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모의 "다시 헤겔을 읽다."
이광모 교수의 "다시 헤겔을 읽다. 사물의 본질을 통찰하는 법" (곰출판 2019)은 헤겔 입문서로서 참으로 좋은 책입니다. 저자는 빌레펠트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셨다고 합니다.
책의 강점:
1. 보통의 철학 서적과는 달리 특정 철학자가 처한 구체적 현실에 관한 언급이 눈에 띕니다. 헤겔이 처한 시대 (나폴레옹과 프로이센의 분위기 등)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이로써 논의는 추상적 이론과 논리의 관점을 벗어나서, 역사적 비판적 시각이라는 구체성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2. 저자는 헤겔의 사상을 수동적으로 재구성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언어와 논리로 논의를 전개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는 헤겔 독해를 통한 일차적 이해가 수행되지 않으면, 감히 함부로 개진할 수 없는 방식이라고 여겨집니다.
3. 저자는 헤겔의 정신 현상학을 칸트와는 다른 각도에서 정리하고 있으며, 헤겔의 유산이 어떻게 포이어바흐와 마르크스로 이전되고 있는가를 정확하고도 간명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논의를 이어나가는 방법으로 간간이 어떤 바람직하고 구체적인 예시가 첨부된다는 것도 이 책의 놀라운 강점입니다.
4. 마지막 장에서 데리다와 주체 비판, 푸코의 역사 이해를 통해서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관점으로 파악되는 주체의 해체에 관한 문제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헤겔 사상이 현대적 맥락에서 어떠한 중요성을 차지하고 있는지 추적할 수 있습니다.
요망사항:
단점이 없는 책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필자의 요망사항이라고 표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1. 인용과 각주가 없습니다. 논의의 정당성을 위한 문헌학적 예시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헤겔을 읽다"는 학문적인 세밀한 논의를 위한 문헌이 아니라, 헤겔 이해를 돕기 위한 입문서임을 감안해야 할 것 같습니다.
2. "정신 현상학"에 집중하다보니, 헤겔의 시스템으로서의 학문 체계 (논리학, 역사 철학, 미학 등)가 등한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두 가지 사항은 차제에 저자의 다른 문헌 내지는 별도의 논문을 읽고 싶은 마음을 솟구치게 합니다.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