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9. 성과 질투: 서양에서 여자가 이혼했을 경우, 사람들은 이를 측은하게 여깁니다. 그동안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으리라고 여기면서. 그러나 한국에서 남녀가 이혼했을 경우, 사회는 여전히 그들에게 손가락질합니다. 분명히 성격상의 혹은 신체상의 하자가 있다고 믿습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 이중적으로 비난을 당합니다. 그런데 인간 동물은 물건이 아니므로, 파트너를 냉장고처럼 버릴 수도, 함부로 사들일 수는 없지요. 서양에서 남녀가 서로 사랑하게 되면, 그들은 으레 상대방에게 과거 사랑의 상처를 고백하곤 합니다. 대부분 상대방은 이를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자신이 나서서 돕겠다고 임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남녀가 서로 사랑하게 되면, 그들은 과거의 사랑에 대해 무조건 침묵을 지켜야 합니다. 만약 비밀이 알려지는 날이면, 상대방을 심한 질투심에 사로잡히게 하여, 급기야는 애정 관계가 파탄 나기 때문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수많은 여자와 놀아난 카사노바를 불행한 영혼으로 규정합니다. 자신에게 맞는 짝을 찾지 못했으므로 오래 방황했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카사노바를 한마디로 패륜의 난봉꾼으로 매도하지요. 이러한 태도 속에는 카사노바가 누린 삶에 대한 질투심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강한 질투심은 그 자체 근엄한 자들의 신경질적인 히스테리의 반응입니다.
10. 누가 이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가? 다음과 같은 유형의 사람을 생각해 보세요. 성격 차이로 이혼한 뒤 우울증에 시달리는 여성, 동두천에서 미군에게 매 맞은 양공주, 아이를 못 낳는다고 소박맞은 여자. 부정한 여자라는 이유로 남편으로부터 쫓겨난 호스티스. 트랜스젠더, 동성애를 즐기는 가죽 족, 부치와 팸,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돌아온 뒤 주위 사람들과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은 할머니. 한마디로 이들은 가부장적 배비장의 사회로부터 엄청나게 피해당하는 전형적인 인물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성들의 피해 및 억압의 사례를 접하고 이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사회가 바람직하고 성숙한 면모를 갖추려면, 바로 폭력의 피해자들이 먼저 사람답게 대접받아야 합니다. 피땀 어린 세금은 데모 진압 자금, 무기 수입 등으로 남용되지 말고, 바로 이러한 불행한 사람들을 위하여 지출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누구를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가면을 쓰고 있는 몇몇 정치가들인가요?, 세금을 꼬박꼬박 잘 내는 체제 순응적인 소시민들인가요?
11. 유니섹스의 시대: 현모양처의 상이 여전히 하나의 미덕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현모양처는 조선 시대의 삶에서 언급되던 덕목이므로, 변화된 사회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다른 한편 남성 중심주의적 생활은 남자들에게 별반 이롭지도 않습니다. 한국의 보수적 가정에서 여성이 할 일이라고는 극히 제한되어 있지요. 그러니 남성에게는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입니다. 40대 한국 남성의 사망률이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요? 세계화란 경제적 발전만을 위한 표어는 아닙니다. 세계화는 무엇보다도 평등 호혜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세계화의 추세에 발맞추려면, 한국 사회에 온존해 있는 가부장의 의식구조는 수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남성이 어느 정도 여성화되고, 여성이 어느 정도 남성화되는 게 바람직합니다. 여성들이 지적으로 열등하게 느끼는 까닭은 프로이트에 의하면 여성 특유의 자기 제어 의식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여성들이 자기 제어 의식을 떨칠 수 있도록 제도와 관습을 변화시키는 일이지요. 멀지 않아 여성의 창의성이 빛을 발하는 사회 구조가 도래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정보 통신 시스템이 도입되면,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은 (전쟁놀음과 육체노동을 장악하는) 남성들의 우람한 근육이 아니라, 여성들의 창의성과 순발력 그리고 유연성일 것입니다.
12. 입학 문화: 흔히 말하기를 자동차 운전에는 연습이 없다고 합니다. 운전자가 한번 사고를 당하게 되면, 손해는 물론이요, 사고로 인해 엄청난 심리적 후유증에 시달리곤 하니까요. 아마도 대부분 부모는 자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것입니다. 사랑에는 연습이 없으니, 잘 알아서 처신해. 한번 사고 내면 끝나는 인생이고, 한번 실패하면 돌이킬 수 없는 순결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실패를 통해 무언가 배우는 동물이 인간이 아니던가요? 한번 입학하면, 아무런 어려움 없이 졸업하게 하는 대학 생활, 한번 혼인하면 아무런 변화 없는 부부 생활. 어째서 한국 사람들은 입학 문화의 격언들을 애호하는 것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작가의 주장대로 일부일처제의 폐해를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계약으로서의 혼인 생활을 인정해야 할지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행적이 아닙니다. 유럽 사람들은 초등학교 다닐 때 일등 한 것을 자랑으로 여기지 않으며, 수석 합격을 신문에 대서특필하지 않습니다. 서양에서 학벌이 중시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만약 누군가 과거에 얼마나 사랑에 실패하여 잘못 살았는가? 하고 자책한다면, 대부분의 유럽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올바르게 살아가라고, 그게 진정한 갱생이고 삶의 부활이라고.
13. 매춘은 필요악인가? 신문의 앙케트에 의하면 한국 여대생의 40퍼센트 이상이 매춘을 “필요악”이라고 믿는다고 합니다. 문제는 자신의 순결을 보호받는 수단으로 매춘을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여대생들은 아마도 군대에서 휴가 나온 남자친구가 홍등가에 들락거리는 것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앙케트에 실린 여대생들의 견해는 세상이 망하더라도 가족의 안일만을 도모하려는 소시민적 사고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것은 이렇듯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고 있어요. 더군다나 매춘만이 성폭력을 근절할 수 있는 대책은 아닙니다. 가장 자유로운 나라 스웨덴에서 매춘이 근절되지 않는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성적 만족을 누리는 남녀는 대체로 성폭력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근본적인 대책은 순결 교육 및 순결 의식을 강요하는 근엄한 사회적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일이지요. 중요한 것은 몸의 순결 외에도, 마음과 사고방식의 순결일 수 있습니다. 결혼할 때 여성을 마치 흠집 난 사과를 바라보는 풍토는 사라져야 합니다. 더욱이 금욕은 심리적인 병에 시달리게 하지 않는가요? 젊은 남녀들이 심리적으로 병들지 않게 하려면, 사회는 그들이 누군가를 자발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여건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14. 부모들이여, 장성한 자식들을 내버려 두라. 딸을 곱게 길러 좋은 데 시집보내려는 마음이 어디 나쁜가요? 그러나 부모의 과잉된 사랑은 자식을 억압할 뿐 아니라, 자칫하면 자식의 자기 독립성을 망쳐놓습니다. 가령 고부간의 갈등은 한국 사회에서만 드러나는 병리 현상입니다. 그것은 당대에 이루지 못한 사랑을 후대에 보상받기 위한 욕망 때문에 비롯한 것이 아닐까요? 한국의 딸들은 부모들의 과잉된 욕망으로 인해 모두 신데렐라로 자라나고 있습니다. 언젠가 예쁜 신발을 갖다 줄 왕자님을 꿈꾸며 보내는 신데렐라들은 그저 온실 속의 유약한 화초입니다. 그러다 중매 결혼한 뒤 결혼생활의 파탄을 겪는 남녀들은 부지기수지요.
한국의 딸들은 모든 조건을 갖춘 남자를 수동적으로 고르지 말고, 오직 건강하고 선량한 젊은 남성을 택해 능동적으로 그를 키우는 것은 어떨까요? 이는 한국의 아들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지요. 신데렐라의 수동성보다는 평강 공주의 능동성을 본받는 것은 어떨까요? 바보 온달을 영웅으로 만들어낸 역동적인 여성이 정태적 아름다움의 몸매를 지닌 미스 코리아보다 더 아름답지 않을까요? 온달과 결혼하기 위해서는 당신은 선량한 부모를 설득해야 합니다. 도저히 그들을 설득할 수 없을 때에는 당신은 노라처럼 과감하게 “인형의 집”을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15. 가정이란 무엇인가? 서양에서 이혼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신혼부부조차도 사람들은 행여나 파트너를 잃게 될까, 상대방을 존중하고, 자신의 매력을 끊임없이 가꿉니다. 우리나라의 부부들은 상대방을 아무렇게나 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편은 때로는 아내를 종처럼 부려먹고, 경제적 걱정을 남편에게 미룬 아내는 점점 풍만해지는 엉덩이에 개의치 않습니다. 서양 사람들의 베개에는 “그의 것” 그리고 “그녀의 것”이 새겨져 있고, 전기세를 따로 부담하는 부부도 존재합니다. 서양의 부부는 소유 관념을 철저히 지키는 데 비해, 한국의 부부는 이른바 절대로 끊어지지 않을 혼인의 끈을 굳게 믿습니다.
이렇듯 서양의 결혼생활에는 인간미라고는 별로 없지요. “냉정한 타산주의”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습니다. 그래도 청소년들은 극심한 말다툼과 폭력이 자행되는 가정보다, 편부 혹은 편모의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사는 것이 더 낫습니다. 흔히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천륜이라고 하지만, 무작정 “효”를 들먹일 수는 없습니다. “효”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보다도 어떤 부모, 어떤 자식과 살고 있는가? 하는 정황을 파악하는 것이 가정문제 그리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다.
16. 당신은 왜 몸을 파는가? H. 일보의 앙케트 조사에 의하면 성노동자들 가운데 약 80 퍼센트가 “스스로 원하기 때문”에 윤락을 선택했다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답변 가운데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거짓된 대답이 섞여 있을 것 같습니다. 무릇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때로는 공격적으로 처신하며, 때로는 자학하지 않는가요? 그렇기에 일부 성 노동자들이 자신의 속마음을 기자에게 그대로 털어놓았을 리 만무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남성이든 여성이든 간에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과 살을 섞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매매춘 행위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성 노동자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며, 변화의 기회마저 꺾어버리는 근엄한 사회 자체에 있습니다. 과거에 몸을 팔았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그미들이 주위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당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불행한 여자들을 돈 주고 사랑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바로 남자들이 아닌가요? 물론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 등장하는 소냐와 같은 고결한 영혼도 있고, 매매춘을 하나의 직업으로 여기며 무덤덤하게 생활하는 분들도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17. 다시 매춘에 관하여: 어쩌면 우리는 매춘에 관하여 일방적인 시각만 지니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매매춘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인정해야 할지 모릅니다. 매춘도 직업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자의에 의해서 이러한 업종에 뛰어든 여성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인신매매와 매매춘을 같은 맥락 속에 집어넣고 이를 백안시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의에 의해서 매매춘을 선택하여, 그것을 하나의 직업으로 여기는 여성들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성 노동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은 “직종을 바꾸세요.”라는 발언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고객은 성 노동자를 인형 내지는 노예로 취급하는 “진상”이라고 합니다.
서양의 경우 매매춘을 용인하고, 국가에서 관리하는 나라가 많은 데 비해서, 남한에서는 무조건 근절만을 최상의 대책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결혼식을 올린 부부만이 합법적이고 그 외의 다른 모든 성의 패턴이 위법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의 사고는 성 정치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갇혀 있는 셈입니다. 만약 누군가 모든 유형의 성의 행태, 이를테면 동성연애, 이성 연애, 변태성욕, 페티시즘 등의 유형을 백안시하거나 부정한다면, 이는 강제적 성 윤리에 의해 차단된 편견 내지는 선입견일지 모릅니다. 성의 욕구는 자의에 의한 것이라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2a 나의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서로박: (1) 아파트 유감 (0) | 2025.10.25 |
|---|---|
| 박설호: (3) 한국 사회와 성 (0) | 2025.08.23 |
| 박설호: (1) 한국 사회와 성 (0) | 2025.08.17 |
| 박설호의 장편(掌編) 소설: 땅 위에 그려진 일 (一) (0) | 2025.07.01 |
| 십년의 유럽 생활 (3) (0) | 2025.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