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박설호: (4) 블로흐와 헤겔. 재기억 비판

필자 (匹子) 2025. 8. 29. 19:14

(앞에서 계속됩니다.)

 

19.“태초와 시작이 세계의 매듭이다.”: 재-기억의 사고는 헤겔의 철학에서 엿보이는, 모든 출발로서 이해되는 “근거”의 사상입니다. 이러한 근거 내지는 토대를 밝혀주는 것은 심층부에서 되돌아오는 시각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사람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지금까지 “초월적인 무엇”으로 명명한 바 있는 사고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근원적 시각의 근거를 도출해내는 사고는 독일이 신비주의자, 야콥 뵈메Jakob Böhme에게서 처음으로 논의된 바 있습니다. 모든 “근원 Quelle”은 뵈메에 의하면 “발효하는 존재”의 “고통 Qual” 속에서 “질적 특성Qualität”을 배출합니다. (블로흐, 중세 르네상스: 348).

 

그런데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는 현재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아가 그것은 계속 머무는 현재성에 관한 돌발적 기억 속에서 보상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헤겔은 자신의 『논리학』에서 굳이 재-기억에 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면서, 어떠한 정태적 명상적 입장을 도입하지 않은 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시작하는 무엇의 연속적인 걸음을 오로지 하나의 이어지는 특징으로 고찰할 수 있습니다. 시작은 이어지는 모든 무엇의 기초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사라지지 않게 됩니다. 철학의 시작은 모든 이어지는 발전 속에서 현재로 보존된 토대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이어지는 특징을 전적으로 내재한 채 머무는 무엇입니다.” (Hegel Werke III: 65).

 

여기서 헤겔은 과정이라는 격동하는 현재성의 토대를 완전히 물리치는 것 같습니다. 그는 마치 “시초 Archē”가 완전히 시작이나 출발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처럼 언급합니다. 시원(始原)은 헤겔에 의하면 언제나 지금 그리고 여기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해결되지 않은 하나의 수수께끼로서 가장 내재적인 내재성 근처에 자리하는 세계의 매듭, 바로 그것입니다. 시원은 헤겔에게는 처음부터 하나의 목표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유헌식: 103).

 

20. 논리학의 “범주”가 폐쇄성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원”은 헤겔의 경우 가장 빈약한 특징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즉자존재로 가득 채워진 무엇입니다. 비록 그가 “태초”를 하데스 내지는 그림자의 왕국 내지는 완전한 축제 행렬로서 발전되지 못한 범주로 이해하지만 말입니다. 헤겔의 논리학의 카테고리는 최소한 프로그램의 관점을 고려하자면 그의 종교 철학에서 그리고 이후의 역사 철학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범주”라는 형식적 특성이 폭넓은 범위에서 내용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작의 사고는 엄밀히 말하자면 존재의 근원에서 해결되지 못한 무엇을 모조리 포괄하지는 못합니다.

 

헤겔은 처음부터 태초 내지는 시작에 너무 함몰되어 있어서, 어느 순간 자신의 논의가 존재론의 근원으로부터 동떨어져 있음을 간파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현상의 토대를 형성하는 것이 한마디로 근원 속에 서성거리는 해결되지 못한 무엇이라고 황급히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로써 시원이라는 알파는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아직 발전되지 못한 무엇 내지는 현시되지 못한 무엇을 파괴하려고 번개를 내리친 셈입니다. 이로써 모든 것은 시작의 방향으로 환원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환원은 모든 것을 새로이 시작하는 근처 움직임의 회귀를 뜻합니다. 헤겔의 논리는 진보의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무엇을 발견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동인(動因)의 문제점으로 되돌아가기를 촉구할 뿐입니다. 이로써 세계의 정신은 일시적으로 새롭게 출현하지 못하고, “과거 속의 본질Ge-Wesenheit”로 향해 나아가지 못합니다. 이 경우 “완결된 과거”는 과거 시간에 해당합니다. 헤겔의 변증법적 운동은 비유적으로 말해서 고대 원형 경기장과 같은 폐쇄적인 무대에서 영원히 원을 그리며 순환하고 있습니다.

 

21. 엥겔스의 헤겔 비판: 헤겔 사상의 시스템이 드러내는 폐쇄적인 특징은 엥겔스에 의해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헤겔 철학의 기본적 두 가지 특징을 지적하며, 이를 서로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하나는 역사 생성과 변화 과정을 서술하는 변증법이라는 방법론이며, 다른 하나는 정신이 탐험하는 제반 사항에 대한 논리학적 범주로서의 시스템입니다. 전자가 진보적 마르크스주의자가 수용해야 하는 헤겔 철학의 긍정적 유산이라면, 후자는 비판해야 마땅한 과거 시민 사회의 구태의연한 관념 철학의 잔재라는 것입니다. (Engels: 417).

 

가령 엥겔스는 헤겔 사상의 모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인간의 역사는 끝없이 이어지는 발전인데, 헤겔의 정신은 끝맺음을 추구하면서 정지로 나아가는 부동 역학의 시스템에서 유동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자연과 역사에 대한 무한한 인식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스템을 고려하는 자는 수많은 시간적 여백을 학문적으로 증명해내어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태적인 논리학적 시스템은 엄청난 양과 질을 담아야 하므로, 엥겔스에 의하면 정신의 순수 운동으로서의 변증법을 모조리 포괄할 수 없다고 합니다. (Engels: 419). 언제나 새롭게 빚어지는 새 술은 일정한 틀과 규격을 갖추고 있는 헌 부대에 모조리 담을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22. 엥겔스 비판에 대한 블로흐의 반론: 그런데 블로흐는 엥겔스가 방법론과 시스템을 서로 구분하는 태도를 비판합니다. 헤겔에게서 변증법의 방법론과 순수 논리의 시스템은 블로흐에 의하면 서로 분할될 수 없습니다. 왜냐면 그것들은 동시적이며 상호 내재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Bloch, PA: 462). 정신의 운동은 순수존재로서 끝없이 이행되는데,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바로 논리적 범주의 시스템입니다. 변증법적 종합의 오메가는 항상 최고 단계의 알파로 복귀하는데, 이 과정에서 방법론과 시스템이 서로 만난다고 합니다. 이러한 만남은 -고대의 극작품에서 하나의 전형으로 나타나는- “상대방의 존재를 재확인하는 상태 anagnorisis”라고 합니다. 변증법은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정신의 자기 운동의 과정이며, 전체적 과정의 서술을 담당하는 것이 하나의 틀로서의 시스템입니다. (김진: 88).

 

이로써 변증법의 내용과 형식은 상호 유기적 영향 속에서 작동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점이야말로 헤겔 철학에 감추어져 있는 방법론과 시스템 사이의 모순이라고 합니다. (Bloch, PA: 469). 이로써 우리가 행해야 할 사항은 블로흐에 의하면 방법론과 시스템 사이의 구분을 강조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최초의 단계로 되돌아가는 헤겔의 목표 설정을 비판하고 수정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변증법적 종합의 오메가가 시원의 알파로 되돌아가게 하는 헤겔의 폐쇄적 관점이라고 합니다. 블로흐의 이러한 비판은 미래, 새로운 무엇 그리고 개방성을 되찾으려는 사상적 노력과 직결됩니다.

 

23. 과거 속의 본질은 미래의 사항으로 남아 있다. 헤겔이 가치를 중시하면서 내세운 “제반 이념”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가 품던 일원성의 구체적 모습을 전혀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블로흐는 헤겔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이념들은 최상의 경우 아직 아닌 존재 속에서 객관적 현실적 가능성으로 뿌리를 내리며, 기껏해야 경험적으로 앞으로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사고 내지는 “깨닫는 사고Eingedenken” 속에서 일시적으로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Bloch, SO: 486). 이렇듯 완전성은 전체성 자체이고, 협동적 앙상블의 의미에서 유토피아의 구체적 내용을 담고 있으며, 전체적 의미에서 “본질 그 자체”를 가리킵니다. 이 점이야말로 재-기억이 총괄적 사항 속에서 최종적으로 운행하려고 하는 궤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탈레스 이후로 많은 철학자는 존재의 본질을 구명하려고 시도했는데, 헤겔은 “본질Wesenheit”을 오로지 “과거 속의 본질Ge-Wesenheit”로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이로써 활용되는 것은 명상주의라는 “부동역학Statik”이었습니다. 헤겔은 이러한 차폐성의 척도를 통해서 더욱 풍요로운 지식을 찾아낼 뿐 아니라, 역사적 층위 속의 어떤 대상을 가치를 향상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역사적 대상은 이전에 주어진 시간 간격을 통해서, 지금 그리고 여기로부터 멀어짐으로써 명상적으로 수월하게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24. 미래는 헤겔에게는 무가치한 대상이었다: 재-기억은 과거에 존재했던 본질을 집중적으로 밝히려고 애를 씁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현재의 문제점을 근시안적으로 고찰하면서 구체적 문제점을 간파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영원성에 근접해 있는 것은 헤겔에 의하면 오로지 정적 속에 자리하고 있는 과거일 뿐, “아직 아닌 존재das Noch-Nicht-Sein”라는 시간적 용어로서의 미래가 아니라고 합니다. 변증법적 과정의 빛은 헤겔의 필치에 의하면 모든 장애물을 넘어서고 있는데, 오로지 재-기억을 통해서 얻어낸 과거의 수확물만을 찬란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미래는 실제로는 거의 무의미한 “주관적 생각”에 해당하기 때문에 전혀 언급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직 아닌 존재, 미래의 사항은 헤겔의 논리학에서 “세계 이전의 로고스Logos ante mundum”로 채택할 수 없는 부수적 사항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절대적 지식”은 최종적으로 영원히 반복되는 지식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정신 속에서 어떠한 중단도 없이 갈등과 분쟁을 해결해나가고 끝내 해결하는 지식을 지칭합니다. 문제는 헤겔의 순환적 차폐성에 있습니다. 헤겔은 세상사에 관여하기 전에 이미 과거를 더듬어서 하나의 완결된 진리를 기억해내고 있습니다. 이로써 그는 폭동과 혁명이라는 변화무쌍한 과정을 어처구니없이 이른바 전체성이라는 고정된 역학 구조로 둔갑시키고 있습니다. (블로흐, 자연법: 233). 헤겔의 시스템 속의 근본적 모순은 그가 너무나 논리학에 근거하는 시스템에 집착함으로써, 현실의 제반 사항을 개방적 자세로 다루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