각만을 남길 뿐입니다.
고려 박물관은 사진에서 보이는 "개성 향교의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을까요? 그곳의 "단청"은 볏겨졌을까요? "처마" 그리고 "문창살"은 어떤 방식으로 복월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고려 박물관이 아니라, "진주의 초등학교" 건물밖에 없습니다. 건물은 "섬에서 뭍으로 나온" 소년의 눈에는 얼마나 새로운 후광으로 비쳤을까요? 우리는 언제 한 번 "고려 박물관"을 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개성에 있는 고려 박물관. 이리로 가보고 싶다.
'19 한국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명시 소개) 서로박 (1): 고향은 "하이마트"가 아니다. 이교상의 시 (0) | 2026.01.27 |
|---|---|
| (명시 소개) "힘이 들어가면 파이야." 이정주의 시 한 편 (2) | 2026.01.11 |
| (명시 소개) 반칠환의 '어떤 채용 통보' (2) | 2026.01.06 |
| (명시 소개) 황지우의 시, '신 벗고 들어가는 그곳' (0) | 2025.12.27 |
| (명시 소개) 천양희의 시 '도마뱀' (0) | 2025.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