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박: (4) 모리스의 '유토피아 뉴스'
(앞에서 이어집니다.)
28. 모리스 유토피아의 네 가지 특성: 첫째로 미래의 영국 사회에는 보편성으로 이해되는 몇 가지 규정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법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규정들은 국가의 강제적 폭력에 의해서 실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안은 권력자가 아니라, 그저 행정을 담당하는 관청에 의해서 처리될 뿐입니다. 따라서 모리스의 공동체는 지배와 권력이 없는 어떤 아나키즘의 요소를 표방합니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강제적 사항에 의해서 자신의 의무를 다할 필요가 없습니다. 둘째로 모리스가 묘사한 사회에는 국가의 강제적 폭력이 없습니다. 인간은 어떠한 정부, 군대 그리고 경찰의 명령에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는 옛말이 되어 있습니다.
셋째로 모든 결정권은 개개인에게 위임되어 있습니다. 국가의 주권은 개인에게 귀속되어 있습니다. 설령 어떤 특수한 경우 갈등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어떤 정치적 대립을 부추기지 못합니다. 갈등의 당사자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기술적 문제에 있어서의 의견 대립을 자체적으로 해결해나가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행정의 시스템은 완전히 탈-중앙집권주의의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의제는 공동체 구역에 모인 주민들에 의해서 논의되고 결정됩니다. 가령 전체의 안녕, 의식주에 관한 개별적 문제 역시 이러한 방식을 거칩니다. 물론 소수는 세 번에 걸쳐 반대 의사를 표명할 수 있습니다. 다수의 의사가 채택되지만, 소수의 견해 역시 충분히 반영됩니다.
29. 모리스의 유토피아 속에 도사린 문제점 (1): 『유토피아 뉴스』는 몇 가지 하자를 지닙니다. 첫째로 모리스의 사고는 사회주의적 요소를 지니고 있지만, 정치경제학적 차원에서 바람직한 체계적 구도를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또한 수공업 예찬, 과거 지향적으로 중세의 이상의 동경 그리고 전근대적인 느슨한 문체 등은 동시대인들에게 격렬한 비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모리스는 상품의 가격을 낮춤으로써 상품의 교환 가치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여기에는 어떤 미시 경제에 입각한 세밀한 설명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미래의 영국인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화폐를 철폐하고 시장을 폐지하였는가에 대한 명료한 대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예컨대 모리스는 기계가 이윤 추구의 도구가 아니라, 그저 활용 도구로 사용될 것을 강조했는데, 이는 주어진 현실에서 실천되기 어렵습니다. 기계의 소유주는 부의 확장을 이룩하기 위해서 기계 판매를 고려하기 때문입니다. (모리스 2004: 307). 한마디로 주어진 현실의 제반 조건이 국가적 강령에 의해서 변화되지 않을 경우, 이윤을 추구하는 시장 체제는 이 세상에서 사라질 리 만무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블로흐는 모리스의 유토피아를 “순진하고 감상주의적인 지식인이 신 고딕과 혁명을 서로 혼합시킨 무엇”으로 규정하였습니다. (블로흐: 1251). 그러나 블로흐 역시 모리스의 “실용적 사회주의”의 특징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그것을 사회주의와는 다른, 일종의 시민 사회의 유토피아에 해당한다고 성급하게 판단했습니다.
30. 모리스의 유토피아 속에 도사린 문제점 (2): 둘째로 모리스는 엄밀히 말하자면 포괄적이고 학문적인 시스템으로서의 유토피아를 설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모리스의 유토피아는 미래 사회에 대한 예견이 아니라, 개인적 취향의 표현이다.”라는 콜G. D. H, Cole의 주장은 부분적으로 설득력을 지닙니다. (Berneri: 234). 「지상의 천국」이라는 표제 시 또한 이 점을 은근히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유예된 시간에서 태어난 꿈의 몽상가/ 왜 내가 힘들게 허리 펴려고 애써야 하는가/ 나의 각운이 상아 문으로 향해 수월하게/ 날갯짓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는가/ 공허한 날 가수들의 요람 속에서/ 꿈의 나라에 머무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강권하지 않고 그냥 이야기하는 것으로.” (Berneri: 235). 모리스의 유토피아는 푸리에의 그것처럼 연방주의 공동체의 모델로 면밀하게 설계되어 있지 않습니다. 물론 모리스의 『유토피아 뉴스』에는 소유, 가난, 착취 그리고 경쟁이 더 이상 자리하지 않지만, 모리스의 유토피아에는 새로운 사회 모델에 관한 체계적인 설명이 생략되어 있으며, 행정기관으로서의 국가에 관한 설명은 흐릿하고 막연할 뿐입니다. 모리스는 하나의 이념으로서 사회주의를 추종한다고 술회하였지만,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국가 체제의 사회주의 대신에, 소규모 코뮌 형태의 사회주의의 구도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31. 모리스의 유토피아 속에 도사린 문제점 (3): 셋째로 모리스의 유토피아에서는 사회주의 경제 구도, 정치 체계와 정책 이행 과정, 성 그리고 가족 제도의 문제점, 사유재산제도의 수정 사항 등과 같은 구체적 범례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모리스는 가정과 결혼 제도, 성의 문제점들 그리고 이로 인해 파생되는 갈등 등을 상당 부분 생략하였습니다. 물론 작품 속에 딕과 클라라 사이의 결혼과 이혼의 범례가 약간 다루어지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이는 기껏해야 새로운 사회에서의 결혼이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딕과 클라라는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지만, 서로 헤어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다시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은 다시 동거합니다. 사회는 두 사람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습니다. (March: 120). 전체적으로 가령 22세기 런던에서 이혼 후의 자식 교육에 관한 구체적 사항들은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모리스는 19세기 말 영국의 비참한 현실과는 반대되는 어떤 긍정적인 사회상을 막연하게 묘사하였을 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의 시각이 개개인의 자유 그리고 행복에 바탕을 둔다는 사실입니다.
32. 모리스의 유토피아 속에 도사린 문제점 (4): 윌리엄 모리스의 사회의 설계는 주관적 색채를 강하게 드러냅니다. 그것은 자세하고 명징하게 서술되지는 않았지만, 바람직한 공동체에 대한 인간의 창의적 참여를 하나의 상으로 도출해내고 있습니다. 모리스는 구태의연하지만,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기술합니다. 그의 문체는 독자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실제 현실과 가상적 현실 사이에서 드러나는 대립적 특징을 부각시킵니다. 한마디로 『유토피아 뉴스』는 진보에 대한 낙관론 그리고 미래의 비관론 사이의 변곡점에 자리하는 작품입니다. (Jens 11: 1005). 수공업과 농업에 바탕을 둔 소규모의 이상 사회는 모리스가 처했던 실제 현실과의 관련성을 고려할 때 때로는 무정부주의에 근거하는, 시대착오적인 유토피아라는 비난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모리스의 유토피아 설계를 진부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모리스의 유토피아 설계는 오늘날 생태학적 차원에서 고찰할 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으며, 무조건 소규모의 과거 지향적 유토피아로 폄하될 수는 없습니다. (Callenbach: 201f).
33. 이후의 영향: 추측컨대 모리스는 세계가 진화론적으로 향상되리라고 믿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는 주어진 사회의 혁명적 전복이 필연적이라고 확신했지만, 실천에 있어서 어떤 좋은 해결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모리스는 사회가 어느 순간 혁명적으로 전복되리라고 믿었으므로, 혁명을 위한 구체적 계획 그리고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계를 처음부터 생략하였습니다. 엥겔스가 모리스를 가리켜 “정서적 취향의 사회주의자”라고 명명한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19세기 말의 유토피아는 멜러미와 모리스를 필두로 두 개의 양극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과학 기술에 대한 극단적 찬양이며, 다른 하나는 과학 기술 발전에 대한 급진적 비판입니다. 최근에 이르러 모리스의 『유토피아 뉴스』는 생태주의의 유토피아의 원조로 새롭게 부각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산업 발전으로 인한 환경 파괴를 비판하기 위한 일환으로 설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d’Idler 1999, 87; Holim 1998, 25). 모리스의 유토피아는 유럽 지역의 생태 공동체 운동보다 100년 앞서서 출현하였으며, 오늘날에도 환경 생태를 위한 기본적 단초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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