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족령
최두석
영월 동강가 제장마을에 옻나무를 심어 가꾸던 이가 있었다. 그는 옻나무에 칼집을 내 상처에 고이는 진액을 채취하였다. 그는 칠장이였고 소중하게 모은 옻액을 걸러 옹배기에 담아두었다. 그런데 장난치며 뛰놀던 누렁이가 옹배기를 엎질러 칠액을 뒤집어썼다. 불같이 화가난 칠장이는 부지깽이로 개를 두들겨 팼다. 졸지에 검둥이가 된 누렁이는 산으로 도망쳤다. 개의 행방이 궁금한 칠장이는 개 발자국을 따라 산에 올랐고 바위 위에 검둥개가 앉아 있었다. 칠장이가 개의 곁에 다가가 주위를 둘러보니 동강의 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동강이 백운산 자락을 휘감아 흐르며 굽이굽이 세워놓은 뼝대가 하늘 아래 절경이었다. 절경을 보며 개는 슬픔을 다스렸고 칠장이는 화를 다스렸다. 이후 칠장이는 개와 함께 이곳에 자주 올랐고 해가 바뀌자 검둥이는 다시 누렁이가 되었다. 칠장이와 누렁이가 나란히 앉아 있곤 했던 자리는 훗날 칠족령이라 부르게 되었고 산 너머 문화마을로 가는 길도 그들이 처음 찾게 되었다.
실린 곳: 최두석 시집, 두루미의 잠, 문학과 지성 2023.

최두석 선생님~
선생님께서 강릉에서 몇 년 교편 생활하신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강원도는 나에게 미지의 땅입니다. 황량하고 웅장한 산, 고독과 가난이 자리하는 곳이지요. 그래도 강원도는 한반도의 심장입니다. 그곳에서 몇 년 살아갈 수 있었던 선생님이 그저 부럽기만 합니다. 불현듯 만해 한용운의 한시 한 구절이 생각이 납니다. 臨事多艱劇 逢人足別離 (일에는 어려움이 많고, 사람 만나면 헤어져야 하지.)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의지대로 특정 지역에 거주할 수 없고, 회자정리라 항상 헤어져야 하지요.
사랑하는 여동생이 그곳에서 살지만, 아직도 영월 동강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시, "칠족령"을 읽으니, 나 자신이 지금까지 옻장이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강원도로 가서 여동생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그미의 한(恨)을 안아주지 못한 내 잘못이 너무 큽니다. 혹여 그미가 검둥개처럼 얼굴이 검게 변해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만나서 여동생은 슬픔을 다스리고, 나는 화를 다스릴 수 있었으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부디 강건하시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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