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영 (E. Young, 1683 - 1765)의 「독창적 작품에 관한 사고 (Conjectures on ori- ginal composition)」은 1759년 런던에서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영은 영국의 초기 낭만주의 시인으로서, 시, 「삶, 죽음 그리고 불멸에 관한 탄식 혹은 밤 동안의 생각 (The complaint, or night thought on life, death and immortality)」 (1742 - 45)은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무덤 시”의 유행을 창안하였다.
에드워드 영의 유일한 시 이론인 본고는 하나의 엣세이로서 작가이자 친구인 리차드슨 (S. Richardson)과의 편지 교환으로 탄생하였다. 그것은 한마디로 신고전주의적 경향을 배척하려는 영의 의도를 그대로 기술하고 있다. 당시의 고전주의적 수용은 영국 작가들에게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지만, 아직 완전한 형태로 발전되지 않고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영의 후기 작업이 주제상으로 고찰할 때 어떤 생산 미학적 영역으로 집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고에서 영은 영국 고전주의적 전통과 과감한 논쟁을 벌린다. 가령 알렉산더 포프 (A. Pope)는 자연과의 친화를 부르짖으며, 고대 그리스 작가들의 탁월성을 모방해야 한다고 부르짖은 바 있다. 포프의 이러한 견해에 대해 영은 강렬하게 반기를 든다. 영에 의하면 미적 모방의 유형은 원래의 자연 모방으로부터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연 모방이 아닌)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적하는 작업이야 말로 시인의 목표라고 한다. “교양과 직결되는 학식”은 (관료주의적 사회의 사회적 조건속에서 가장 번창했는데) 영의 견해에 의하면 “자발적 창조”와 대립하는 무엇이라고 한다. 바꾸어 말해 영은 고전주의적 학식을 지닌 거만한 교양인들을 경멸하며, 자발적이고 풍요로운 감정 및 영혼의 발산을 애호하였다.
에드워드 영은 [가령 윌러엄 샤프 (W. Sharp)의 「재능인에 관한 논문 (Dissertation on genius)」에서 언급된 바 있는] “독창적 재능”에 관한 상기한 이념들을 셰익스피어의 격앙적 주제에 대한 새로운 의미와 접목시킨다. 셰익스피어의 문학은 -영에게는- 1750년 문학 비평과의 관련하에서 “독창적 재능의 패러다임”과 다를 바 없다. 다시 말해 영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벤 죤슨 (B. Jonson)과 같은 학식 쌓은 고전주의자들의 작품보다] 더 훌륭하다고 평가한다. 이와 관련하여 영은 의고전주의적 전통의 규칙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생산 미학적 주요 가치를 부여한다. “재능은 떠오르는 상에 대한 규칙 없이도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재능에 관한, 영의 입장이 결코 규범적 척도를 포기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에드워드 영은 고전주의적 모델의 규칙이 되는 모방을 용납하지 않을 뿐이다. 그는 작업 과정의 매커니즘, 예술적 훈련을 통한 질서와 척도를 작품속에 도입하는 행위 등을 그다지 탐탁하게 여기지 않을 뿐이다. 대신에 영이 내세우는 것은 자발적이고 생명력 넘치는 재능의 개념이다. 영의 글속에 담긴 시 이론의 내용은 작가 아디슨 (Addison)에 관한 윤리성 등에 의해 수정되지도 강화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온건한 고전주의자, 아디슨은 에드워드 영에게 어떤 자발적 창조자의 좋은 예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리차드슨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는 아디슨에 의해 제기된 독창성의 재능에 관해 토론을 벌리려 했는데, 씌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영의 영향력은 엄밀한 토론 내용 자체 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창작 모티브의 강도에 힘입고 있다. 18세기 중엽의 영국의 현실을 고려할 때 영의 시 이론적 문헌은 과히 혁명적 내용을 담고 있다. 왜냐하면 영은 (동시대 사람들과는 달리) 과거의 감상주의에서 친숙했던 입장을 유독 강조했기 때문이다.
영의 시 이론은 18세기 영국에서 자유주의의 신고전주의적 시학의 개념적 한계성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그만큼 그것은 다수의 문예 이론가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이에 반해 에드워드 영은 독일에서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질풍과 노도”의 시대에 독일 작가들은 영의 시 이론으로부터 재능 미학으로서의 하나의 틀을 발견했던 것이다. 영의 글은 발표된 직후 바로 독일어로 번역, 발표되었다. 특히 영의 시 이론은 함부르크, 라이프치히 등지에서 활발하게 수용되었다.

'25 문학 이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서로박: 피셔의 '미학 혹은 아름다움의 학문' (0) | 2026.03.14 |
|---|---|
| 서로박: 무카로프스키의 '기호학적 사실로서의 예술' (0) | 2026.03.13 |
| 서로박: 지라르의 '낭만주의의 거짓과 장편 소설의 진리' (0) | 2026.03.04 |
| 서로박: 바르가스 로사의 '가르시아 마르께스. 신의 살인의 역사' (0) | 2026.02.26 |
| 서로박: 바인리히의 '독자의 문학사를 위하여' (0) | 2026.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