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21

서로박: 이성 국가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타자를 이해하려면 자기 자신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취해야 한다.” (장 작 루소) 친애하는 J, 타자를 이해하려면, 타자에 가까이 다가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타자와 무조건 동일시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판적 거리감이지요.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는 일이야 말로 학문 행위에 가장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자신의 판단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판단하지 말고, 이를 견지하되 타자에 접근하게 되면, 우리는 새로운 무엇을 깨닫고 자신의 태도를 어느 정도의 범위 내에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송두율: 불타는 얼음, 후마니타스 2017, 116쪽 이하.) 윤평중 교수의 책 『극단의 시대에 중심 잡기』 (생각의 나무 2008), 그리고 『국가의 철학. 한반도 현대사..

2 나의 글 2023.09.19

박설호: (3) 배금주의 비판, 아이티 항쟁과 프랑스 혁명

(3) 배금주의 비판, 아이티 항쟁과 프랑스 혁명. 니콜라스 기옌의 시를 중심으로 (앞에서 계속됩니다.) 6. B: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모든 혁명의 근원에는 배우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저항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는군요. A: 바로 그 점이 중요해요. 16세기 독일에서 발발한 농민 혁명 역시 가난한 농민을 착취하는 가렴주구로 인해서 촉발되었습니다. 토마스 뮌처Thomas Müntzer의 사상은 저항이 없으면, 도저히 생각될 수 없습니다. 혁명은 위로부터 아래로 향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저항의 몸부림을 통해서 아래에서 위로 향해 나아가는 운동이지요. B: 이제 콩고 아이티 항쟁과 프랑스 혁명 사이의 관계를 말씀해주시겠습니까? A: 프랑스 혁명의 구호는 주지하다시피 -프랑스 삼색기에..

12 세계 문화 2023.08.18

서로박: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소설의 이론"은 루카치가 “거대 서사 (장편 소설)”의 형식에 관한 역사 철학적 시도이다. 이 작품은 1916년 "미학과 일반 예술학을 위한 잡지"에 간행되었다. 루카치의 이 문헌은 에세이와 비평의 시기 -헝가리어로 집필된 "영혼과 형식" 1910, 장르 미학적 출발점이 되는 (독일어로 집필된) "비극의 형이상학" 1911-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동시에 루카치의 상기한 문헌은 나중의 “거대 미학”을 정립하기 위한 중간 단계인 셈이다. 소설의 이론에서 루카치는 해석학적으로 다양하게 축적된 변형 과정을 도출해내고 있다. 이러한 변형 과정은 신낭만주의의 사고 구조 (슐레겔, 노발리스)로부터, 헤겔의 단계적 변증법, 키르케고르의 시기(時期)적 변증법, 솔거 (Solger)의 아이러니 구상 등을 거쳐..

25 문학 이론 2023.03.03

뵐렌도르프의 시작품 (2)

첫 번째 작품은 프랑스어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뵐렌도르프가 독일에서 시 발표할 기회가 사라지자 스스로 작품을 번역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간청하는 시 세공업자"는 프랑스어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말하려는 것은 스스로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절대로 창안하지 않겠다는 내적인 다짐일 것입니다. “당신네는 마차로 왕래하고 웃으며,/ 내 몸을 갈기갈기 찢고 있어요,/ 좋고 나쁜 난동을 피우고 있네요,” 두 번째 시는 시인이 갈구하는 비밀스러운 고향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요정의 땅”으로서 “금빛 찬란한 기적의 나무”가 자라는 공간입니다. 시인은 “늪지의 부드러운 꽃”을 사랑합니다. 시인의 고향은 주어진 비참한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의 상입니다. 뵐렌도르프는 프랑스와는 다른 조국의 억..

21 독일시 2022.08.26

서로박: 야우스의 "미적 경험과 문학적 해석학"

베를린 자유 대학의 아름다운 옆 모습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 (1921 -1997)의 책은 1977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발간되었으며, 1982년에 확장본으로 속간되었다. 야우스의 이론적 출발점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본서의 서문에서 제기되고 있는 미적 경험에 관한 연구이다. 야우스는 미적 향유의 개념을 흔히 미적 경험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내용에 결부시키려고 한다. 그는 우선 아도르노의 부정성의 미학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한다. 왜냐하면 아도르노에 의하면 문학 작품이란 오직 다음의 조건에 한해서만이 어떤 긍정적인 사회적 기능을 지니게 된다고 한다. 가령 자율적 예술 대상으로서 사회적 지배 구조를 부정하고 사회적 근원으로부터 벗어날 경우에 한해서 그러하다. 다시 말해 예술의 사회적 요소는 아도르노에 의하면 ..

25 문학 이론 2022.05.16

블로흐: 셸링과 물질 (5)

1797년에 발표된 이전의 논저 『자연 철학에 관한 이념들』에서 셸링은 밀침과 당김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밀침의 에너지는 물질의 가장자리에 서성거리는 현실적이고 객관에 합당한 힘이라면 당김의 에너지는 셸링에 의하면 어떤 효과로서 확정되는 형태라는 것입니다. 셸링은 물질을 논하면서 천국으로부터의 추방이라는 단순한 비유를 무작정 연역적으로 끌어오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밀침과 당김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밀침의 에너지는 나락이라는 카테고리로서의 원심력의 모티프와 관련되며, 당김의 에너지는 뒤엉킴이라는 카테고리로서의 구심력의 모티프와 관련된다고 합니다. 셸링은 특히 후자의 에너지를 추락의 존재 속에 보존되어 있는 이념과 뒤섞여 있는 무엇으로 설명합니다. “역사는 신의 정신 속에서 시적으..

23 철학 이론 2022.04.02

서로박: 작자 미상, 당신은 나의 것

당신은 나의 것, 난 당신의 것 반드시 이를 믿어야 해요. 당신은 내 심장 속에 그냥 싸 안겨 있습니다. 열쇠를 잃어버렸으니 당신은 항상 거기 머물러야 해요. (Dû bist mîn, ich bin dîn./ des solt dû gewis sîn./ dû bist beslozzen/ in mînem herzen,/ verlorn ist daz sluzzelîn:/ dû muost ouch immêr darinne sîn.) (해설) 우리가 끝없이 무언가를 갈구하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우리에게 결핍된 무엇이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결핍된 무엇이 어렵사리 얻어진 다음에도 우리는 새로운 무엇을 찾아 나섭니다. 그래서 인간 자체가 처음부터 완전하지 못한 존재로 규정된 채 ..

21 독일시 2022.03.10

블로흐: 죽은 뒤에 누구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가? (3)

5. 셋째로 헤겔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 마지막으로 헤겔과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세계의 운동을 뜻한다고 하는 원의 둥근 움직임은 어떻게 이해되는가요? 헤겔은 세계의 변화를 정신의 원 그리기라고 정의 내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명제는 반대 명제를 거쳐 종합의 단계로 향하는데, 결국 맨 처음의 출발점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이러한 변증법적 움직임에 의하면 하나의 명제는 결국 어떤 더 높은, 더 구체적인 단계로서의 명제로 환원된다는 것이지요. 이 경우 나타나는 것은 비유적으로 말해서 마치 물이 폭포수처럼 아래로 강하게 떨어지는 경우만은 아닙니다. 헤겔의 변증법에서 모든 현상은 모순과 결착되어 있는 폭포와 같은 무엇으로 나타날 뿐 아니라, 헤겔 스스로 말한 바 있듯이 마치 굴을 헤집는 두더지의 행동처럼 출현하..

30 bloch 대화 2021.11.08

블로흐: 죽은 뒤에 누구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가? (2)

3. 첫째로 스파르타쿠스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 독일의 소설가, 장 파울Jean Paul은 언젠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죽은 뒤에 대화를 나눌 상황에 처할 경우, 내가 과연 누구와 담소를 나눌 수 있을까? 하고 질문하는 것은 참으로 난감한 일이라고 합니다. 당신의 질문 자체가 나를 난감하게 만드는군요. 예컨대 죽은 뒤에 스파르타쿠스와 담소를 나누는 것은 매우 긴장감 넘치는 일일지 모릅니다. 사도 바울과 담소를 나누는 것 역시 흥미진진할 테지요. 죽은 뒤에 헤겔과 담소를 나누게 되면 흥미진진한 긴장감을 느끼리라고 여겨지는군요. 아직 발효되지 않은 무엇,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무엇 그리고 모순적인 무엇에 관한 대화를 생각해 보세요. 헤겔은 이러한 것들을 변화되는 움직임으로서의 개념의 흐름 이해하였..

30 bloch 대화 2021.11.08

블로흐: 고향이란?

나: 그런데 고향의 개념은 당신의 철학에서 항상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지방 내지 지역이라는 단어는 한편으로는 주어진 토양에 입각한 고향을 가리키는 지리적인 장소라는 느낌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지역과 지방은 한편으로는 편협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 그리고 한 장소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속물들을 떠올리는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놀라운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긍정적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능성은 완전히 도시화된 공간에서는 도저히 발견하기 힘든 특징이 아닐까요? 너: 고향은 나름대로 어떤 철학적 측면 내지 자신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독일 신비주의자인 에크하르트 선사가 언급..

30 bloch 대화 2021.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