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박: (5) 프로이트의 '도스토옙스키의 아버지 살해'
(앞에서 계속됩니다.)
25. 도박과 자살 충동: 다음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중편 소설 「한 여인의 24시간」입니다. 나이든 품위 있는 여인이 작가, 츠바이크에게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습니다. 그미는 과부로서 두 아들을 출가시키고 고독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42세 되던 해에 모나코의 어느 카지노 앞에서 그미는 재산을 탕진한 젊은이를 만납니다. 젊은이는 깊은 절망감으로 저녁 무렵에 자살로 생을 마감할 것 같았습니다. 여인은 어떻게 해서든 그의 자살을 막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는 나이 든 여인과 호텔방에 투속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나이든 여인은 마치 아들 같은 젊은이와 격렬한 사랑을 나눈 뒤, 그에게서 절대로 도박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받아냅니다.
하루가 지나자, 여인은 마음속 깊이 청년에 대한 연모의 정이 솟구칩니다. 머리를 식힐 겸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했으나, 여러 가지 작은 일들로 인하여 그미는 기차를 놓치고 맙니다. 사라진 청년을 그리워하며 그미는 다시 카지노를 찾습니다. 놀랍게도 청년은 그곳에서 반쯤 정신이 나간 채 도박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청년은 여행 약속을 어기고, 다시 도박장을 찾았던 것입니다. 과부의 출현에 당황한 그는 빌려 받은 돈을 그미의 면전에 던지며, 꺼지라고 고함을 지릅니다. 결국 그미는 자리를 떠났는데, 나중에 청년의 자살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26. 도박 중독증과 자위행위: 도벽은 인간의 “자위행위Onanie”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노름이란 어린이들이 방에 숨어서 성기를 만지작거리는 것과 동일합니다. 견딜 수 없는 유혹, 멍멍한 쾌감 이후에 자리하는 죄책감과 자괴감, 이 모든 것은 판이 바뀌어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 여인은 젊은이에게 마치 어머니와 같은 존재입니다. 젊은이는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자위의 위험을 안다면, 어머니는 몸을 허락함으로써 나를 보호할 것이다.” 작품 속에서 청년은 나이 든 여인을 마치 창녀로 간주합니다. 독자는 작품에 등장하는 과부 여인의 돌발적 행동에 대해 의구심을 품습니다. 어째서 그토록 오랫동안 정절을 지키며 살던 여인이 마치 아들과 같은 젊은 남자를 만나서 순간적 충동에 사로잡힐 수 있는가? 하는 게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습니다. 여인은 고인이 된 남편을 생각하며 계속 정절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그미는 감시 받지 않는 어느 낯선 공간에서 아들로 향하는 사랑의 전이 현상을 도저히 떨칠 수 없었습니다. (Zweig: 377).
자고로 어느 누구도 도박을 통해서 일확천금을 획득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위를 통해서 인간은 완전한 성적 만족을 얻는 경우는 드물다고 합니다. 어쩌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린 시절부터 자위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려 왔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강박 관념이 그를 도박에 빠지게 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심각한 노이로제 증세 속에는 대부분의 경우 사춘기 시절의 자위행위를 통한 경험이 담겨 있습니다.
27. 크리스테바가 간파하려 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내적 심리 (1): 요약하건대 프로이트는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간질 발작과 죽음 충동을 도출해내려고 시도했습니다. 이러한 증상은 프로이트에 의하면 17세의 나이에 체험한 살해당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 기인하는데, 이는 신경증적인 자기 징벌로 출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스토예프스키의 제반 문학 작품을 고려한다면, 반드시 프로이트의 견해가 보편타당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컨대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견해에 의하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상기한 피학적 증상은 부자 사이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관계에 있어서의 어머니에 대한 분리 때문에 일차적으로 드러난다고 합니다.
사실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어머니의 영향 내지 어머니의 관점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에 나타나는 거역과 저항 그리고 폭력과 단죄 등은 크리스테바에 의하면 여성이 지닌 회개와 용서 그리고 사랑에 의해서 완화되고 변화될 수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표현하려고 한 것은 무엇보다도 관능적 고통에 대한 열망과 관련됩니다. 특히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욥기」를 찬미한 것을 예로 듭니다.
구약성서에서 욥은 아버지 내지 주님의 도움을 애타게 간구하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이러한 간구에 대해 어떠한 답을 전해주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모든 고통을 철저하게 부인함으로써 내면에 심리적 방어벽을 축조합니다. 이로써 욥은 모든 종교적 영향을 떨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하나의 이상으로 설정합니다. 이로써 모든 판단은 마치 고대의 소피스트의 경우처럼 스스로의 가치에 의해서 내려지게 됩니다. 이러한 태도는 크리스테바에 의하면 하나님/ 초자아/ 상징계에 대한 방어막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Kristeva: 36).
28. 크리스테바가 간파하려 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내적 심리 (2): 상기한 사항은 작품에서 그대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신/ 아버지의 영향을 완전히 차단시키고, 스스로 모든 죄악을 척결하려고 합니다. 그가 고리대금업자를 도끼로 쳐 죽이는 까닭은 모든 권능을 지녔다고 여겼던 주가 정의로움에 대해 수수방관하기 때문입니다. (Dostojewski 2012: 136). 라스콜리니코프는 마지막에 이르러 창녀 소냐의 감화를 받고 해결책을 찾습니다.
여기서 크리스테바는 도덕의 문제와 미학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비유로서 “회개”를 정면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라스콜리니코프의 회개는 결국 자신을 “어떤 폭군과는 전혀 다른, 인자한 아버지”와 동일시하게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용서와 회개는 결국 한 인간에게 사랑의 힘을 지닌 하나님 (혹은 초자아 내지 상징계의 존재)과 동일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입니다. 이로써 모든 용서는 크리스테바에 의하면 도덕적 해결책을 전해줄 뿐 아니라, 모든 주체에게 공통되는 변환으로서의 포이에시스라는 미학적 구조를 획득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창작 심리에 관한 프로이트의 입장이 크리스테바에 의해서 비판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 문헌
- 나지오 J. D. (2005): 프로이트에서 라깡까지. 위대한 7인의 정신분석가, 백의.
- 도스토예프스키, 표도르 (2009):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3권, 이대우 역, 열린책들.
- 블로흐, 에른스트 (2009): 저항과 반역의 기독교, 박설호 역, 열린책들.
- 츠바이크, 슈테판 (2011): 모르는 여인의 편지, 송용구 역, 고려대학교 출판부.
- Dostojewski, Fjodor M. (1992): Tagebuch eines Schriftstellers, München/ Zürich.
- Dostojewski, Fjodor M. (2012): Schuld und Sühne, Köln.
- Ewertowski, Ruth (2004): „Artistin der Sprache“. Fjodor Dostojewski: „Die Brüder Karamasow“, übersetzt von Swetlana Geier. Buchbesprechung in: Die Drei, Heft 5, S. 80–81
- Ferenczi, Sándo (2014)r: Infantil-Angriffe! - Über sexuelle Gewalt, Trauma und Dissoziation. Berlin.
- Fjodorow, Nikolai N. (2008): What Was Man Created For? The Philosophy of the Common Task, Burningham.
- Freud, Sigmund (2012): Dostojewski und die Vatertötung, Grin Verlag, München.
- Kristeva, Julia (1989): Black Sun. Depression and Melancholie, New York.
- Solowjow, Wladimi (1968): Kurze Erzählung vom Antichrist, München.
- Valk, Thorsten (2009): Friedrich Nietzsche und Literatur der klassischen Moderne, Berlin.
- Weiss, Peter (1962): Abschied von den Eltern. Frankfurt a. M.
- Zweig, Stefan (1986): Vierundzwanzig Stunden aus dem Leben einer Frau, in: Novellen. Bd. 2, Berlin, S. 319 – 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