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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 소개) 양왕용의 시, '나의 시 3'

필자 (匹子) 2025. 10. 31. 18:33

나의 시 3

양왕용

 

나의 시는

할아버지 기침 소리에 묻어나오는

소금기의 하얀 바람이다

육지로 건어물 장사를 떠났던

당신의 젊은 시절의

그 바람은

언제나 당신을 따라나셨다

주막의 댓돌 위에서나

시장의 복판에서나

돌개바람을 만나

몸만 살아남았던 때에도 ...

주름살이 늘어난 얼굴로

새벽에 집을 나서

방울 소리와 함께

소장수를 떠났던 시절에도

저녁마다 대사립을 울린

카랑카랑한 그 목소리

어느 해 겨울

저녁 밥상을 물리고

나직나직 지난 날을 회고하던

그 목소리로

동학란 속에서

간간이 번쩍이는 그 바람이다

나의 시는

당신의 등짐 속 건어물이나

소들이나

주막의 호롱불에 섞여

당신의 수염 밑으로 떨어지던

그 바람이다

가벼이 가벼이

아침마다 밥상머리에

내려 앉는 

소금기에 그 바람이다 

 

..............

 

(독후감)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그러나 생명은 하나의 매듭으로서 부모와 자식이라는 고리로 이어져나간다. 매듭과 고리 - 양왕용 시인은 이것을 추적하는 것을 시적 사명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시인은 그것을 "소금기의 하얀 바람"으로 요약한다. 

 

잘은 모르지만, 조부의 생활 근거지는 남해인 것 같아 보인다. 조부는 육지로 향하여 건어물을 팔거나, 우시장으로 가서 소를 팔곤 하였다. 조부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어린 시인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 것 같다. 어쩌면 조부는 이조 말기에 동학 운동에 관여했는지도 모른다. 

 

"주막의 댓돌", "시장의 장터", 그리고 하마터면 수장(水葬)될 뻔했던 "바다" 곁에는 언제나 할아버지와 함께 바람이 불고 있었다. "바람"은 한국 선조들이 겪은 고난과 방랑에 대한 객관적 상관어이다. 그 바람에는 소금기가 묻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짜디짠 내음이 섞여 있다. 남쪽 지역의 바람을 기억하고 이를 시적 언어로 재구성하는 일 - 그것이 양왕용 시인의 시 창작의 원천인지 모른다.  

 

 

남해의 어느 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