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전홍준의 시, '성수'

필자 (匹子) 2025. 2. 23. 10:59

성수

 

성수가 죽었다

가족들 들에 나가고

소죽을 끓이다 발작을 해

옷에 불이 붙어

열다섯 해 짧은 생을

소신공양하였다

 

불치병이라는 간질에 걸려

일 년 만에 학교를 작파하고

온 동네 골목을 쏘다니며

누구 집 살구가 언제 익는지

어느 둠벙에서 고기가 잘 낚이는지

모르는 것이 없던

동네의 박물박사

 

우리가 자치기를 하고 있으면

삶은 고구마로 유혹하며

끼워달라고 애걸하던 외톨이

 

멀쩡하다가도 거품을 물고 쓰러져

몸이 뻣뻣해지며 발작을 하면

누구나 질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온 몸에 죄를 바르고

폐차 직전의 차처럼 털털거리는

일흔의 고개에서

하늘나라 선배인 동무가

간절히 생각나느니

 

나 그곳으로 돌아가면

따돌렸다고 원망하겠지

세상의 구린내 심하다고

본체만체하겠지

 

 

*시작노트

사람의 일생은, 조물주가 내어준 숙제를 잡고,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해는 넘어가고 배는 고픈데,

선생님이 내준 문제를 풀지 못해 집에 못가는 아이처럼,

종종걸음 하다가 마치는 것이 인생이다.

자기 생을 모두 정리하고 가는 사람은 없다.

하던 일 그대로 두고 간다. 누구나 오래 살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지만, 나이가 들면 주변에 사람은

없어지고, 몸 곳곳에는 고장이 난다.

오래 산 죄의 결과물이다. 일찍 숙제를 마치고

하늘나라로 간 호기심 많은 성수,

아마 그곳에서 하느님과 재미있는 놀이를

하고 있을 것이다.