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25. 문제는 성공리에 이루어진 유토피아의 내용이다: 헤겔의 변증법은 원칙적으로 역사적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작동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항을 빠뜨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변증법의 정지상태에 관한 사항인데, 그것은 다른 무엇과 혼동할 여지를 남기고 있습니다. 이미 언급한 바 있듯이 만약 강물이 일순간 멈춰서 잠시 뒤로 향해 흐르지 않으면, 강에는 어떠한 형체도 출현하지 않을 것입니다. 꾸불꾸불 우회하는 강줄기가 있듯이, 하구로 향해 직진하는 흐름도 존재합니다. 헤겔이 도출해낸 “과거 속의 본질”이라는 결론은 자동으로 이어지는 진행 과정에 대한 정당한 반발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릅니다.
예컨대 우리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드러나는) “사악한 무한성”에 대해 완강하게 반발하곤 합니다. 상승과 하강을 무시하고, 현실의 실질적 성취를 더 나은 무엇에 대한 배반으로 치부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상기한 내용과 관련하여 헤겔은 완전성의 공식을 역사적 변화와 과정적 운동과는 차원이 다른 무엇으로 이해합니다. 실체의 내용이 주어진 무엇 내지는 성공리에 이루어진 무엇으로 주어져 있다면, 그것은 주체와 마찬가지로 역동적 유토피아가 아니라, 가장자리가 잘려나간 정태적인 무엇이라는 것입니다.
26. 재기억 versus 유토피아의 최종성: 그렇지만 인간 삶의 목표 설정은 헤겔에 의하면 어떤 경우에도 역사를 중단시키거나, 과정을 정지상태로 변화시키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적어도 그것이 하나의 올바른 방향을 설정한 채 그리로 작동되고 있다면 말입니다. 한마디로 헤겔은 유토피아의 내용을 실현하는 궁극적 목표에 대해 커다란 가치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에른스트 블로흐는 이를 비판하면서, 태초에 완성된 알파의 진리가 아니라, 오메가의 극단적 최종성으로서의 진리에 더 큰 비중을 둡니다. (Bloch, SO: 487).
이러한 유형의 목표는 시작부터 정태적으로 머무는 재기억과는 달리, 근본적으로 과정의 불빛 위에 자리하는 하나의 덮개와 같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항을 미리 밝히고, 그 속에서 서로 중심을 잡는 극단 내지는 최종성을 가리킵니다. 물론 우리는 도달 내지는 도착의 개념을 통해서 주관적 직관 그리고 객관적 경향성이 끝나는 것을 얼마든지 함축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목표의 최종성은 주어진 임무가 단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취 내지는 영속적인 실현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블로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본질은 결코 과거의 본성이 아니다. 세계의 본질 자체는 전선 가까이 위치한다.” (Bloch, PH: 18).
27. 과정은 마치 변증법적으로 작용하는 삶의 중간 지점과 같다. 헤겔은 자신의 논리학 강의에서 과정을 “내용 자체 속에 내재하는 영혼”이라고 명명한 바 있습니다. (Hegel, Werke III: 7). 과정은 인류의 역사에서 변증법으로 작용하는 도정, 즉 중간 지점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과정의 이러한 움직임은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마치 예술을 위한 예술과 같은, 같은 방식으로 영원히 근접하려고 노력하는 행위, 당위성 그리고 요청 등으로 작동되는 운동은 결코 아닙니다. 블로흐는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내용을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즉 과정은 오히려 재기억의 궤도에서 벗어난 무엇이므로, 아무런 의미 없는 무(無)의 무한한 운동과는 완전히 다른 무엇이라고 말입니다.
완전성의 “아직 아닌 존재”는 블로흐에 의하면 존재 속의 불-충분함 내지는 불안 등을 서서히 작동시킵니다. 사실 지금까지의 과거 내용은 그저 부분품에 불과하며, 더 나은 삶을 위한 사고로서의 유토피아만을 추구해 왔습니다. 완전성의 참된 모습은 블로흐에 의하면 이미 과정 내부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블로흐가 파악하는 목표의 두 가지 특징을 규정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목표는 방향을 틀어서 시원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그의 사고는 플라톤과 헤겔과 차별성을 드러냅니다. 둘째로 목표는 하나의 마지막으로 종결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목표가 성취되는 순간 다른 목표가 인간의 사고를 장악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블로흐가 말한 “변화 속의 존재Sein im Werden”의 함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28. 과거지향적 반동주의 versus 미래지향적 진보의 사고: 이미 언급했듯이, 참된 진리는 플라톤에 의하면 과거 원형으로서의 이데아인데, 인간은 오로지 이를 기억해내면 족하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태양 아래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Nihil sub sole novi est.”라는 과거지향적 반동주의 내지는 원전을 중시하는 보수주의의 사고가 철학의 역사에서 활개를 치게 되었습니다. 헤겔 역시 시원을 그 자체 순수 존재로서 매우 중요하게 여겼지만 (이광모: 67), 그렇다고 해서 세계 변화의 동인으로서의 정신이 처음부터 하나의 절대적 철칙으로 과거 속에 자리한다고 믿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헤겔의 두 가지 비판적 사고가 은연중에 개입되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정신은 세계 변화에 관여하면서 연속적 발전하고, 드물게 퇴보한다는 변증법의 사고입니다. 이것은 헤겔이 신플라톤주의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도출해낸 확신을 가리킵니다. 다른 하나는 므네모시네 여신에게서 나타나듯이 기억이 세계의 빛을 밝히고 인류의 삶을 개선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전-의식적으로 망각이라는 내면화를 부추긴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헤겔 역시 “기억 Er-Innerung”이 단어의 뜻 그대로 그리고 기능상으로 모든 것을 내면화하는 소극적 심리적 지각 행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분명히 지적한 바 있습니다.
29. (요약 2) 지속적인 발전의 운동 versus 목표로서의 휴지(休止): 헤겔은 명시적으로 재기억을 비판하지만, 변증법의 마지막 목표에 관한 서술에서 태초의 시간 즉 “시원”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마지막 목표는 마치 뱀이 똬리를 틀 듯이 시작의 출발점과 묘하게 접점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헤겔의 눈에는 미래 내지는 세계 변화를 추동하는 과정이 예컨대 마치 “왕겨”와 같이 바람에 날려 사라지는 일시적이고 덧없는 무엇으로 비쳤습니다. 헤겔은 “아직 아님”이라는 미래로 향하는 운동성 대신에, 지적 움직임으로의 정신의 휴지(休止)를 궁극적 목표로 설정하였습니다.
헤겔에게 중요한 것은 진퇴양난의 과정이 아니라, 변증법적 지양의 결과인 셈입니다. 따라서 그는 최종 목표로서의 오메가가 아니라 천지창조의 시작이라는 알파에 더 큰 비중을 두었습니다. 헤겔이 미래, “새로운 무엇 Novum”, 전선, “최종성 Ultimatum” 등을 도외시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모든 철학적 사유에 필요한 용어들을 오로지 논리학의 폐쇄적인 시스템 속에 가두려고 애썼기 때문입니다. (블로흐, 자연법: 234). 자신의 시스템 속에서 다루기 힘든 사항들은 지엽적 특수성이라는 특징으로 인해 배제되고 말았습니다.
30. (요약 3) 회귀로 향하는 순환 versus 미래로 향하는 연속적 걸음: 지금까지 철학자의 시각은 과거의 사실을 고찰했습니다. 우리는 과거 시대 속에 감추어진 본질 요소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기억이 부분적으로 요청되는 까닭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물론 미래는 아무래도 갈망 내지는 불확실한 특징을 지니고 있으므로, 엄밀한 학문의 영역에서 다루기 까다로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역사는 추론해낸 미래입니다. 왜냐면 그것은 과거의 일회성으로 차단된 무엇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생동하는 모든 현재와 미래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Mayer: 119f).
블로흐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가능성을 추구하는 존재임을 전제로 하여, 인간의 갈망, 유토피아 그리고 새로운 무엇 등의 사고를 점화하려고 했습니다. 이제 학문적 행위는 무작정 과거라는 지옥의 슬픈 강 아케론을 역으로 추적하기만 해서는 곤란할 것입니다. 미래가 캄캄하다면, 오히려 과거 속의 미래를 선취하려고 노력하는 일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블로흐의 미래지향적 사유는 차폐성이 아니라, “아직 아님”이라는 사고로 계승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어진 세계와의 관련성 속에서 아직 아닌 존재, 새로운 무엇. 마르크스가 암시한 “자유의 나라Reich der Freiheit” 등의 놀라운 기능을 밝혀내야 할 것입니다. 왜냐면 그것은 인류세의 참담한 정황 속에서도 인류의 더 나은 삶을 위한 동력으로 작용할 테니까 말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횔덜린은 시 「파트모스」에서 다음과 같이 토로하였습니다. “위험이 있는 곳에는 구원 또한 자란다. Wo Gefahr ist, wächst das Rettende a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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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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