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이정주의 시, '시계'

필자 (匹子) 2025. 11. 13. 06:40

시계

이정주

 

시집간 지 몇 년 만에

현수가 온다고 했다

나는 벽시계를 떼내어 세탁기 속에 넣고

괘종시계는 싱크대 서랍 속에 넣었다

현수는 이전보다 빨리 옷을 벗었다

말없이 누워 있던 현수는 라디오를 껐다

그 목소리 싫어

라디오 속의 남자가 사라지고

숨 막히는 고요가 찾아왔다

나는 현수에게 기어갔다

현수는 많이 젖어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새 강물이 되어

저만치 번득거리며 흘러갔다

내가 강에 이르기도 전에

강물은 꼬리를 감추며 멀어져 갔다

목이 말랐다

찬물을 나누어 마시고 우리는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현수는 내 가슴에 귀를 갖다대었다

여기 있었군요

언제 몸속에 시계를 숨겼어요?

현수는 소리죽여 울기 시작했다

 

..............

 

이정주 시집, 아무래도 나는 육식성이다, 천년의 시작 2014.

 

(독후감) 당신의 결단이 중요해요, 현수씨.

 

시간을 의식하는 자는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분들이다. 달력에 X자를 칠하는 군인, 한 달 후의 출소를 기다리는 수인(囚人)들,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영위하는 여성 - 그들의 삶은 고통으로 차단되어 있다. 

 

돈 때문일까, 아니면 사회적 정황 때문일까? 시인은 사랑하는 임을 떠나보내야 한다. 다른 사내와 결혼한 현수가 시인을 찾아온다. 시인은 시계를 감춘다. 당신 없는 삶, 슬프고도, 고통스러우며 외로운 시간을 괜스레 드러내고 싶지 않다.

 

시간은 인간의 갈망을 갉아먹는 수시렁이가 아닌가?

 

"현수는 많이 젖어" 있다가, 시인이 "다가가기 전에 강물처럼 멀어져 간다." "목이 말랐다.", "현수는 소리 죽여 울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멀리 떠나 보내야 하는 서러움 - 그것은 한마디로 죽음 같은 불행, 불행 같은 죽음이다.

 

현수씨, 사랑의 칼자루는 당신이 쥐고 있어요. 몰래 그리고 자주 만나든, 모든 판을 뒤집든 중요한 것은 당신의 결단이겠지요. " 모든 사람은 자신의 행복의 대장장이. Jeder ist seines Glückes Schmied " 그러니 부디  힘 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