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에 간행된 필자의 저서, "떠난 꿈, 남은 글" 서문을 올립니다. 부족한 게 많지만, 그 자체 흔적입니다. 많은 참고 부닥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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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에게 펜은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는 도구이나,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장검입니다.” (Georg Forster) -
1.
고인 물은 으레 썩게 마련이다. 이는 작게는 나 자신에게, 크게는 어떤 특정한 문화 전체에 해당하는 말이다. 일단 거창한 것부터 먼저 언급할까 한다. 원래 문화란 외부적으로 이질적 문화와 뒤섞이지 않거나, 내부적으로 생동하지 않을 때 반드시 정체되어 썩어버린다. 학문이나 문화는 비유적으로 말해 -동일한 우량종자의 씨 내림과는 달리- 가급적이면 잡 교배를 통해서 발전, 수정 그리고 보완된다. (인맥, 학맥 등을 따지는, 이른바 자화자찬 식의 섹트주의 내지는 학문적 근친상간 행위야말로 문화 발전에 대한 악재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함량 미달의 독자적 제품을 어설프게 짜 맞춘 뒤에, 국산품 애용을 강요하지 말고, 우선 학문과 문화의 기본적 토대, 즉 보다 심도 있는 토양부터 정착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제반 문화의 교류, 이질 문화에 대한 파악과 이해, 문화와 문화 사이에 온존한 차이점의 비교 분석 작업 등이 먼저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다른 문화를 접할 때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좋은 것을 받아들이고, 오래된 나쁜 것을 토해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새로운 나쁜 것을 때로는 거부 내지는 비판해야 하고, 오래된 좋은 것을 잃지 않으려고 애써야 하지 않겠는가? 이는 추상적이며, 실천하기 어려우나, 결코 그릇된 말이 아니다.
2.
우리는 문화의 수용과 관련하여 한국이 어떠한 과정을 겪었는가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는 옛날에 대륙으로부터 신석기, 청동기 그리고 철기 문화를 동시에 받아들였다. 그런데 상기한 문화를 유사한 (혹은 같은) 시기에 수용했다는 점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이 치명적인 잘못일 것이다. 이로써 신석기 그리고 청동기의 문화는 우리나라에서 토착화되지 못했고, 결국 마치 수입 물품처럼 쓰이다가 폐기처분되고 말았다. 오래 남은 것은 예술적으로 조야한, 그러나 실용적으로 훌륭히 기능하는 철기 문화뿐이었다. 이러한 수용은 (내용은 다르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 20세기의 경제사의 영역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초기) 자본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신식민주의적 독점 자본주의 등은 한꺼번에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다.
그런데 보다 근본적인 취약점은 여러 가지 문화의 동시적 수입에 도사리고 있었다. 신식민주의적 독점 자본주의의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것으로 인하여 초기 자본주의적 혹은 사회주의적 생산 양식은 실제 삶 속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도 못했으며, 적절히 체화 (體化)되지도 못했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반공 이데올로기의 오랜 횡포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상기한 생산 양식 속에 제각기 도사리고 있는 (최소한의) 부분적 장점마저 활용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가령 우리나라는 사회 보장 제도와 여러 가지 유형의 노동조합 운동이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채 그저 초보 단계에 머물고 있다가, 현재의 심각한 경제적 위기를 맞게 되었다.
3.
여러 외국 문화들이 우리나라에 한결같이 동시 다발적으로 그리고 일방통행 식으로 전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지금까지 한 번도 세계사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한인들에게 비참하고 참혹하게 들릴지 모르나, 엄연한 사실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자신이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역사의 주체”라고 배워 왔다. 그러나 이는 거짓임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설령 사실이라 손치더라도 그것은 우물 안 개구리의 시각이리라.)
그 동안 폐쇄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정치적으로는 유교주의, 경제적으로는 신식민주의적 독점 자본주의, 사회적으로는 가부장적 금욕주의, 문화적으로는 씨족 이기주의 등이 창궐하게 되었다. 돈과 권력은 주로 살찐 돼지와 이기주의자에 의해 장악되고, 착하고 현명한 사람은 대체로 사회의 밑바닥에서 그리고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그러나 이는 바뀔 수 있다. 역사의 소용돌이는 모름지기 활동 무대를 이전시키는 법이다. 한국이 문화적으로 주변 내지 변방의 위치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말해 장차 정반대로 기능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외부의 제반 정치적 문화적 이론을 액면 그대로 모방하지 않도록 작용할 뿐 아니라, 새로운 심도 있는 이론을 역으로 창출하도록 자극하고 있다.
4.
필자가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동독 문학의 수용 역시 상기한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동구와 동독의 문학에 대한 관심사는 남한에서 뒤늦게, 80년도부터 솟기 시작했다. 물론 80년대 초부터 사회주의 문예 이론이 집중적으로 소개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은 한국 노동 운동과의 접목 속에서만 진척되었을 뿐 아니라, 이론적 영역에 국한되어 있었다. 실제 동구의 현실이나 동독 사람들의 삶을 반영한 문학 작품들은 -북한 문학과 마찬가지로- 그다지 활발하게 소개되지 못했던 것이다. 사회주의적 이상과 역사적으로 때묻은 현실 사이에는 엄연히 이질적 차원이 존재하는 법이다. 그럼에도 연구자들은 체제 비판적 차원과 사상적 입장의 차원 사이에는 “빈 공간”이 형성되어 있음을 용인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동구 문학에 대한 관심이 우리나라에서 고조될 무렵, 구서독은 125억 달러를 채권업자인 소련에게 지불하면서, 구동독을 사들였다. 말하자면 동독 문학과 동구의 문화적 발전 과정이 채 파악되기도 전에, 역사적 사건은 벌써 우리의 의식 앞서서 진행된 셈이다. 원래 의식이 행위보다 빠르지만, 의식은 이 경우 행위를 따르지 못했던 것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캄캄한 밤에 비상하는 것과는 달리, 뒤늦게 수탉이 목 놓아 울었다고나 할까. 동독 문학의 수준이 북한 문학의 그것을 앞지르고, 몇 가지 독자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사회주의, 동독 문화 정책 그리고 동구의 문학 등의 테마는 90년대에 이르러 유감스럽게도 관심 밖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5.
대신에 한국 문화 시장을 주름잡게 된 것들은 이른바 프랑스 구조주의를 바탕으로 한 일련의 이론들, 명사적 요소론에 입각한 정태주의의 사고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등으로 아름답게 포장한 자본주의의 껍질 문화 등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은 학문과 문화의 영역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우량 문화가 자생할 힘을 잃게 된 까닭은 한마디로 부실기업 식의 거짓된 문화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상기한 사상과 문화에서 부분적으로 긍정적 요소를 찾아내어, 이를 강조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입장들 역시 주어진 현실과 관련하여 조금씩 정당성을 지니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미국식 자본주의의 껍질 문화는 근본적으로 소비 지향적 특성을 은폐시키지는 못한다.) 거짓된 껍질 문화들은 이번에도 동시 다발적으로 동양의 작은 국가들을 공략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창조 대신에 모방만을, 생산 대신에 소비만을, 비판 대신에 찬양만을 자유 대신에 굴종만을 요구하지 않는가? 이로써 안타깝게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은 이를테면 인류의 역사 이래로 이어져 온 평등사상이고, 유토피아의 사고이며, 굶주림과 생명 등의 문제와 관련된 진지한 문화적 논의 등일 것이다. 그럼에도 “위험이 도사린 곳에 구원은 자라나”는 법이다 (횔덜린). 다시 말해 위기는 우리에게 전환의 여지를 남겨주기도 한다. 다시 말해 수직 구조로 개인의 삶을 억압하는 거대한 독점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지금까지 언제나 중지되었던 개별적 문화 운동이 확장될 수도 있다. 가령 노동 운동, 인권 운동, 남녀평등과 환경 운동 등을 생각해 보라. 모방과 소비와 찬양과 굴종을 강요하는 거짓 문화에 대항하기 위해서 우리는 아래로부터 위로 향해 자생적으로 확장되어 나가는 비판 의식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그래야 민초들의 상기한 운동들은 생명력을 이어나갈 것이다.
6.
본서의 간행 역시 상기한 맥락 속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구동독의 몰락 이후에 동구의 제반 문화는 거의 사장되어 버렸다. 사라진 사회주의 국가의 해변에 늘려 있는 모래는 일견 시류에 오염되어, 지저분하게 보였다. 그러나 그 속에는 금가루가 숨어 있지 않는가? 오염된 해변 가에서 필자는 금가루를 황망히 찾고 싶었다. 그리하여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곳에서 문화적 변방 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을 위하여 오래 서성거렸다. 마치 봉두난발의 자유인 몽테크리스토 백작처럼... 그러나 금가루를 찾는 작업은 어떤 보물 지도에 의해 수행되는 게 아니라, 부단한 노력과 기다림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더욱이 재능 없는 필자에게는 더욱 커다란 정신력이 요구될 수밖에 없었다. 이 작업의 결과물이 바로 바로 "떠난 꿈, 남은 글. 동독 문학 연구 2"이다. 본서는 "동독 문학 연구. 동독 문화 정책 개관"의 속편인 셈인데, 1989년부터 1998년까지의 기간 동안에 제각기 집필되었다. 이 책에 실린 텍스트들 가운데 발표된 것은 그 사이에 약간 수정되었다. 텍스트들은 제각기 독립적으로 씌어졌으므로, 상호 중복 내지는 생략된 부분이 있으리라.
7.
본서에서 필자가 잊혀진 동독 문학 작품을 다루면서, 중점적으로 다룬 테마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과 유토피아적 사고, 2. 국수주의와 파시즘의 현재성에 관한 문제, 3. 과학 기술 편향주의 및 환경 운동, 4. 자유의 삶과 성생활에 관한 문제, 5. 문화적 전통과 유산에 관한 문제 등. 특히 본서에서 일관된 테마로 다루어지는 것은 첫 번째 사항인데, 본서의 제목 “떠난 꿈, 남은 글” 역시 이와 관련된다. (블로흐에 관한 몇 편의 철학적 텍스트는 -본서의 내용과의 관련성 때문에- 마지막에 수록하기로 하였다.) 혹자는 “떠난 꿈”이라는 표현을 부정적으로 그리고 체념적으로 이해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정당하지 않다.
“꿈”이란 처음부터 떠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무엇이다. 한 장소에 오래 머무는 것은 꿈의 속성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가 책 제목을 “떠난 꿈, 남은 글”이라고 명명한 것은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즉 기존했던 사회주의적 실험은 거의 실패로 돌아갔다. 그렇지만 이는 사회주의적 이상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비록 사회주의적 이상이 처음부터 완벽한 구도 속에서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전제로 하더라도 말이다. 만약 이러한 자세를 견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앞으로의 사회주의에 관한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문예 미학적인 연구를 그다지 절실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8.
본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항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 구동독 시절에서 씌어진 제반 문학 작품은 주어진 특정한 현실적 맥락에 입각하여 세부적으로 공정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이제 과거사의 영역으로 이전된 문화는 오늘날의 시각에 의해서 결과론적으로 매도될 수는 없다. 둘째, 동독 문학의 카테고리가 국가 체제에 의해서 규정되고 있는 게 아쉽지만, 그게 오로지 정치적 관심사 내지 권력 기능과의 관련성에 의해서만 다루어질 수는 없다. 필자가 여러 텍스트에서 테마를 확장시킨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셋째, (문학 이론, 문학사 그리고 현장 비평을 포함하는) 문학 연구는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작가 및 독자보다 작품을 중시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현대 수용 미학의 보편적 입장에 의거하여- 독자의 고유한 기능 및 작가의 의도를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다른 차원의 문제 때문에 작가 대신 작품을 중시하고 싶다. 가령 작가 중심의 연구는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권위주의적 함정에 빠지게 하거나, 어떤 선입견에 사로잡히도록 작용한다. 따라서 우리는 인물 대신 사상을 선호해야 하고, 어떤 판단을 내릴 때 사람을 따를 게 아니라,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
9.
앞에서 필자는 새로운 문화의 정확한 수용, 우리 문화의 폭과 깊이의 강화 그리고 문화 교류 및 발전 등을 거창하게 피력하였다. 책 한 권 간행하면서 문화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일지 모른다. 그러나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 하지 않는가? (...)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서랍 속에 쌓여 있던 나의 자식들은 수년간 빛을 보지 못했다. 한국의 몇몇 출판사들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내 저작물로부터 등을 돌렸다. 이는 어느 특정한 문화 집단에 예속될 수 없었던 필자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때마다 스스로 반성하고 겸허한 자세로 노력하는 것이 정도 (正道)라고 여겼다
(...) 최근에 갑자기 무언가 뇌리에 스쳤다, 운행 중의 자전거는 결코 옆으로 기울어지지 않는다, 라고... 그래, 스스로라도 자식들을 출가시키자. 학문적으로, 심리적으로 썩지 않으려면, 달리 방도가 없다. 바로 이 점이 무리하게 출판을 추진한,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본서의 텍스트들이 부디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보물처럼 작용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못난 나의 자식들이 최소한의 문화적 자양으로서, 과감한 비판의 대상으로서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출산을 도와주신 여러 산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1998년 9월 오산에서
박 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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