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동독문학

박설호: (2) 국경선상의 고향으로부터 친구의 고향으로. 볼프 비어만의 '불쌍한 독일. 블로흐 노래'

필자 (匹子) 2025. 5. 29. 08:49

(앞에서 계속됩니다.)

 

D.

비어만의 시를 차례대로 살펴보기로 하자. 제 1편부터 제 10편까지의 내용은 후렴에서 언급된 시인의 독일 비판과 관련된다. 시인은 한편 한편마다 특정한 구체적 사실을 차례로 지적하고 있다.

 

“ 1.

독일로부터 독일로 향해

망명해 왔을 때

내게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어, 아! 나 자신의 육체를

잔인하게 실험하다니,

자의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강요에 의해 동쪽에서 서쪽으로”

(Und als ich von Deutschland nach Deutschland/ Gekommen bin in das Exil/ Da hat sich für mich geändert/ So wenig, ach! und so viel/ Ich hab ihn am eigenen Leibe/ Gemacht, den brutalen Test:/ Freiwillig von Westen nach Osten/ Gezwungen von Ost nach West)

 

독일에서 독일로 망명했다는 표현은 그 자체 아이러니와 다름이 없다.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은 이러한 표현을 쉽사리 이해할지 모른다. 자신의 신념은 예나 지금에나 변하지 않았음에도, 시인은 자의에 의해 타의에 의해 나라를 옮겨야만 한다. (각주: 그야말로 “산천은 의구하나 인걸은 간 데 없네.”가 아니라, “인걸은 의구하나 산천은 변모했네.”와 다를 바 없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지식인 한사람이 지조를 굽히지 않고 의연하게 살고 있는데, 때로는 공산주의자로 때로는 반동적 수정주의자로 비판당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라. 이로써 고통을 겪은 것은 지식인의 “생각”이 아니라, 지식인의 “육체”일 뿐이다. (각주: 두 사람은 유대인 출신이며, 철학 전공의 마르크스주의자이다. 2차대전 후 비어만은 자의로 동독을 삶의 근거지로 택했고, 블로흐는 64세의 나이에 라이프치히 대학 교수로 초빙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들이 동독을 떠나게 된 연유는 엄밀히 말해 약간 다르다. 비어만이 동독 정부로부터 강제로 추방당한 반면 (다음의 문헌을 참고하라. 金光圭: 육성과 가성, 제 2장, 문학과 지성사 1996, 157 - 172쪽. 김천혜: 동독 반체제 시인. 볼프 비어만의 저항 시 연구, 독일 어문학, 제 4 - 1집, 1996, 345 - 374쪽), 1961년 8월 13일 베를린 장벽이 건설되었을 때, 블로흐는 가족과 함께 구서독에서 휴가 중이었는데, 베를린 장벽 건설의 소식을 접한 후 동독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블로흐는 자의에 의한 “이주자”도 아니요, 그렇다고 해서 “강제로 추방당한 자”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블로흐는 동서독으로부터 비난을 모면하였으며, 튀빙겐에서 학문적 열정을 마지막으로 불태울 수 있었다.).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다만 오류에 바탕을 둔 견해에 있을 뿐, 이로써 “육체”가 고통을 당해야 한다는 것은 과히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 두 행에서는 시인의 고달픈 행적이 압축되어 나타나 있다. 자신이 스스로 택한 나라는 자신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배척했던 것이다.

 

“ 2.

독일 주위에 사는 자들은

아마도 운 좋은 인민들이야!

거대한 독일은 파괴되고

두 동강난 채 으르렁거리고 있어

두 명의 못생긴 영웅들은

서로 대치하고 있으니

작은 자는 계속 분란을 일으키고

큰 자는 조금도 참지 않아”

(Die Völker drumrum um Deutschland/ Die haben vielleicht ein Glück!/ Großdeutschland, es ist zerbrochen/ In zwei verfeindete Stück/ Die beiden häßlichen Helden/ Sie halten einander in Schach/ Der Kleinere gibt nicht Ruhe/ Aber der Größere gibt nicht nach)

 

제 2편에서 묘사된 내용은 분단된 (지금 시각으로 표현하자면 분단되었던) 두 독일의 현실적 상황이다. 시인은 독일 주변의 인민들을 몹시 부러워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즉 파시즘 내지는 국가 사회주의가 오직 독일적인 이데올로기라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파시즘은 (근본 원인 대신에 직접적 계기만을 고려해서 말하자면) 무솔리니를 중심으로 탄생된 것이며, 반유태주의로서 독일에서 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 출몰하지 않았던가?

 

어떤 의미에서 고찰할 때 독일은 히틀러의 등극으로 인해 파시즘의 상흔을 가장 심하게 받았다. (물론 독재자에게서가 아니라, 독재자를 뽑은 사람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까닭은 히틀러라는 독재자 한 명 때문에 전 유럽에 만연해 있던 국가 사회주의에 대한 비난을 한 나라가 짊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각주: 예컨대 프랑스 좌파 지식인들조차 구서독에서 좌익 세력보다 우익 세력의 정권 장악을 더 원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라. 프랑스인들은 동서독을 관통하는 “할슈타인 전선”을 원했으며, 이 전선이 독일과 프랑스 사이로 이전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듯 이데올로기의 문제는 주어진 현실과 국가의 제반 이권과 교묘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론대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독일은 가해 국가인 동시에 피해 입은 분단국가일 수밖에 없었다.

 

E.

앞에서 인용된 시에서 “작은 자”는 동독 정부를, “큰 자”는 서독 정부를 지칭한다. 한국 사람들은 분단된 두 독일이 “분란을 일으”킨다는 표현을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나- 과장된 엄살로 받아들이는 게 좋을 듯하다. 왜냐하면 동서독간의 긴장 관계는 한반도의 긴장 관계에 비해 그다지 끔찍하게 전개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최소한 동서독 사이의 긴장 관계는 70년대 초까지 이어졌고, 지식인 및 정보원들의 체포 구금 송치 등으로 두 나라는 마찰을 일으켰다. 제 3편에서는 동서독 사이의 실제 삶의 차이가 거론되고 있다.

 

“ 3.

동쪽에서는 작은 빵 한 개가

5 페니히, 여기선 20 페니히

저기선 맥주가 큰 잔으로 1 마르크,

여기선 2마르크 50 페니히야

저기서 술 마실 땐 주둥이 닥쳐야 하고

여기서 넌 마음대로 고함지를 수 있어

혼자니까, 침묵으로도, 고함으로도

세상은 뒤바뀌지 않아

(Und im Osten kosten die Schrippen/ Fünf Pfennig - und zwanzig hier./ Ein großes Bier kost ne Mark dort/ Und Zweimarkfünfzig hier/ Und drüben hältst du beim Bierchen/ Dein Maul, hier darfst du schrein/ - allein, es ändert die Welt sich/ Mit Schweigen nicht, noch mit Schrein)

 

주지하다시피 인용 시에서는 동서독 사이에 온존하는 실물 경제적 상황이 다루어지고 있다. 구서독의 물가는 구동독의 그것에 비해 세배 내지는 네 배에 해당한다. 이러한 지적은 사실에 관한 정보의 차원을 뛰어 넘어 “아무리 구서독이 사회적 시장 경제를 표방한다고는 하나, 재화가 인간 삶에 끼치는 비중이 높다”는 점을 은근히 비아냥거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5행에서 8행까지의 지적은 희비가 교차된 시인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예컨대 동독 사람들은 바른 말에 굶주리고 있다. 그 때문에 술집으로 가지만, 술 마실 때에도 그들은 침묵을 지켜야 한다. 이에 비하면 구서독 사람들은 정보의 홍수로 인하여 바른 말에 식상해 있다. (각주: 독일에서 간행되는 20개 이상이나 되는 TV 채널, 수십 종류의 신문 등을 생각해 보라. 정보의 홍수에 주눅 든 독일인들에게는 “아프리카에서 만 명의 아이가 굶어죽었다”, “중국에서 홍수로 수천 명이 사망했다” 등의 뉴스는 그야말로 지루하게 들릴 뿐이다.). 그렇기에 술집에서 아무리 고함질러도 옆 사람은 일말의 관심조차 표명하지 않는다. 모든 게 질서화 되어 있으나, 개인적 삶의 세파는 익명의 망망대해 속에서 그냥 망각될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신문과 방송 등으로 전달되는 정보들이 모두 진실일까? 시인의 견해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고 한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